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난민 1년, 그 후](2) 예멘인 대다수 제주서 성실한 경제활동 종사...'경제난민' 새로운 시각 필요

여전히 그들은 치열하게, 그리고 절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지난해 예멘 난민 신청자 500여명이 제주를 찾으며 논란이 불거진 지 1년. 그간 난민 수용에 대한 찬반갈등은 전국적인 이슈로 번졌고, 혼란을 틈탄 가짜뉴스도 횡행했다. 그들은 전쟁을 피해 고국으로부터 8000km를 벗어났지만 이국 땅에서의 삶도 여전히 생존을 위한 전쟁터와 같다. '난민 공포증'을 부추겼던 일각의 주장, 언론의 호들갑은 1년이 지난 오늘날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 [제주의소리]는 6월20일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난민사태 이후 한국사회에 녹아든 예멘인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또 제주사회가 바라보는 난민에 대한 인식에 대해 세 차례에 걸쳐 다룬다. -편집자주

지난해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예멘 난민의 제주 유입은 갑작스런 측면이 있었다. 단일민족인 한국 사회는 내전을 피해 아시아 끝에서 끝으로 피난 온 이국인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못했다. 결국 첨예한 찬반갈등이 불거졌고, 이내 정치권의 공방으로까지 번졌다.

당시 급격한 속도로 사회적 이슈가 되긴 했지만, 불과 한 해가 지났을뿐인데 예멘 난민문제는 이슈로 떠오르던 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제주를 비롯한 국내의 사회적 이슈에서 멀어졌다. 그렇다고 난민문제가 해소된 것도 아니다.

1년이 지난 오늘날, 이젠 '포스트 예멘' 난민 사태를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아직도 예멘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또 다른 난민 이슈에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 제주 거주 예멘인 127명, G-1비자로 합법적 경제활동

제주특별자치도 등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제주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숫자는 2017년 기준 총 2만400명이다. 현 시점에선 이보다 소폭 증가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 중 예멘인은 127명이다. 지난해 제주에서 난민 신청을 한 484명 중 '인도적 체류허가'를 받아 출도 제한 조치가 풀린 이들은 대부분 일자리 선택의 폭이 넓고 외국인 커뮤니티가 잘 조성돼 있는 육지부 타 지역으로 떠났다.

제주에 남아있는 예멘인 대다수도 어린이·환자 등을 제외하면 이미 경제활동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외국인이 난민을 신청하면  G-1비자가 주어진다. 난민법에 따라 강제 추방되지 않고 일정기간 체류가 가능하며, 체류기간 6개월 이후부터는 합법적인 취업도 가능하다.

비자의 특성상 단순 노무직으로만 근무할 수 있어 제주 체류중인 예멘인 대부분은 식당에서 일하거나 농업·어업 등에 종사하고 있다.

◇ 예멘인 연루 범죄 5건 불과, 강력범죄 없어

예멘인들이 치안을 위협할 것이라던 루머도 현재까진 '가짜뉴스'에 불과하다.

제주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예멘인들이 제주로 유입된 후(2018~2019 6월 현재) 예멘인들이 연루된 사건은 총 5건이었다. 

이마저도 언론을 통해 이미 알려진 예멘인 간 폭행사건을 제외하면 특별히 주목할만한 사건은 없었다. 무엇보다 일각에서 우려했던 강력사건은 더더욱 없었다. 

분실한 카드를 사용했다거나, 고용주로부터 폭행을 당했거나, 무면허 운전 적발 등이었다. 지난해 제주도내 외국인 범죄가 총 631건에 달했던 것과 비교하면 예멘인의 범죄율은 상대적으로 낮다.

일각의 우려와는 달리 이미 지역사회에 녹아들어 합법적이고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셈이다.

◇ 제3국 난민 신청 유입 증가세, "제2의 난민사태 대비 필요"

이제 예멘 난민 문제의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제2의 난민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혼란스런 국제 정세로 인해 이전엔 미처 생각치 못했던 외국인·난민 문제가 언제든 제주사회에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멘 난민 논란'에 가려졌지만, 그 이전과 이후에도 난민 신청자들은 꾸준히 늘고 있었다.

제주지역 연도별 난민 신청자를 살펴보면 2015년 227명, 2016년 295명, 2017년 312명으로 해마다 증가했다. 예멘인들이 대거 입도한 2018년에는 8월까지 총 1141명이 난민을 신청했고, 예멘 국적에 대한 '무사증 입국 불허' 조치가 취해진 지난해 8월 이후에도 그외 나라의 난민 신청자의 유입은 계속되고 있다. 

천주교 제주교구 이주사목센터가 출입국·외국인청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8월부터 제주에는 월 평균 25명 이상의 난민 신청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올해 들어 지난 3월엔 38명, 4월 54명, 5월 30명이 난민을 신청했다. 국적을 속이고 입도한 예멘인은 1명에 그쳤다. 중국, 인도 등에서 넘어온 난민 신청자가 대다수였다.

난민법 상 인종, 종교, 국적, 사회적 소수자, 정치적 의견 등 난민 인정 5대 사유에 해당되지는 않지만 경제적 빈곤으로 '살기 위해' 한국을 찾는, 이른바 '경제난민'이 늘어나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도 직시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조언이 나온다.

난민 신청자의 적응을 지원하고 있는 천주교 제주교구 이주사목센터의 김상훈 사무국장은 "제주를 놓고 보면 난민 문제가 불거졌던 것이 500여명의 예멘 사람들로 인한 것은 맞지만, 이미 1년이 지났음에도 난민 앞에는 꼭 '예멘'이란 국적이 붙는다. 이제는 '난민'이라는데 초점을 맞춰서 시야를 넓혀야 할 때"라고 제언했다.

김 사무국장은 "이미 제주에 있는 예멘인들보다 더 많은 다른 나라 출신 난민 신청자들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 비율로 보면 타 국가 사람들이 훨씬 많다"며 "예멘 난민 사태를 통해 우리가 생각치 못했던 사회문제 현상을 마주하게 됐으니 이제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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