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시선] ‘예멘 난민 1년’ 난민문제 현재진행형...정부-제주도 능동적 대처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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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전 일본에서 강제 추방돼 부산항에 내린 제주인과 2018년 제주로 온 예멘인들. 두 역사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끼고 배워야 할까. ⓒ제주의소리

쪼그려앉은 한 무리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무표정했다. 하지만 난 그들의 얼굴에서 불안해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한가지는 분명했다. 고향에 간다는 설렘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 사학자는 다시 사지(死地)로 내몰린 난민을 떠올렸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처연했다. 올초 공개된 영상( 70년전, 강제 추방된 제주인들 ‘불법체류자’ )은 4.3의 광풍을 피해 일본으로 피신했던 제주인들의 행적을 엿보게 한다. 흐릿한 흑백 영상에는 1949년 3월4일 일본 사세보항을 출발한 여객선 귤환(橘丸·다치바나 마루)호가 다음날 부산항에 도착하는 모습이 담겼다. 

여객선에는 700명 가까이 탑승했다. 그중에는 한국인 송환자 334명이 있었다. 미국 국립문서관리청(NARA)에서 영상을 발굴한 전갑생 연구원(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은 334명이 일본에서 강제 추방당한 한국인으로, 4.3의 와중에 목숨을 부지하지 위해 일본에 밀입국한 제주 출신도 다수라고 했다.   

전 연구원에 따르면 이들은 스스로 조국을 등진 게 아니었다. 무자비한 국가폭력에 내몰려 쫓기듯 대한해협을 건넜다. 결국 이들은 해방된 조국에서도, 그 조국을 침탈했던 일본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기구한 존재였다. 영락없는 난민이었다. 

그랬다. 당시 제주는 ‘죽음의 땅’이었다. 군경 토벌대의 초토화작전에 남아날 마을이 없었다. 중산간 마을 95% 이상이 불에 타 없어졌다. 누구도 무사하지 못했다. 전체 희생자 중 이 시기에 가장 많은 인원이 죽임을 당했다. 작전의 서막은 1948년 11월17일 선포된 계엄령이었다. 해안선으로부터 5km 이상 떨어진 지역은 적성 지역으로 간주됐다. 방화, 살인, 소개(疏開)로 이어지는 광란이 벌어졌다.

70년 전 광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일본으로 몸을 숨긴 이들을 어떻게 봐야 할까. 죽음의 땅으로 되돌아온 그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거짓말 같다. 1년 전 전국적으로 ‘제주발 난민 논란’이 뜨거웠으나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하다. 달아오른 속도 못지않게 빠르게 사회적 이슈에서 멀어졌다.  

‘시간의 마법’ 때문일까, 아니면 논란이 해소된 것일까. 한편으로는 진통을 겪은 만큼 우리 사회가 한단계 성숙해졌기를 바란다.   

횡행했던 가짜뉴스는 말 그대로 가짜임이 드러났다. 대표적인 게 범죄 우려였다. 하지만 지난해 수백명의 예멘인들이 제주에 들어온 후 그들이 연루된 사건은 5건에 불과했다. 예멘인 간 폭행 1건을 제외하면 주목할만한 사건은 없었다. 강력사건은 전무했다. 지난해 도내 외국인범죄는 총 631건이었다. 

난민으로 인정받았거나 인도적 체류허가를 받은 예멘인들은 빠르게 한국 사회에 녹아들면서 자신들이 공포스런 존재가 아님을 입증했다.

이들은 자신들을 받아준 한국 사회, 특히 제주 사회에 매우 감사해 하고 있다. 바람을 물어보면 언감생심(焉敢生心)이라는 반응이 돌아오기 일쑤다. 
  
난민 지위를 얻은 이스마일은 이렇게 말했다. “개인적인 것을 원하는 것 자체가 실례입니다”

기자였던 이스마일은 내전중인 예멘에서 전쟁에 반대하는 비판 기사를 쓰다 납치, 살해 협박을 받았다. 공포에 떨었던 그는 예멘을 뜰 수 밖에 없었다.  

전쟁이 휩쓸고 지나가듯 한바탕 홍역을 치른 제주사회. 그렇다면 난민 문제는 해소된 것일까. 안타깝게도 난민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지금도 난민 신청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올들어선 중국, 인도 등에서 넘어온 난민 신청자가 대다수를 이뤘다. 오히려 예멘인은 거의 없다. ‘예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정부는 갖가지 난민 대책을 내놨지만, 1년이 지나도록 별반 달라진게 없다. 제주도도 마찬가지다. 너무 수동적이다. 난민 전담 부서가 없는 것은 물론 상황이 변했는데도 여전히 예멘 프레임에 갇혀있다. 예산 5000만원이 편성된 ‘예멘 난민 구호지원 활동’이 그걸 말해준다. 제주에 머무는 예멘인들은 대부분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들에 대한 ‘구호’가 적절한가에 대한 의문부호도 따른다. 

대한민국이 ‘유엔 난민 지위에 관한 협약’에 가입한 것은 1992년. 일찌감치 국제인권국가로 나아가려 했다. 2012년 2월에는 별도의 난민법이 제정됐다. 아시아 최초였다. 시행은 이듬해 7월1일부터. 당시 박근혜 정부는 “난민 신청자의 절차적 권리가 강화되고, 인권 국가로서 국제적 위상이 한층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그럴싸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당시만 해도 난민 문제는 그리 화급한 일이 아니었다. 불과 5년 후 예멘인들이 대거 유입될 줄은 당시로선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원희룡 제주지사 역시 예멘 난민 문제가 불거진 지난해 6월 인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하면서 전담부서를 지정해 깔끔하고 후유증 없이 잘 대처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해 이후 정부와 제주도가 보여준 모습은 다소 아쉽다. 

엉뚱한 소리 같지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다. 전향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라는 얘기다. 바야흐로 난민 문제는 세계 각국이 처한 중요 현안이 됐다. 지방자치단체도 예외가 아니다. 

어차피 2012년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70년 전 부산항에 내린 초췌한 그들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논설주간/상임이사>

* 소리시선(視線) /  ‘소리시선’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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