제주도 표준 모델 작업에 반발 “사실과 다른 표준화 시도, 창작 훼손”...道 “예술 침해 의도 없어”

제주조각가협회는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제주도가 추진하는 제주해녀상 표준 모델 작업을 비판했다. ⓒ제주의소리
제주조각가협회는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제주도가 추진하는 제주해녀상 표준 모델 작업을 비판했다. ⓒ제주의소리

제주도가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제주해녀상’의 표준모델을 만든다고 밝힌 가운데, 제주조각가협회가 반발하고 나섰다. 테왁, 망사리 등 해녀 소품들이 사실과 다른 모양새로 제작됐고, 너무 짧은 시간과 과정으로 작업이 마무리됐을 뿐더러, 행정 주도의 표준화 시도가 자칫 예술 창작을 훼손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제주도는 타 지역(부산 영도구)과의 협력 차원에서 시간적인 제약이 있었고, 작가들의 창작을 침해할 의도는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제주조각가협회(회장 성창학)는 14일 오후 3시 30분 제주도의회 도민의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주도의 ‘제주해녀상 표준모델’ 사업을 문제 삼았다.

제주도는 현재 제각각인 해녀상의 디자인을 정리하기 위해, 지난 3월 해녀 표준모델 개발 자문회의를 구성하고, 4월 표준모델을 완성했다. 이렇게 만든 해녀상은 6월 말 부산 영도구, 11월 독일 로렐라이시에 각각 설치한다. 

부산 영도구는 1895년경 제주해녀가 타 지역에 나가서 작업한 첫 기착지다. 영도구가 오는 7월 해녀체험관을 준공하면서 제주도가 우호협력 차원에서 해녀상을 전달하게 됐다. 로렐라이시는 지난해 대평어촌계 해녀공연단이 독일로 건너가 공연한 인연이 계기가 됐다.

제주화산석으로 만들 영도구 해녀상 제작에는 1950만원을 투입한다. 로렐라이 해녀상 등 다른 비용까지 포함하면 총 사업비는 1억1000만원이다. 해녀 흉상 사업에 참여했던 한국미술협회 소속 타 지역 작가가 작업을 맡았다. 

제주도는 “이번에 만든 해녀상은 30~40대의 진취적 얼굴 모습, 전통 물소중이 복장, 테왁망사리와 쉐눈의 형태 등 전통 해녀의 원형을 하고 있다. 해녀상 표준모델은 향후 공공기관의 해녀상 설치 시 사용하며, 민간 설치 시에도 참고할 수 있도록 권고할 예정”이라고 지난 11일 밝혔다.

그러나 제주조각가협회는 제주해녀가 지닌 상징성을 고려할 때 충분한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더욱이 표준모델에서 테왁, 망사리 같은 소품도 실제와는 다르다고 문제 삼았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성창학 제주조각가협회 회장, 강시권 전 회장, 김남숙 부회장, 강태환 사무국장 등이 참석했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강시권 전 회장은 “해녀 어머니 손에서 자랐기에 누구보다 해녀에 대해서는 잘 기억한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테왁은 박 재질로 만들었다. 크기도 몸을 충분히 띄울 만한 부력을 지녀야 하기에 엉덩이까지 내려올 만큼 컸다. 망사리 역시 마찬가지”라며 “그러나 제주도가 만든 표준모델에서 테왁은 얼굴보다 작다. 조형 요소를 고려해도 자연스럽기 보다는 마치 인형처럼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최근 제주도가 만든 제주해녀상 표준모델. 출처=제주도. ⓒ제주의소리
최근 제주도가 만든 제주해녀상 표준모델. 출처=제주도. ⓒ제주의소리
제주조각가협회는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제주도가 추진하는 제주해녀상 표준 모델 작업을 비판했다. ⓒ제주의소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강시권 전 제주조각가협회장. ⓒ제주의소리

타 지역 작가가 만든다는 점에 대해 강 전 회장은 “물론 손재주가 좋은 작가들이 많을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제주해녀에 대한 감정을 담아서 작업할 수 있는 작가가 다른 지역에 얼마나 있겠냐”며 “절차상 문제가 없고, 일부 전문가 자문을 받았다는 제주도 주장은 행정편의주의이다. 해녀는 제주의 상징이다. 해녀 문화를 국내외로 알리는 중요한 기회라면 공론화를 거쳐 다수의 의견을 모아 제대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고 피력했다.

제주조각가협회는 ‘표준모델’이란 개념 역시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자유로운 창작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창학 회장은 “해녀상 표준모델이 비정상적인 인체 표현과 기형적인 비례 문제를 지닌 양산형 해녀상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런 문제 인식은 우리 작가들 역시 공감한다"면서 "그러나 특정 소품이나 모델을 기준으로 세우는 게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법은 아니다. 작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열고 의견을 적극 수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제주조각가협회는 제주도가 제시한 ‘표준모델’ 개념을 철회하고, 더 많은 자문위원과 지역 여론을 고려해 다양한 정서가 담긴 해녀상을 만들라고 촉구했다. 이번 해녀상 작업에는 제주 지역 조각가, 서양화가 등 5명이 자문위원으로 위촉됐다. 활동 기간은 3월에서 4월까지 두 달이다.

제주조각가협회는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제주도가 추진하는 제주해녀상 표준 모델 작업을 비판했다. ⓒ제주의소리
제주조각가협회는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제주도가 추진하는 제주해녀상 표준 모델 작업을 비판했다. ⓒ제주의소리

이에 대해 제주도는 “예술가들의 창작 영역을 침범하려는 의도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담당 부서인 제주도 해녀문화유산과 관계자는 “많은 분들이 공감하듯 제주도에 해녀상이 무분별하게 난립돼 있다. 이런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하고자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더불어 7월 해녀체험관 준공을 앞둔 영도구와의 관계도 고려할 수 밖에 없었다”면서 “자문위원에는 제주에서 활동하는 조각가, 해녀협회 대표 등 상징성을 가진 분들을 초청했다. 앞으로 해녀상 사업을 확장할 때는 더 많은 자문을 얻겠다”고 밝혔다.

최근 해녀 작업에 몰두하며 개인전도 가진 이승수 작가는 이날 현장에 참석해 "해녀 문화의 가치를 높이고 다른 지역에까지 전파하는 사실은 무척 고무적이고 기대할 만 하다. 무분별한 해녀상 문제에 대한 인식은 작가들이나 행정 역시 같다. 그러나 제주해녀를 대표하는 표준을 만든다고 한다면 속도에 급급해서는 안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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