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에서 본 제주농업의 미래] (2) 오오무라 꿈의 농장 ‘슈슈’

최근 로컬푸드에 쏟아지는 관심은 안전한 먹거리를 넘어 ‘농민이 행복한 농업’, ‘지속가능한 농촌의 미래’와 연결돼 있다. 수십년 전부터 로컬푸드를 기반으로 다양한 시도를 이어오고 있는 일본의 현실 모델들은 좋은 참고서가 된다. 다섯 차례에 걸쳐 일본 규슈에서 만난 농가들의 이야기를 싣는다. 제주농업의 미래를 내다 보는 계기가 될 것 같다. [편집자 주] 

오오무라의 한적한 숲에 위치한 '꿈의 농장 슈슈'는 지역 농산물로 만든 아이스크림으로 시작해 로컬푸드 뷔페, 체험 프로그램, 결혼식 연계 이벤트, 농가민박 등으로 한 해 49만명이 넘는 방문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CHOUCHOU
오오무라의 한적한 숲에 위치한 '꿈의 농장 슈슈'는 지역 농산물로 만든 아이스크림으로 시작해 로컬푸드 뷔페, 체험 프로그램, 결혼식 연계 이벤트, 농가민박 등으로 한 해 49만명이 넘는 방문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CHOUCHOU

일본 규슈의 서쪽 끝 나가사키현의 오오무라(大村) 시는 농산물들이 넘치는 풍족한 농촌이었지만 1990년대 들어 위기를 맞는다.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나갔고 나이 든 농부들이 경작을 포기하면서 밭들은 방치됐다. 일본과 한국 농촌이 겪는 전형적인 문제를 이들도 피할 수는 없었다.

지역농가 8곳의 의기투합으로 2000년 시작된 ‘꿈의 농장 슈슈(CHOU CHOU)’는 이 현실에 맞서 오오무라가 내놓은 해답이다. 직매장에는 현재 농가 140여곳이 출하하는데 매출액이 33억원이 넘는다. 운영 중인 농업학교와 레스토랑 매출을 합치면 그 규모는 더 커진다. 연간 방문객 수가 49만명이 넘고, 선진사례를 찾는 한국 농촌 지도자들의 발걸음도 1년 내내 이어진다.

‘시장 출하 후 남은 과일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탄생한 제철 과일 젤라토(아이스크림)가 반전의 계기가 됐다. 토마토, 자두, 배부터 쌀, 생강, 아스파라거스까지 이 곳이 아니면 먹을 수 없는 ‘제철 과일 한정판 아이스크림’으로 입소문을 탔다. 원물을 듬뿍 담은 아이스크림은 금세 히트 상품이 됐다.

꿈의 농장 슈슈의 히트 상품인 제철 과일 젤라토. 자두, 토마토, 쌀, 깨 등 인근에서 생산되는 농작물들을 듬뿍 넣어만든 '시즌별 한정판 아이스크림'이다. ⓒ제주의소리
꿈의 농장 슈슈의 히트 상품인 제철 과일 젤라토. 자두, 토마토, 쌀, 깨 등 인근에서 생산되는 농작물들을 듬뿍 넣어만든 '시즌별 한정판 아이스크림'이다. ⓒ제주의소리

체험농장 프로그램인 농업학교는 이들이 왜 6차 산업 성공사례로 거론되는 지 잘 말해준다. 농업학교 참가자들은 휴경지의 잡초 제거부터 파종과 수확까지 직접 나선다. 최종 결과물로 그들이 재배한 작물로 만든 증류주가 주어진다. 놀이와 학습의 과정을 통해 황폐한 농지를 살리는 이 일에 많은 사람들이 기쁜 마음으로 참가한다.

최근 일본에 확산되는 결혼식 문화 ‘스몰웨딩’에 맞춘 기획도 눈에 띈다. 신랑신부는 답례품으로 직접 농가에서 땀 흘리며 생산한 과일을 나눠주고, 수확한 작물로 만든 과실주를 기념주로 제공한다. 신부의 친구들은 이 인근 과일이 들어간 케이크를 직접 만들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이 인근 화훼농장에서 나온 꽃들로 부케를 만든다. 

참가자들은 ‘사서 고생하는 일’에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비용을 지불한다.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로컬푸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젤라또로 후식을 먹고, 농가민박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직매장에 들러 집에서 먹을 채소와 가공품을 구입해간다.

꿈의 농장 슈슈의 직판장. 크지 않은 규모지만 이 곳의 한 해 매출은 33억원이 넘는다. ⓒ제주의소리
꿈의 농장 슈슈의 직판장. 크지 않은 규모지만 이 곳의 한 해 매출은 33억원이 넘는다. ⓒ제주의소리
꿈의 농장 슈슈의 야마구치 전무가 태극기 앞에서 그들의 탄생 배경을 말하고 있다. 그들의 연중 체험 프로그램 '농업대학'의 수료생에게 주는 증류주도 들고 나왔다. 이 곳에는 1년 내내 한국 농촌 지도자들의 견학이 이어진다. ⓒ제주의소리
꿈의 농장 슈슈의 야마구치 전무가 태극기 앞에서 그들의 탄생 배경을 말하고 있다. 그들의 연중 체험 프로그램 '농업대학'의 수료생에게 주는 증류주도 들고 나왔다. 이 곳에는 1년 내내 한국 농촌 지도자들의 견학이 이어진다. ⓒ제주의소리

이 모든 것이 처음부터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지는 않았다. 방문객들의 추가 수입을 노리고 화로구이 식당을 만들었는데, 건강식을 찾아 이 곳을 찾은 사람들이 낮부터 고기를 구워먹기 만무했다. 실패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로컬푸드 뷔페를 열었고 하루 평균 300여명이 이 레스토랑을 이용한다. 

이들의 기획력은 서로 끊임없이 대화하며 ‘새로운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나온다.

직접 수확한 작물로 술을 만들어주는 농업학교 프로그램은 멤버들끼리 술자리 대화 중 나온 구상이다.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 충실한 내용으로 채우자’는 방향성에 맞춰 끊임없이 머리를 맞댔다.

창립멤버로 현재 전무를 맡고 있는 야마구치(59) 씨는 “산업화(가공품 생산)를 해도 농가에게는 소득이 돌아오지 않더라. 결국 농가소득을 올리기 위해서는 농가가 직접 해야 한다고 느꼈다”고 시작 계기를 밝혔다.

그는 “처음에는 위기감으로 ‘우리 지역의 농업을 활성화시키자’라며 시작했는데 현재는 그 때 그렸던 그림보다 더 커져있다. 지금 같은 모습은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슈슈농장 하나 만이 아닌 주변 농가들이 함께 잘 된 건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강조했다.

그는 제주를 향해 “우리 지역에는 딱히 유명한 작물이 없는 게 오히려 장점”이라며 “제주도 역시 귤 하나로는 잘 되기 힘들다. 다른 작물도 함께 나와야 한다. 신선제품과 함께 지역만의 ‘오리지널 가공품’도 나와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꿈의 농장 슈슈의 체험프로그램 홍보 팜플릿. 가족 단위 포도 따기 체험부터, 농작물로 빵과 피자를 만드는 과정까지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 CHOUCHOU
꿈의 농장 슈슈의 체험프로그램 홍보 팜플릿. 가족 단위 포도 따기 체험부터, 농작물로 빵과 피자를 만드는 과정까지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 CHOUCH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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