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4.3심포지엄 20일 성황리 개최...美 국무부 전 실장 “미군정 상당한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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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각 20일 오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주4.3 인권 심포지엄 모습. 제공=제주4.3평화재단. ⓒ제주의소리

20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처음 열린 ‘제주4·3 인권 심포지엄’에서 4.3에 대한 미국의 역할과 책임문제가 중점 거론됐다. 

심포지엄 ‘제주4.3의 진실, 책임 그리고 화해’는 이날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3시간동안 UN본부 회의실에서 열렸다. 유엔 외교관과 38개 국내외 협력단체 관계자 등 150여명이 참석, 회의장을 꽉 메운 성황리 속에 개최됐다. 

이 행사는 주유엔대한민국대표부가 주최하고, 제주특별자치도, 강창일 국회의원실, 제주4.3평화재단이 공동 주관했다. 

현장에서는 세계적 석학들과 4.3 유족의 발표를 통해 미국의 책임 문제와 함께 4.3의 정신과 진상규명운동 과정을 과거사 문제 해결의 새로운 세계적 모델로 제시했다. 4.3평화 화해운동을 노벨평화상 추천운동으로 승화하자는 의견도 나와 눈길을 끌었다. 

주최측 주유엔대한민국대표부 조태열 대사는 환영사를 통해 “이 심포지엄은 4.3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아직도 전세계에서 학살과 인권침해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에 대해 4.3이 갖는 함의를 광범한 분야에 걸쳐 이뤄지고 있는 유엔의 맥락에서 반추해 볼 수 있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면서 “4.3의 교훈이 이와같은 비극의 재발을 예방하고,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며 세계 방방곡곡에서 평화와 인권을 증진하고자 하는 우리의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고 말했다. 

협력단체의 대표로 축사에 나선 미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CUSA) 짐 윙클러 회장은 “4.3이라는 참극은 수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한 사건으로 동아시아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학살의 하나이나 제주도민들이 이 끔찍한 비극을 이겨내고 4.3을 평화, 인권, 화해, 공존의 모델로 만들어 내 주신데 대해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미국의 역할과 책임문제는 이 행사를 준비한 4.3평화재단 양조훈 이사장의 인사말에서 포문을 열었다. 그는 “4.3의 참극은 미국과 한국정부가 동시에 책임이 있는데도 한국정부는 대통령이 공권력의 잘못을 인정해서 세 번이나 사과했으나 미국정부는 일언반구도 없이 계속 침묵을 지키고 있어서 미국 지식인과 언론의 각별한 관심을 호소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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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부터 양조훈 이사장, 조태열 대사. 제공=제주4.3평화재단. ⓒ제주의소리

이어 기조발표에 나선 강우일 주교(전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는 “4.3은 미국과 한국 정부 당국이 저지른 인권과 인간 생명에 대한 대대적인 위반이자 범죄였다”면서 “처형과 학살을 한국경찰과 군인이 저질렀지만, 정책을 수립하고 명령을 이행한 이들은 미군 지도부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 당국이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표명해 주기를 바라며 유엔의 다른 회원국들도 보편적 인권을 위한 연대의 표시로 이 잊혀진 역사에 대해 관심과 공감을 표명해주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한국현대사 연구의 저명한 학자인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학교 석좌교수는 ‘4.3과 미국의 책임’이라는 발표를 통해 “미국인 대다수가 2차대전 종전 후의 한국상황과 무관한 방관자처럼 행동하지만, 사실은 일제에 부역했던 한국인들을 지원해 3년간 한국 군부와 군경을 이끌었다”면서 “결국 당시 제주도민 인구 10분의 1에 해당하는 3만명 가량을 학살하기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의 실질적 책임은 면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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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부터 강우일 주교, 브루스 커밍스. 제공=제주4.3평화재단. ⓒ제주의소리

미 국무부 동북아실장을 지낸 존 메릴 박사도 “한국은 1948년 8월까지 미군정 통제 아래 있었기 때문에 미국 역시 상당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미군은 결과에만 주목하느라 종종 지역 치안부대의 폭행을 못 본 체했고 진압작전은 악랄하고 무자비하게 전개되었다”고 밝혔다. 

노근리사건을 집중 보도한 공로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던 찰스 핸리 전 AP통신 편집부국장은 4.3 당시 미국 양대 언론인 AP통신과 뉴욕타임스의 보도태도를 분석, 발표했다. 그는 “이들 언론의 4.3에 대한 보도는 한 단락 내지는 길어야 예닐곱 단락에 불과했고, 정보의 출처는 서울에 주둔 중인 미 육군 경우가 부지기수였다”면서 “철저하게 냉전의 관점에서 사태를 바라봤다”고 분석했다. 

찰스 핸리 기자는 “두 언론은 미군의 제주도 주둔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기사의 내용은 미군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취했지만, 이는 무엇보다도 브라운 대령, 로버츠 장군, 딘 장군의 관리감독 역할을 간과한 보도였다”고 지적했다. 

‘4.3과 국제인권법’을 발표한 백태웅 하와이대학교 로스쿨 교수(유엔인권이사회 강제실종위원)는 “4.3 토벌의 과정에서 벌어진 과잉진압, 대량 학살, 초토화 등은 결코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중대한 사안이며 그 책임의 유형도 형사법적 책임은 물론 민사법적 책임, 인권법적 책임 등을 망라한 종합적인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이러한 책임관계의 논의를 위해서는 구체적 사실관계의 확정과 증거의 축적 등을 포함하여 매우 정밀한 논의와 검증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4.3 당시 북촌학살사건의 유족인 고완순 할머니는 일가족 6명의 피해 상황을 증언한 뒤, “유엔은 세계 평화와 인권을 위해 설립된 국제기구라고 들었다”면서 “유엔의 설립 취지에 맞게 미국이 4.3의 진실 해결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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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포지엄 현장 전경. 제공=제주4.3평화재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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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존 메릴, 브루스 커밍스, 강우일, 고완순, 찰스 핸리. 제공=제주4.3평화재단. ⓒ제주의소리

한편 이 심포지엄의 사회를 맡은 박명림 연세대학교 교수(김대중도서관 관장)는 ‘4.3의 화해모델’을 강조하면서 “관용과 상생의 절정의 모습을 보여준 4.3모델은 향후 남한의 과거사 극복, 한반도 통일시의 과거사 처리, 세계 허다한 지역의 갈등 및 트라우마 사례들에게 학습되어야 할 범례로 기록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특히 그는 “4.3 평화 화해운동은 가해와 피해, 민과 관, 진보와 보수를 뛰어넘어 화해와 상생, 관용과 용서의 상징으로 거듭나고 있다”면서 “글로벌연대를 통해 노벨평화상 추천운동을 전개하자”고 제안, 박수를 받았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의 토론을 통해 4.3 참상의 진실과 미국 책임문제를 다루기 위한 국제위원회 발족 등 연대의 필요성과 유엔 기록보관소의 자료 검색, 워싱턴DC에서의 4.3 심포지엄 개최 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또한 노정선 연세대 명예교수는 한국전쟁 당시 6살의 어린 나이로 제주도에서 피난생활을 했지만, 서북청년회 가족의 일원이었다고 고백하고 “서북청년회가 제주도에서 벌인 만행이 대해 사죄한다”는 입장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특히 제주에서 참석한 정현서 군(대정고)과 강혜민 양(신성여고)은 “4.3정신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우리 사회는 보다 더 정의로운 사회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 심포지엄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4.3정신을 기억하고 계승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피력했다. 

이어 오후6시30분부터 주유엔대한민국대표부 대강당에서 리셉션이 이어졌는데, 뉴욕주 출신으로 연방 하원의원 23선의 최다 기록을 세운 찰스 랭글 전 의원과 한미 외교의 가교역할을 해온 코리아 소사이어티 토마스 번 회장 등이 참석, 축사를 해서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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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서(오른쪽) 군, 강혜민(왼쪽) 양. 제공=제주4.3평화재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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