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에서 본 제주농업의 미래] (1) 아지무 드림파머즈의 '드라이 후르츠'  

최근 로컬푸드에 쏟아지는 관심은 안전한 먹거리를 넘어 ‘농민이 행복한 농업’, ‘지속가능한 농촌의 미래’와 연결돼 있다. 수십년 전부터 로컬푸드를 기반으로 다양한 시도를 이어오고 있는 일본의 현실 모델들은 좋은 참고서가 된다. 다섯 차례에 걸쳐 일본 규슈에서 만난 농가들의 이야기를 싣는다. 제주농업의 미래를 내다 보는 계기가 될 것 같다. [편집자 주] 

아지무의 포도나무들. 일본 남서부의 섬 규슈. 이 섬의 북동쪽에 위치한 아지무(安心院)는 오이타 현 우사시에 속해있다. 지역 농가에 체류하면서 체험 활동을 즐기는 '그린 투어리즘'이라는 단어의 창시지역이다. ⓒ제주의소리
아지무의 포도나무들. 일본 남서부의 섬 규슈. 이 섬의 북동쪽에 위치한 아지무(安心院)는 오이타 현 우사시에 속해있다. 지역 농가에 체류하면서 체험 활동을 즐기는 '그린 투어리즘'이라는 단어의 창시지역이다. ⓒ제주의소리

일본 오이타 현에 위치한 아지무(安心院)는 인구 7700여명 정도의 작은 지역으로 서일본의 포도 산지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이 계곡마을은 과수 재배에 적합한 지리적 특성을 지녔다. 1960년대 국가시범사업으로 많은 포도 농가가 탄생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수입산에 밀리면서 가격이 1/3 수준으로 폭락했다.

이들이 돌파구로 택한 것은 체류형 여가 활동으로 불리는 ‘그린 투어리즘’. 직접 농장을 체험하고 지역농민들과 소통하면서 그들이 차려준 음식을 먹고 그들의 집에서 잠을 자는 농촌민박이 대표적이다. 

고군분투 하던 아지무는 2012년 다시 한 번 희망의 증거를 발견한다. 일본 전국 농업청년클럽 연락연합회(4H)에서 만난 이 지역 출신 청년들은 “왜 일본에서 유통되는 건포도들은 수입산 뿐인가”라는 문제의식으로 ‘드림파머즈’를 시작한다. ‘농가의 힘으로 농촌 혁신’이 이들의 슬로건이었다.

드림파머즈의 직판장에서 만날 수 있는 드라이 후르츠 제품들. ⓒ제주의소리
드림파머즈의 직판장에서 만날 수 있는 드라이 후르츠 제품들. ⓒ제주의소리
드림파머즈의 아담한 건조 가공 시설. 각 농가별로 적은 양의 과일 가공이 어려운 현실을 드림파머즈는 해결하려 했다. 최상품이 아닌 과일을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재탄생시킨 덕에 지역 농가들의 꾸준한 소득원이 됐다. ⓒ제주의소리
드림파머즈의 아담한 건조 가공 시설. 각 농가별로 적은 양의 과일 가공이 어려운 현실을 드림파머즈는 해결하려 했다. 최상품이 아닌 과일을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재탄생시킨 덕에 지역 농가들의 꾸준한 소득원이 됐다. ⓒ제주의소리

수입산 건포도에 밀렸던 아지무 포도는 드림파머즈의 ‘드라이 후르츠(Dried Fruit)’로 반격에 나섰다. 서일본 청정 농촌이라는 지역성과 함께 자연 그대로의 맛을 살렸다는 ‘무첨가물’이라는 특징을 강조했다.

수입산이 99%를 차지하던 건포도 시장에서 지역성을 기반으로 아기자기하게 탄생한 이들의 건조과일은 신선한 히트상품이 됐다. 이 건조과일 매출액은 현재 연간 2억원을 돌파했다.

주말과 여름방학 시즌에 맞춰 신선한 과일 음료를 맛볼 수 있는 카페와, 연간 3000여명이 참가하는 수확체험 농장까지 결합됐다. 이제 드림파머즈는 11명의 직원으로 연간 총매출액 20억원을 기록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드림파머즈의 이야기는 단순히 개별 사업가의 성공을 뛰어넘는다. 젊은 농부 4명의 의기투합으로 시작한 드림파머즈는 아지무 내 농가들과의 동행을 추구했다. 

드림파머즈의 직판장에서 만날 수 있는 드라이 후르츠 제품들. ⓒ제주의소리
드림파머즈의 직판장에서 만날 수 있는 드라이 후르츠 제품들. ⓒ제주의소리
드림파머즈는 청정 농촌지역이라는 공간적 특성과 과일 원래의 맛을 그대로 살렸다는 장점을 강조하며 판매고를 늘렸다. 사실상 수입산에게 점령당했던 건조과일 시장을 정면 돌파한 것이다. / 사진=드림파머즈 홈페이지 캡처(dreamfarmers.jp)
드림파머즈는 청정 농촌지역이라는 공간적 특성과 과일 원래의 맛을 그대로 살렸다는 장점을 강조하며 판매고를 늘렸다. 사실상 수입산에게 점령당했던 건조과일 시장을 정면 돌파한 것이다. / 사진=드림파머즈 홈페이지 캡처(dreamfarmers.jp)

최상품 과일이야 백화점과 대형 마트 유통채널을 통해 빠져나가지만 문제는 그에 해당하지 않는 작물들. 이들은 미처 ‘최상품’이 되지 못한 지역주민들의 ‘규격 외’ 과일들을 한 알 한 알 떼어내 말렸다.

적은 양의 농산물들도 적극 가공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 이 곳의 드라이 후르츠는 거대한 가공공장이 아닌 조그마한 시설에서 수작업 가공을 통해 탄생한다. 포도를 비롯해 귤, 딸기, 토마토 농가들이 드림파머즈를 사랑하는 이유다.

체험농원의 운영 역시 궁극적으로는 농지 보전을 위해서였다. 다양한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도 생산자가 감소하는 일본 농업의 미래를 위한 선택이었다.

드림파머즈의 부대표 모토아키 아베. ⓒ제주의소리
드림파머즈의 부대표 모토아키 아베. ⓒ제주의소리

이 곳의 부대표 모토아키 아베(38)씨는 “1차 산업이 우선”이라며 “2차, 3차 산업을 접목시키는 것은 지역 농업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에게 농업은 수익 극대화를 위한 원물 생산지가 아니라 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통해 지켜야 할 근원적인 가치인 셈이다.

“농가들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드라이 후르츠를 만들었다”는 그의 말에서 하드웨어 확장이 아닌 '농가들의 문제 해결'이라는 방향성이 읽힌다. 그는 거듭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가치를 판매한다”며 “사람들의 이 공간을 느끼고 팬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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