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제주4.3행불인유족회 영·호남 순례 동행취재를 마치고 / 최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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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4.3특별법개정 조속처리 촉구 결의대회에서 억울함을 토로하며 눈물을 보인 4.3유족의 모습. 4.3유족들은 대부분 80세를 전후한 고령이다. 여야 정쟁 속에 표류하는 4.3특별법 개정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 ⓒ제주의소리

"4.3에 행방불명된 우리 부모형제의 시신을 돌려달라!"

고령의 4.3유족들이 국회 앞에서 답보 상태인 4.3특별법 개정을 절규한 결의대회를 끝으로 지난 달 26일부터 사흘간 이어진 제주4.3희생자유족회 행불인유족협의회의 전국형무소터 순례행사가 모두 마무리 됐다.

유족들과 동행취재한 마지막 일정이었던 국회 앞 결의대회에는 4.3범국민 단체 관계자들도 미리 나와 4.3유족들을 맞았다. 이날 유족들은 상복을 꺼내입고 "도적맞은 우리 부모형제의 시신을 돌려받고 장례를 치러 고향 땅 양지바른 곳에 모시고 싶다"고 통곡했다.  

4.3행불인 유족들과 함께 했던 이번 영호남 순례길은 대구 가창댐, 코발트 광산, 목포형무소, 광주형무소, 전주형무소 옛 터, 국회까지 이르는 강행군의 일정이었다. 손자뻘일 기자도 체력적으로 녹록치 않은 스케줄이었지만 고령의 유족들은 누구하나 지친 내색을 하지 않았다. 

2박3일 일정 중 일행들에게 종종 걸려오는 전화로 "제주4.3유적지 터 순례로 육지에 나와 있다" 전하면 '제주4.3유적지가 육지에도 있느냐'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었다.

대전 골령골 등 4.3행불인들이 학살당한 현장과 형무소터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그도 그럴 것이 (관심의 부족은 물론이거니와) 도시화 진행으로 형무소 터의 흔적은 눈이 안 가는 안내문 하나 정도일 뿐, 차츰 사라지고 있어 개발된 그 터의 새로운 주민조차 그 사실을 모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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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전주형무소 터에 남아있는 안내문. 수많은 유해가 이곳에 잠들어 있다. 7월부터 전주시에서 유해발굴이 본격화될 예정. ⓒ제주의소리

가장 안타까운 장면은 어딘가에 유해가 남겨져 묻혀있을지 모르는 아스팔트 위에서, 혹은 주택가 언저리 구석에서 어머니, 아버지, 시아버지, 외삼촌…등의 제사를 지낼 때다. 유해를 찾을 수 없으니 장례는 당연히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마다 유족들이 분주히 제물을 준비하는 모습에는 쓸쓸함과 고단함이 감돌았다.

떠도는 혼령을 찾기 위해 옛 터의 희미한 흔적을 쫓아야 했다. 한번은 유족들이 전해들은 내용도 각기 달라 제사를 지낼 터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웃음으로 눈물 닦기’라 했던가. 옆에서 지켜본 유족들의 모습은 가끔 사색에 잠기면서도 평상시엔 밝고 씩씩했다. 모두에게 무거움이 강요되진 않는다. 기저에 각자의 슬픔은 묻어두었지만 희망과 웃음이, 국회 앞에서는 분노가 그들의 원동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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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광주형무소 터에서 간단히 제를 지내는 유족들의 모습. 광주형무소가 있던 자리엔 주택가가 들어서고 아스팔트가 깔렸다. ⓒ제주의소리

순례 일정의 대미였던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결의대회는 4.3특별법 개정의 조속 처리를 외치기 위함이었다.

이날 결의대회에는 제주4·3희생자유족회 송승문 회장을 비롯해 수도권에 살고 있는 유족 50여 명,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양조훈) 등 제주지역 20여개 단체, (사)제주4·3범국민위원회, 재경4·3희생자유족청년회 등 약 200여명이 함께 국회를 향한 외침에 참여했다.

한편 유족 일부는 결의대회에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다. 결의문을 낭독하고 국회의원 등 몇몇 인사들의 다짐과 결의는 전해졌으나 저마다 답답한 심경의 유족들의 사연은 입 속을 맴돌다 죽었다. 국회를 향해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다.

결의문의 내용은 제주4.3특별법개정안 조속 처리 요구를 중심으로 “올해 안에 법안을 처리하지 않을 경우 모든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 범국민적 저항에 나설 것”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담고 있다. 

한 유족은 억울함을 부르짖은 뒤 먹먹한 목소리로 이 모든 게 '계란으로 바위 치기'가 아니냐 묻는다. 제주에서 장장 국회의사당 앞까지 물 건너 날아왔지만 코 앞에서도 단단히 뚫지 못할 벽이 있는 것만 같다.

그는 “공허한 메아리가 다시 돌아오는 느낌”이라고도 했다. 진척이 더디긴 하지만 그래도 좋은 방향으로 점차 나아가지 않겠냐는 기자의 낙관적인 되물음에 “(예전과 달리) 사회는 많이 달라졌지. 하지만 들리기는 할까 싶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최윤정 기자 / 뉴미디어 콘텐츠부

끝 인사를 나누며 한 유족의 말이 뇌리에 남는다. 더도 덜도 말고 그저 “한 마음만 가지자. 한 마음만 가지면 못할 게 없다”던. 4.3유적지순례단이 함께 느꼈던 그 마음을 생각하면 머릿속이 단순해진다.

동심동덕(同心同德). 함께한 유족들과 4.3이라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깨우친 국민들, 정쟁으로 4.3특별법 개정안이 1년 6개월이 넘도록 표류 중인 국회까지 한마음 한뜻으로 맘을 모아 조속히 억울한 영령과 유족들의 마음에 평안함이 자리하길 깊이 바란다. 보통 80세 전후의 유족들에게 더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다. 올해도 벌써 7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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