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24) 글 깨친 녀석 대밭에게 먼저 절한다

* 대왓 : 대밭
* 더래 : ~에게, ~쪽으로
* 몬저  : 먼저

얼른 이해가 안 가는 듯 하지만, 알고 보면 썩 재미있는 비유다. 예전 서당 시절엔 글을 배우는 아이들에게 훈장님이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며 가르쳤다. 왜 그 글자를 못 쓰느냐, 왜 그 문구를 외우지 못하느냐면서. 독특한 서당교육 풍경이었다.

회초리로 쓰는 게 대나무였다. 마소 회초리로 쓰는 윤노리나무와 구별됐다. 훈장님 회초리를 맞으며 열심히 공부한 학동(學童)이 나중에 장성해서 학문을 대성했다. 이 얼마나 흐뭇하고 경사스러울 일인가.
 
회초리가 한몫을 한 것 아닌가.
 
분명 회초리는 체벌하는 도구다. 그런데도 그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으며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덕분에 성공하게 됐으니 대나무 회초리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그래서 그 고마움의 표시로 길 가다 먼저 대나무밭을 향해 절을 한다 함이다.

교육에 체벌이 유용함을 말하고 있다.

교육은 훈육(訓育)하는 것. 단체생활이나 사회생활을 위해서 요청되는 갖가지 바람직한 습관을 형성시키거나 규율 위반 같은 좋지 못한 행위를 교정하는 것이다.

훈육하기 위해서 흔히 의도적으로 상과 벌이 사용되지만, 실제로 생활습관은 ‘사회화(社會化)’의 전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

최근에는 상과 벌에 의한 훈육보다 대화나 상담을 통한 심리적 교육의 절차와 원리를 적용하려는 경향으로 기울었다.

그 나라 사회의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시각에 공감하게 된다. 그 사회의 정신적 토양이 교육에 일정 수준 영향을 끼칠 것은 당연한 이치다.

초등학생에 대한 체벌의 경우, 미국의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회초리를 들거나 뺨을 때리는 일은 절대 없다. 체벌을 준다면 ‘혼자 점심 먹기(Silent lunch)’를 하게 하거나. 심한 경우 ‘부모님 모셔오기’ 정도라는 것이다.

훈장이 들었던 대나무 회초리의 효용성이 분명 있기 때문에 옛날 서당교육이 오늘날 학교교육의 한 롤 모델이 되고 있을 것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훈장님 회초리를 맞으며 열심히 공부한 학동(學童)이 나중에 장성해서 학문을 대성했다. 이 얼마나 흐뭇하고 경사스러울 일인가.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어느 이민 간 재미동포의 체험담이다.

한국처럼 시험을 보고 성적이 나오면, 아이들을 나오게 해 성적순으로 줄을 세워 체벌을 했다는 얘기에 미국 교사들이 경악하더란다. 잣대로 때리거나 꿀밤을 먹이거나 하는 따위는 상상도 못한다고 했다.

실은 우리의 경우, 이 체벌 문제가 교단에 큰 갈등 구조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예전에는 아이를 때리면 더 때려 달라는 부모도 없지 않았다. 성적을 올려라, 왜 나쁜 짓을 하느냐 담임선생이 학생의 성적을 향상시키거나 좋지 않은 행동을 바로 잡기 위해 매를 드는 데 찬성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건 옛날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얘기다. 세상이 변했다. 변해도 이만저만 변한 게 아니다. 지금 학생(초‧중등 포함)에게 몽둥이를 들었다가는 교사 목이 열이라도 살아남지 못한다.

찬‧반 양론이 엄연히 맞서 있다.

체벌에는 교육적 목적이 있다. 행동을 교정하는 효과가 있으며 학교라는 단체생활에서 질서 유지와 사회를 배우는 한 과정이다. 교사에게는 학생을 가르칠 수 있는 수업권이 있다는 게 찬성의 이유인데 반해, 학생도 한 인간으로서 존엄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이므로 체벌은 절대 있을 수 없다는 게 반대 이유다.

학대인가, 훈육인가.

학생 때 몽둥이를 들었던 아이가 졸업하고 어른이 된 뒤에도 이름까지 기억에 남는 건 왜일까. 그리고 만나면 더 반갑다. 그리고 한 가지, 교사가 학생을 가르치려는 교육적 열정이다. 체벌을 가하는 교사는 그만큼 잘 가르치려는 의욕으로 충만한 게 아닌가. 그렇지 않고서야 남의 자식에게 매를 들 이유가 있겠는가. 아니 할 말로 성적이 안 올라도 무관심, 나쁜 행동을 해도 모른 척하고 넘기면서 봉급만 받으면 그만이다.

찬성과 반대의 어느 경계에서 접점을 찾을 수는 없을까. 옛날 서당교육이 오늘에 각광을 받고 있다. 훈장이 들었던 대나무 회초리의 효용성이 분명 있기 때문에 옛날 서당교육이 오늘날 학교교육의 한 롤 모델이 되고 있을 것이다.

고민할 일이다. 훌륭하게 성장한 사람이 길 가다 먼저 대나무밭에 절을 하고 있지 않은가. 체벌도 정도 문제일 터. 속담에 번득이는 진리가 숨어 있다. 그냥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