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시선] 환경평가 부실로 스텝 꼬여...사회적 비용 막대

“차로를 줄여 자동차 진입수요를 물리적으로 억제하겠다. 공해차량의 한양도성(漢陽都城) 내 진입 제한도 추진하겠다”(2018년 8월7일 서울시)

“도지사님! 정신 차리세요. 그 아름다운 삼나무 길을 훼손하다니. 붐비면 좀 어떻습니까. 천천히 가면서 주위의 아름다운 경관을 바라보는 것도 좋을 성 싶은데...”(8월8일 네티즌 ‘바당’)

지난해 여름 서울과 제주(?)에서 펼쳐진 두 광경은 너무 대조적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때는 원희룡 제주지사의 여름 휴가 기간(8월3~10일). 

한마디로 서울은 도심 진입 차량을 줄이겠다고 하고, 반대로 제주는 차량의 통행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외곽 도로를 넓히고 있으니 극과 극이었다.  

도로도 도로 나름이다. 도심의 일반적인 도로라면 새로 내든 넓히든 무슨 대수겠는가. 제주에선 흔치않은, 차를 타고 거닐 수 있는 숲길이어서 문제가 됐다. 그것도 정부가 공인(公認)한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 문제가 커졌다.  

2002년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가 제1회 대통령상을 안긴 비자림로는 일상에 지친 도시인들에게 잠시나마 심신의 피로를 풀어주는 힐링의 공간이었다. 주변에는 수려한 오름 군락이 자리하고 있다. 

비자림로를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이끈 것은 길 양쪽에 늘어선 아름드리 삼나무였다. 당시 수백여 그루의 삼나무들을 싹둑싹둑 잘라내고 있었으니 아무 일이 없었다면 오히려 이상했다.  

‘전국적’으로 난리가 났다. 기사 댓글창은 한탄과 성토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원 지사는 졸지에 ‘철학이 빈곤한 도지사’로까지 몰렸다. 필자도 서울의 지인들로부터 대뜸 ‘비자림로 소식’을 아느냐는 전화를 여러 통 받았다. ‘제주’ 뒤에 물음표(?)를 단 것도 이미 전국적인 사안으로 번졌다는 의미에서였다.  

네티즌들이 아우성을 치기 시작한 8월8일, 원 지사도 놀고 있지는 않았다. 이날 원 지사는 휴가 기간임에도 세종시에서 열린 ‘지역과 함께 하는 혁신성장회의’에 참석해 제주의 블록체인 특구 지정을 건의했다. “대한민국이 글로벌 플랫폼 영역을 선도할 절호의 기회”라면서.  

하지만 눈앞의 불을 끄지 못한 모양새가 됐다. 제주도정이 ‘주창’해온 카본프리 아일랜드(탄소없는 섬)와 서울시가 ‘실행’에 옮긴 녹색교통을 비교해가며 원 도정이 대세를 거스르고 있다고 비판하는 이도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원 도정이 최대 업적 중 하나로 내세우고 있는 대중교통체계 개편의 핵심인 버스 중앙차로제, 가로변차로제도 따지고 보면 승용차량의 도심 진입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마당에 교통난 해소를 명분으로 명품 숲길에 손을 대고 있었으니 비난이 가중됐다. 

제주도의 해명과 환경단체의 반박 과정에서 새롭게 드러난 사실은 기름을 부었다. 선족이오름 훼손이 불가피하다는 점이었다. 이 점을 들어 환경부(영산강유역환경청)는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협의 과정에서 사업의 재검토 필요성을 제기했음이 확인됐다.  

논란은 더 확산됐고, 수습이 곤란한 지경으로 치닫자 제주도는 10일 공사 중단을 선언했다. 

휴가에서 돌아온 원 지사는 한껏 자세를 낮췄다. 도민들께 걱정을 끼쳐드렸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도민과 더 소통하고, 더 지혜를 모아 ‘아름다운 생태도로’를 만들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미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뒤였다. 이후 과정도 스텝이 꼬일 수 밖에 없었다. 

설계 변경을 거쳐 올해 3월 공사를 재개했으나 멸종위기종인 애기뿔쇠똥구리와 팔색조, 천연기념물 황조롱이, 희귀식물 붓순나무 등이 공사장 주변에서 발견됐다. 제주도가 2015년 3월 제출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서에는 없는 내용이었다.    

제주도는 이번에도 미적댔다. 일단 공사를 멈추고 환경보전 대책을 수립하라는 영산강유역환경청의 조치명령에도 강행 의사를 내비치다 여론이 심상치않자 부랴부랴 공사를 중단했다. 불과 1년도 안돼 ‘판단 미스’를 되풀이한 셈이다. 결과적으로 내지 않아도 될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게 됐다.   

이 뿐만 아니다. 최근에는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서가 부실하게 작성됐다는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서로 다른 지점에서 진행한 식생 조사 결과가 똑같은 사실이 드러났다. 2km 가량 떨어진 두 지점의 좌표는 물론 조사 시간과 식생 종류까지 판박이였다. 이 쯤 되면 단순 의혹 차원을 넘어선 것이었다. 

앞서 언급한 ‘첫 단추’는 바로 이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말한다.   

곪으면 터지기 마련이다. 왜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으려 하는지 모르겠다. 

사실 우리는 그동안 환경영향평가의 폐해를 지겹도록 봐왔다. 주로 대형 개발 사업에 면죄부를 주는 역할을 해왔음을 부정할 수 없다. 

멀리 갈 것도 없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가 5월27일 공개한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 사건 심사 결과 보고서’에는 김태환 도정 당시 환경영향평가서 동의 과정이 얼마나 엉터리였는지 적나라하게 나와있다. 

“…환경영향평가심의회는 강정 중덕 해안 일대의 환경이 어떠한지, 해군기지 건설 결과 어떤 영향을 미칠 지에 대한 심도있는 분석과 현장 방문 등을 하지 않았고, …환경전문가들이나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청취할 생각도 하지 않았으며, 김태환 도지사가 요청한 대로 해군이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를 통과시키기에 급급했다…”

절대보전지역 변경(해제) 과정은 더 엉망이었다. 도의회가 제대로 한 건 했다. 직권 상정, 질의·토론 생략, 일사부재리 원칙 훼손, 거수표결 등 편법이 난무했다.  

이로인해 얼마나 큰 갈등과 비극을 초래했고, 결국 얼마나 많은 사회적 비용을 감당해야 했나.  

왜 ‘강정의 비극’을 반면교사로 삼지 못하는가. 

공사를 하네 마네 입씨름 하자는게 아니다. 문제는 원칙이다. 원칙대로만 하면 돌아갈 이유도, 쓸데없는 비용을 지출할 일도 없다. <논설주간/상임이사>

* 소리시선(視線) /  ‘소리시선’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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