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시집 ‘제주야행’ 발간...“고통과 슬픔 통해 희망과 기쁨 양각”

출처=알라딘.

제주 작가 김순이가 새 시집 《제주야행》(황금알)을 펴냈다.

새 책에서는 ▲제주바다는 소리쳐 올 때 아름답다 ▲기다려주지 않는 시간을 향하여 ▲미친 사랑의 노래 ▲초원의 의자 ▲오름에 피는 꽃까지 5부에 걸쳐 시 50편을 실었다.

글 속에는 퇴직하고 나서 성산읍 난산리로 거주지를 옮겨 “자연과 더불어 꽃을 가꾸며 마음껏 책과 벗하며 지내는” 삶의 여유가 잘 묻어난다. 

교래리 들판, 화사한 수선화, 야생란과 산수국, 선작지왓과 송당리, 마라도와 한라산, 그리고 오름까지. 시인은 시시각각 바뀌는 자연에 대해 서정적인 인상을 밝힌다. 더불어 자기 안에 살아 숨 쉬는 그리움과 애틋함, 그리고 쓸쓸함을 글 속에 내보낸다. 1946년생, 이제는 황혼으로 가는 버스도 서서히 종점으로 향하는 상황에서, 변치 않는 시인 감성은 반갑게 느껴진다.

한라산2
김순이

너에게로 갈 때는
맨발로 간다

가슴속에 가득 찬 것
버리고 간다

세상의 번거로움
벗어놓고 간다

돌아오지 못할 길
가듯이 간다

그리운 님
만나러 가듯이 간다

길가에 서 있는 그대를 보았지
김순이

길가에 서 있는 그대를 보았지
파란 신호등 켜지길 기다리며
서 있는 그대
광고전단 붙였다 떼인 자국으로 얼룩진
도시의 전신주처럼 허름해 보였다
한때 내 사랑이었던 그대
주름이 풀린 바지 축 처진 어깨를 보며
곳곳에서 저렇듯 빨간 신호등에 발이 묶여
그대 삶이 고단하였구나
우산도 없이 빗길 같은 삶을 질척였구나

길가에 서 있는 그대를 보았지
빨간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며
서 있는 그대
기껏해야 일 년에 서너 번 세금고지서나 배달되는
시골집 우편함처럼 쓸쓸해 보였다
한때 내 사랑이었떤 그대
굽 닳은 빨간 구두와 풀린 파마머리를 보며
곳곳에서 저렇듯 파란 신호등 기다리며
그대 삶이 시들었구나
우산도 없이 빗길 같은 삶을 질척였구나

허상문 영남대 교수(문학평론가)는 시집 해설에서 “희망은 고통과 슬픔이 서로 부딪히고 끌어안으며 서로를 향해서 열리는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김순이 시는 힘주어 말한다”며 “이렇게 김순이 시는 고통과 슬픔을 통하여 희망과 기쁨을 양각시킨다. 고통과 슬픔은 상처의 다른 이름이지만, 그는 이 상처를 사랑한다. 상처는 고통과 슬픔을 부르지만, 그 고통은 사람을 아름답게 한다. 이때에야 비로소 어둠은 빛을 발하고 슬픔은 희망으로 부활한다”고 강조했다.

시인은 1946년 제주시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1988년 계간 ‘문학과비평’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제주바다는 소리쳐 울 때 아름답다》, 《기다려 주지 않는 시간을 항하여》, 《미친 사랑의 노래》 등이 있다. 시선집은 1996년 《기억의 섬》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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