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에서 본 제주농업의 미래] (3) 살구꽃 마을이용조합 

최근 로컬푸드에 쏟아지는 관심은 안전한 먹거리를 넘어 ‘농민이 행복한 농업’, ‘지속가능한 농촌의 미래’와 연결돼 있다. 수십년 전부터 로컬푸드를 기반으로 다양한 시도를 이어오고 있는 일본의 현실 모델들은 좋은 참고서가 된다. 다섯 차례에 걸쳐 일본 규슈에서 만난 농가들의 이야기를 싣는다. 제주농업의 미래를 내다 보는 계기가 될 것 같다. [편집자 주] 

살구꽃 마을이용조합 로고.
살구꽃 마을이용조합 로고.

1994년 일본 후쿠오카현 후쿠쓰(福津市)시의 농민들은 풍작을 이뤘지만 웃을 수 없었다. 미처 출하하지 못한 채소와 과일들을 어떻게 처리할지가 큰 고민이었다.

여성 농민들이 머리를 맞대 ‘살구꽃 마을이용조합’이 탄생한 게 이때다.

이들은 트럭에 작물을 싣고 출장판매에 나섰고 곧 이어 아무것도 없던 도로변 공터에 자그마한 직매장을 조성해달라고 시청에 요청했다.

그렇게 1996년 살구나무 숲 근처에 단 몇 평 규모의 직매장이 문을 열었고, 이 지역 바다와 산에서 수확된 신선한 상품들이 진열되기 시작했다.

처음에 지역농협은 그들의 매장을 따로 만들어달라는 구상을 거부한데다 남편들의 반응도 대체로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10년간 꾸준히 성장했고 한 해 매출이 4억원을 넘겼고 각종 농업축제와 정부부처와 각종 기관에서 훌륭한 마을만들기 사례로 손꼽히게 됐다. 회의적이었던 사람들은 적극적인 지지자가 됐다.

농가들이 자발적으로 지혜를 모아 만든 움직임이 이제는 조합원 130명, 출하농가 300곳, 직원 21명의 규모의 조합으로 성장했다.

살구꽃 마을이용조합이 운영 중인 직매장. ⓒ제주의소리
살구꽃 마을이용조합이 운영 중인 직매장. ⓒ제주의소리
살구꽃 마을이용조합이 운영 중인 직매장. ⓒ제주의소리
살구꽃 마을이용조합이 운영 중인 직매장. ⓒ제주의소리

이 지역에서 생상되는 양배추, 토마토, 딸기, 오이, 화훼 등이 지역농협이 시장으로 대량 출하를 맡는다면 이 직매장은 남은 작물들을 소비자들과 연결하는 거점이다.

이 지역 산과 바다에서 수확된 신선한 농수축산물의 집합소이자 싱싱한 식재료로 만든 뷔페식 식당의 맛을 즐길 수 있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인기를 얻었다.

이들은 트럭을 타고 인근 지역에 출장판매에 나서는데 한국만큼 편의점이 많지 않은 일본 시골 지역에서는 반가운 손님이다. 출장 서비스 지역은 공민관(마을회관) 5곳인데 트럭이 들어오기 전부터 어르신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물론 1시간 내로 '완판'이다.

인근 교육위원회(한국의 교육청), 학교와 함께 출하계획에 맞춰 1000여명의 급식 재료를 납품하기도 한다. 체험 실습과 이벤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농사체험 활동 역시 지역 활성화에 공헌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살구꽃 마을이용조합 직매장에 출하하는 농가들은 스스로 출하품목의 가격표와 안내 스티커를 인쇄하고 부착한다. 사진 속 주인공은 현 조합장인 테라시마 씨. 그는 "이름은 조합장이지만 사실 많은 (여성)선배들이 응원을 해주시고 야단도 많이 치신다"고 웃으며 분위기를 설명했다. ⓒ제주의소리
살구꽃 마을이용조합 직매장에 출하하는 농가들은 스스로 출하품목의 가격표와 안내 스티커를 인쇄하고 부착한다. 사진 속 주인공은 현 조합장인 테라시마 씨. 그는 "이름은 조합장이지만 사실 많은 (여성)선배들이 응원을 해주시고 야단도 많이 치신다"고 웃으며 분위기를 설명했다. ⓒ제주의소리
살구꽃 조합의 힘의 원천은 이 지역의 '엄마'들이다. 여성농민들의 주도적인 움직임은 일본 최초 농민 운영 직매장을 탄생시켰다. ⓒ살구꽃 마을이용조합
살구꽃 조합의 힘의 원천은 이 지역의 '엄마'들이다. 여성농민들의 주도적인 움직임은 일본 최초 농민 운영 직매장을 탄생시켰다. ⓒ살구꽃 마을이용조합

올해 임기를 시작한 현 조합장은 남성이지만 이사진 6명 중 4명이 여성이고, 실험과 도전의 주체는 마을 농가의 여성들이었다. 그들 스스로 ‘엄마 파워에서 태어난 살구 마을’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테레시마 조합장은 “순수하게 농민 생산자들이 설립한 직매장은 이 곳이 최초였다”며 “풍작으로 폐기될 위기에 처한 농작물들을 판매하기 위해 어머니들이 어떻게든 팔아보려 만든 푸드트럭(출장판매)이 시초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애초에 매출을 크게 늘리자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다양한 방법으로 이 곳을, 또 지역 농업을 유지시키는 게 목적이었다”고 지향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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