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극단 가람 연극 ‘후궁 박빈’

극단 가람의 28일 공연 '후궁 박빈' 무대 인사 장면. ⓒ제주의소리
극단 가람의 28일 공연 '후궁 박빈' 무대 인사 장면. ⓒ제주의소리

전국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온 제주 극단 가람(대표 이상용)이 복귀 공연을 가졌다. 가람은 올해로 제37회를 맞는 대한민국연극제에서 사극 <후궁 박빈>을 들고 제주 대표로 참가해 단체상 우수상(3등상), 연기상(이승준)을 받았다.

지역 예선 대회에 이어, 6월 28~29일 가람이 속한 설문대여성문화센터 공연장상주단체 공연으로 다시 한 번 제주 관객들과 만났다.

본선 대회를 거친 <후궁 박빈>은 큰 틀은 유지하되 작품 주제를 보다 명확하게 전하는 일부 수정을 더했다. 임금이 10년째 자녀를 갖지 못하자, 보다 못한 신하는 ‘아들만 15명’을 출산한 흥부 부인을 후궁으로 들여보낸다. 무사히 아들을 낳았지만, 시기와 질투 속에 그 모습이 임금과 닮지 않았다는 오해로 끝내 흥부 부인은 살해 당하고 임금과 중전은 아무렇지 않게 남은 아들을 키운다.

임금은 왕실의 숙원을 해결한 흥부 부인에게 소원이 있냐고 묻는다. 중전과 신하들은 흥부 부인의 간절한 모습을 각자의 욕망에 맞게 곡해한다. 그러나 흥부 부인의 바람은 '남편과 아이 곁으로 돌아가 평생을 살고 싶다'는 지극히 당연한 마음, 단 하나 뿐이었다. 권력욕에 눈이 먼 위정자들의 태도는 평범한 소시민의 인간미와 선명하게 대비를 이룬다.

왕실과 고위 대작들은 흥부 부인의 15명 자녀와 남편을 권력의 위협으로 여겨 몰래 살해한다. 아기만 낳으면 된다고 억지로 끌려온 흥부 부인은 가족 모두를 잃고 끝내 자신도 자객의 칼날을 피하지 못한다. 어머니, 부인, 신하들에게 시달린 임금이 흥부 부인을 안고 “자네가 죽어야 여럿이 편해”라고 속삭이는 장면은 권력의 비인간성과 비정함을 부각시키는 연출이다.

<후궁 박빈>의 비극적인 줄거리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왜곡과 선동을 마다하지 않는 벼슬아치들의 우스꽝스러운 연기와 코믹한 분위기 속에 ‘블랙코미디’로 다가온다. 2006년 초연 이후 이번 포함 대한민국연극제 지역 예선에 여러 차례 등장하며 오랫동안 사랑받는 극본의 힘이다.

지역 예선에 이어 다시 만난 <후궁 박빈>은 넓은 배우 풀을 자랑하는 가람에게 최적화된 작품이라는 인상을 새삼 느꼈다. 호소력 짙은 고참 배우(고가영·이동훈 등), 탄탄한 연기로 허리를 받치는 젊은 배우(이승준·박세익·홍창현 등)의 두터운 조합을 가용할 수 있는 가람의 능력은 사극 장르를 너끈히 소화할 뿐만 아니라, 작품 주제를 잘 살려내기 충분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궁녀 한 명을 늘리고 호위무사 역도 새로 추가해 무대 안정감을 높였다.

아쉬움이 있다면 조명 사용에 있어 미숙함을 보였다는 점이다. 의도를 알 수 없는 깜박임 같은 조명 실수가 여러 차례 나왔다. 공연을 마치고 가람 관계자는 “제주 공연과 대한민국연극제 본선 대회 공연의 스탭(제작진)은 동일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가람이 대한민국 연극제 주최 측에 제출한 명단과 이번 설문대 공연 명단을 비교하면 조명 제작진 구성이 다르다. 정확히 말하면 겹치는 인물이 있지만 역할은 달라 ‘동일하다’는 가람 측의 설명은 사실이 아니다.

첫 공연 시작에 앞서 이상용 대표는 직접 마이크를 잡고 ‘무대 여건 등이 다르지만 본선 무대를 최대한 옮기고자 노력했다’고 관객에게 전했다. 그 뜻이 일부는 온전히 전달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다.

가람은 다음 공연장상주단체 공연으로 8월 15~16일 악극 <이수일과 심순애>를 예고했다. 가람 특유의 안정감과 잘 어우러질 노래 연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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