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난민 1년, 그 후](3) 난민신청 해마다 증가세 "심사인력 태부족, 제주도정 전담부서 전무"

여전히 그들은 치열하게, 그리고 절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지난해 예멘 난민 신청자 500여명이 제주를 찾으며 논란이 불거진 지 1년. 그간 난민 수용에 대한 찬반갈등은 전국적인 이슈로 번졌고, 혼란을 틈탄 가짜뉴스도 횡행했다. 그들은 전쟁을 피해 고국으로부터 8000km를 벗어났지만 이국 땅에서의 삶도 여전히 생존을 위한 전쟁터와 같다. '난민 공포증'을 부추겼던 일각의 주장, 언론의 호들갑은 1년이 지난 오늘날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 [제주의소리]는 6월20일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난민사태 이후 한국사회에 녹아든 예멘인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또 제주사회가 바라보는 난민에 대한 인식에 대해 세 차례에 걸쳐 다룬다. [편집자주]

 

제주로 무비자 입국한 예맨 난민 논란이 촉발된지 1년. 여전히 정부와 제주도의 난민정책은 제자리 걸음이라는 비판이 높다.  ⓒ제주의소리
제주로 무비자 입국한 예맨 난민 논란이 촉발된지 1년. 여전히 정부와 제주도의 난민정책은 제자리 걸음이라는 비판이 높다. ⓒ제주의소리

우리나라는 지난 1992년 '유엔 난민 지위에 관한 협약'에 가입하면서 사실상 국제인권국가 리스트에 처음 이름을 올렸다. 2012년에는 아예 별도의 '난민법'을 제정해 2013년부터 시행하기 시작했다.

난민법 시행 당시였던 박근혜 정부는 "난민 신청자의 절차적 권리가 강화되고, 인권 국가로서 국제적 위상이 한층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는 전향적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뒤늦게나마 제도가 갖춰졌지만 중동·아프리카 등 주요 난민 발생지역과는 워낙 거리가 멀고 종교·문화적 차이도 커서 난민법 시행초기 한국을 찾는 난민 신청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난민문제는 우리사회의 주요 이슈가 아니었다. 

그러나 지난해 500여명의 예멘인들이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제주를 통해 대거 들어오면서 난민 이슈는 급부상했다. 당시 '난민법 폐지' 등을 주장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71만 4800여명이 동의할 만큼 관심이 뜨거웠다. 

난민이 비행기를 타고 오나? 스마트폰을 소지한 난민이 어디있나? 전쟁을 피해 나라를 버리고 도망나온 젊은 남성들 아니냐? 돈 벌러 도망쳐 나온 사람들 아니냐? 이 모든 시선은 '가짜난민'이라는 의혹에서 시작됐다. 

제주에 들어온 수백명의 예맨인들이 잠들어 있던 한국사회의 난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일깨우기 시작했다. 단순한 찬반 논란을 떠나 난민 문제가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영역에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계기다. 정부 역시 난민 대책을 보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작 약속된 난민 대책은 예맨 난민 문제로부터 1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지난해 이맘때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정부도 지자체도 모두 그렇다. 홍역을 치렀던 제주도는 특히 수동적인 자세다.   

◇ 국내 난민지위 신청 건수 '역대 최대'

지난해 대한민국에서 난민 지위를 신청한 외국인은 난민신청을 접수받기 시작한 1994년 이래 가장 많은 인원을 기록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난민지위 신청 외국인 수는 총 1만6173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도인 2017년 9942명에 비해 62.7%가 증가한 규모다.

1994년부터 2013년 6월말까지 20년간 난민 신청자 수는 5580명으로 연평균 280명 수준이었지만, 난민법이 시행된 2013년 7월부터 지난해까지 5년 동안 4만3326명, 연평균 7877명으로 증가했다.

제주의 경우도 2018년 난민 신청자는 1227명이고, 올해도 5월말까지 146명이 난민 지위를 신청했다.

난민법 상 난민 신청자들에 대한 심사는 1차 심사와 이의신청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2차 심사 등으로 이뤄진다. 심사 기간에만 1년 가까이의 기간이 소요되고, 이의 신청기간까지 포함하면 2~3년 가량 국내에 머물게 된다.

난민법에선 난민신청 후 6개월이 되기 전까지는 생계비를 일부 지원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신청자 중 10% 미만인 극히 일부에게만 생계비를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마저도 외국인등록증 발행, 통장 발행, 생계비 지급 심사 등 생계비 신청에 필요한 까다로운 절차를 모두 거치고 나면 실제로 생계비를 받는 기간은 평균 2개월에 불과하다. 그 과정을 거쳐 지급 받는 생계비도 1인 가구 기준 월 40만 원 수준이다. 최저생계비에 턱없이 못미치는 규모다. 

난민은 입국심사로부터 6개월이 지나면 'G-1'이라는 임시체류 비자를 받는다. G-1 비자를 받은 사람은 원래 취업을 할 수 없지만 예외적으로 난민신청 후 6개월이 지나는 경우에만 취업허가를 받아 취업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취업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G-1 비자를 지닌 난민이 취업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일자리를 구하고 근로계약서와 사업자등록증을 지참해 허가를 받아야 한다. 언어의 장벽, 그리고 가족부양이나 신체적 이유 등으로 실제 이 절차를 밟아 취업에 이를 수 있는 난민은 드물다. 

한국의 난민 인정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권(0.9%)이라는 점을 차치하고라도, 1000여명의 난민 신청자들이 현재 제주 지역사회에 머물고 있다. 제주 땅에 발딛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애써 외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 무사증 입국 가능 제주, '가짜난민' 시선 여전 

무사증 입국이 가능해 입·출국이 자유로운 제주의 사정은 더 특별하다. 

예멘 난민 논란도 무사증 입국을 통해 촉발됐다. 이후 법무부가 예멘 등 내전이 진행중인 24개 국가를 무사증 출입 제한 국가로 급히 설정했다. 사실상 '미봉책'일 뿐이다.

또 법무부는 지난해 4월 30일 예멘인들의 제주 입도가 급증하자 이들에게 제주외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없는 '출도 제한' 조치를 내렸다.

난민법에 따라 외국인등록증을 발급 받으면 자유롭게 도외 이동이 가능해야 했지만, 관리 등을 이유로 활동범위를 제한했다. 제주가 정부의 의중에 따라 난민 신청자들의 발을 묶는 관문으로 전락한 조치였다. 이는 타 지역보다 제주 도민사회에서 난민 찬반 갈등이 더욱 부추긴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난민에 대한 일각의 우려를 ‘국민의 여론’으로 비약한 것은 아닌지, 난민신청의 남용을 막겠다며 신청자들의 권리를 더욱 제한한 것은 아닌지 반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유엔(UN)이 예멘에 대해 세계 2차 대전 이후로 최대의 인도주의적 위기를 겪고 있다고 언급할 만큼, 예멘은 대표적인 난민발생국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예멘 난민에 '남용' '가짜' 프레임을 덧씌우며 무사증을 폐지한 것은 황당함을 너머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익명을 요구한 난민 구호단체 활동가 A씨는 "정부와 제주도의 난민 대응책은 결코 근본적인 대책과는 거리가 멀다"며 "난민은 이동의 자유가 분명한 권리임에도 법무부는 출도제한 조치를 내리면서 취업연계를 제시했다. 사실상 그들을 제주도에 가둬놓은 셈인데, 예맨인들도 제주도민들도 당황하고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정부가 이들에 대한 혐오를 부추긴 것은 아닌지 냉철한 자성이 필요한 대목"이라고 꼬집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제주의 인구 1000명당 외국인 수는 33.01명이다. 전국 평균(22.63명)을 크게 웃도는 것은 물론, 타 지역과 비교해도 월등히 높은 전국 최고 수준이다.

통계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불법체류자 역시 1만4000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들어온 기록만 남아있고, 떠난 기록은 없는 외국인들의 수다.

체류 외국인, 불법체류자, 난민 신청자를 같은 범주에서 나열할 수는 없지만, 제주는 원하든 원치 않든 그들과 공존해야 한다. 그들이 제주와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난민 의제 국가적 과제, 제주도정 '뒷짐'

국가와 지자체들이 나서서 난민 신청자들을 차별하거나 범법자로 내몰고 있다는 쓴소리는 새겨 들어야 할 대목이다. 인력 부족 문제를 단골로 들먹이며 난민 신청자들에 대한 무성의한 행정처리가 이뤄지게 되고, 그들은 자연스럽게 범법자로 낙인 찍힌다는 지적이다.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는 난민 심사 담당 직원 2명, 총괄자 1명, 체류지 변경이나 기간연장 관련 직원 2명 등 총 5명이 난민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지난해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대거 몰렸을 당시에는 심사관과 통역원을 타 지역에서 급히 수혈하는 고초를 치르기도 했다. 그나마 그것도 예맨 난민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급부상하면서 수혈이 이뤄졌다. 

그러나 정작 제주도는 난민 문제에 있어 여전히 수수방관하는 모양새다. 

우선 제주도청에 난민 관련 업무를 보는 담당자가 전무하다. 난민 이슈에 대해 물어도 "난민 등 외국인 문제는 법무부 산하 출입국·외국인청 소관"이라는 대답만 메아리 칠 뿐이다.

그나마 난민 문제를 굳이 아우를 수 있는 유일한 창구를 찾는다면 제주도 자치행정과 인권계가 전부다. 하지만 이마저도 '난민'이 주요 업무는 아니다. 다양한 인권문제를 다루는 해당 부서에서 사실상 난민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지지 않는 것은 당연한 구조다. 

난민 문제에 있어 인권의 비중이 중요하지만 사회망 구축, 공공의 안전, 경제활동 등 역시 매우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궁극적으로 공정한 심사를 받도록 난민을 보호할 수 있는 체계가 구축돼야 하지만, 제주도의 대응은 지극히 수동적이다.

제주도정의 난민에 대한 인식은 예산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제주도는 제1차 추가경정예산안에 '예멘 난민 구호지원 활동'이라는 명목으로 사업비 5000만원을 편성했다. 적지 않은 금액이다.

그러나 지원 대상자는 '예멘 난민'으로만 한정지었다. 이미 대다수의 예멘 난민 신청자들은 지난해 심사를 마치고 육지부로 대거 떠난 상태지만, 제주도는 여전히 난민 문제에 있어 '예멘 프레임'에만 묶여 있다.

투입되는 예산 역시 단순 '구호'에 그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예멘인들의 대다수는 어린이·환자를 제외하면 이미 경제활동에 종사하고 있음에도, 이들에 대한 '구호'가 적절한가에 대한 의문부호가 붙는다. 

이 예산 또한 당장 내년이면 사라질 공산이 크다. 보다 근본적인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제주도 관계자는 "난민 문제가 발생했을 당시 외국인만 전담하는 부서가 없어서 인권계 쪽으로 업무가 부여된 것 같다"며 "난민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이 높아졌고, 제주도가 무비자 지역이다보니 부각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난민 문제가 국가 사무이긴 하지만 지자체 차원에서 손 놓을 수는 없어서 TF팀을 만들어서 대응하고 지원해 왔다"며 "지역 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는 일들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1년전, 제주도 예멘 난민 논란 이후로 난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법안이 발의되는 등 난민 문제는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 2012년 난민법 제정 당시 "난민 신청자의 절차적 권리가 강화되고, 인권 국가로서 국제적 위상이 한층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는 정부의 원칙과 기조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지적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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