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적 인간] 26. 롱 리브 더 킹: 목포 영웅(Long Live the King), 강윤성, 2019

'영화적 인간'은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라고 말한 질 들뢰즈의 말처럼 결국 영화가 될(이미 영화가 된)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에 대한 글이다. 가급적 스포일러 없는 영화평을 쓰려고 하며, 영화를 통해 생각할 수 있는 삶의 이야기들이다. [편집자 주]

영화 ‘롱 리브 더 킹:목포 영웅’ 포스터. 출처=네이버 영화.

제주도에도 전설의 영웅이 있었다. 사까닥치기. 흔히 “정신 사까닥치기하고 있네”라는 식으로 정신 사납게 할 때 쓰는 말인데, 사실 이 말은 시모노세키로 도일을 해 일하다 무술을 배운 재일제주인이 완성해낸 무술이다. 후계자가 몇 있었는데, 베트남전쟁과 교통사고로 죽고 유일하게 남은 자가 사까닥치기라는 이름으로 제주도 무림계를 평정했다.

사까닥치기의 무술을 따라올 자는 없었다. 2인자가 있었는데 그는 모닥치기로 싸움을 했다. 둘 다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고, 그 무술 용어로 불려 이름으로 통용될 정도였다. 사까닥치기는 산북, 모닥치기는 산남에서 주름을 잡았는데, 마침내 성판악 입구에서 한 번 결투를 하게 되었다. 박정희 정권 때 죄수들을 데리고 한라산 도로를 건설하던 때였다. 그때 마침 감옥에 가 있던 둘은 성판악 부근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 둘은 처음 만났을 때 서로를 알아봤다. 그리고 운명처럼 부딪쳤다.

비 오는 날이었다. 공사가 중단되어 사람들이 막사 안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며칠 전 공사 중 사망사고가 있어서 분위기가 가라앉은 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화투판이 벌어진 곳 앞에 사까닥치기와 모닥치기가 마주쳤다. 모닥치기는 주먹에 힘을 줬고, 사까닥치기는 작업복 상의 단추를 하나 풀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몰려들었다. 비를 맞아도 괜찮았다. 세기의 싸움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수십 명의 인부들이 몰려 둥그렇게 무대가 만들어졌다. 긴장감이 돌았다. 영문을 모른 채 모인 한 사람이 옆 사람에게 물었다.

“누구요?”
“사까닥치기와 모닥치기!”
“엇, 그 전설의 싸움꾼이 여기 있었다니!” 

어으으으으. 모닥치기가 마치 황소처럼 사까닥치기에게 달려들었다. 머리, 손, 발, 무릎, 엉덩이 등 몸의 모든 부위를 이용해 공격했다. 사까닥치기는 가볍게 피하며 공중제비를 돌아 모닥치기를 가격했다. 순식간이었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모두 탄성을 자아냈다. 모닥치기는 그대로 땅바닥에 널브러졌다. 흙탕물이 사람들의 바짓단으로 튀었다. 쓰러져있는 모닥치기에게 사까닥치기가 손을 내밀었다.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그후 죄수라는 이유로 과도한 일을 시킬 때 사까닥치기가 나서서 항의를 하곤 했다. 교도관들도 사까닥치기 앞에서는 기가 죽었다. 시간이 흘러 한라산을 가로지르는 그 도로의 이름은 5.16도로로 명명되었다. 군사 정변으로 만든 정권을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한 이름이었다. 그 이름은 여전히 바뀌지 않은 채 흉물처럼 남아있다.

훗날 사까닥치기를 본 사람은 없었다. 간첩으로 몰려 안기부에 끌려갔다는 말도 있고, 일본으로 밀항해 야쿠자가 되었다는 말도 돌았지만 직접 목격한 사람은 없었다.

지금까지 정신 사까닥치기하는 이야기였다.

현택훈
시인. 시집 《지구 레코드》, 《남방큰돌고래》,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산문집 《기억에서 들리는 소리는 녹슬지 않는다》 발간. 영화 잡지 <키노>를 애독했으며, 영화 <스쿨 오브 락>의 잭 블랙처럼 뚱뚱하고, 영화 <해피 투게더>의 장국영처럼 이기적인 사랑을 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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