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집배원의 하루] 제주 집배원들 하루 평균 1300통 우편물 처리…강요 되는 '무료노동'

 

제주우편집중국 소속 집배원들인 3일 오전 7시부터 출근해 우편물 분류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일과 시간이 아니어서 초과수당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물량 처리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제주우편집중국 소속 집배원들인 3일 오전 7시부터 출근해 우편물 분류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일과 시간이 아니어서 초과수당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물량 처리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자, 자, 행낭은 저쪽으로 옮기고, 얼른 분류하고 출발하자고요”

오전 8시가 되기 전부터 건물 내부가 소란스러웠다. 각자 자신의 책상에서 우편물 분류가 한창이었다. 일반우편과 등기, 택배, 국제배송 등 종류도 다양했다.

분류가 끝나고 이번에는 우편물을 큰 주머니인 행낭에 넣은 작업이 진행됐다. 집배원들이 사무실 서쪽 끝에 구역별로 행낭을 쌓으면 트럭이 등장해 적재함을 채웠다.

오전 8시30분이 되자 수 십여 대의 차량과 오토바이가 대열을 이뤘다. 트럭에는 행낭과 택배상자, 오토바이 뒷좌석에 부착된 빨간 바구니에는 우편물과 소포가 가득했다.

“일과시간 전부터 나와서 일을 하거는 거예요. 이렇게 미리 분류하지 않으면 오늘 내 배달을 할 수가 없어요. 오늘 못하면 내일 일이 더 쌓이거든요. 이러니 점심도 제때 못 먹는 거예요”

제주우편집중국 소속 홍성권(35)씨는 대학생 시절 이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서신과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우편의 매력에 빠졌다. 보편적 우편서비스에 대한 책임감도 마음을 흔들었다.

졸업 후 계약직으로 집배원 업무를 시작했다. 열심히 하다 보니 정규직의 기회가 찾아왔다. 시험에 응했고 노력에 대한 보답이 돌아왔다. 아르바이트를 포함해 벌써 10년의 세월이다.

행복도 잠시였다. 2017년 10월 트럭을 몰아 중산간 지역 우체국 택배 배달을 마치고 복귀하는 길이었다. 노후화된 수동 트럭이 말썽을 일으켰다. 제동장치가 말을 듣지 않았다.

제주우편집중국 소속 홍성권씨. 2017년 10월 우체국 택배 배달을 하다 교통사고를 당해 얼굴 마비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 흉터를 가리기 위해 사계절 내내 멀티스카프를 착용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제주우편집중국 소속 홍성권씨. 2017년 10월 우체국 택배 배달을 하다 교통사고를 당해 얼굴 마비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 흉터를 가리기 위해 무더운 여름철은 물론 사계절 내내 멀티스카프를 착용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제주우편집중국 소속 홍성권씨가 3일 오전 제주시 노형 일대에서 우편물 배달을 하고 있다. 제주지역 집배원들이 하루 처리하는 물량는 1300통에 이른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제주우편집중국 소속 홍성권씨가 3일 오전 제주시 노형 일대에서 우편물 배달을 하고 있다. 제주지역 집배원들이 하루 처리하는 물량는 1300통에 이른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제주지역 집배원 1인 기준 일평균 물량은 일반통상 897통, 등기 111통, 소포 38통 등 모두 1046통다. 통상특급과 소포특급, 국제특급(EMS) 등을 합친 실제 배달 물량은 1300통 가량이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제주지역 집배원 1인 기준 일평균 물량은 일반통상 897통, 등기 111통, 소포 38통 등 모두 1046통다. 통상특급과 소포특급, 국제특급(EMS) 등을 합친 실제 배달 물량은 1300통 가량이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1100도로를 내려오던 중이었다. 살기 위해서는 방향을 틀수밖에 없다. 도랑으로 돌진한 차량은 그대로 뒤집혔다. 가까스로 눈을 떴지만 얼굴에서 감각을 느낄 수가 없었다.

턱에 쇠를 박는 대수술을 받았다. 꼬박 6개월간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퇴원 후에도 통증과 순간적인 얼굴 마비가 홍씨를 괴롭혔다. 쇠를 박은 얼굴 곳곳에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남았다.

해를 넘겨도 재활치료는 이어졌다. 홍씨는 통증을 참아내며 다시 출근길에 올랐다.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했다. 빈자리가 길어질수록 동료의 업무는 늘어난다는 사실도 홍씨를 괴롭혔다.

상처를 숨기려 멀티스카프를 항시 착용하며 일을 한다. 우편물을 받는 고객들이 행여 불편해 할지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다. 기자와 만난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무더운 날씨에도 홍씨는 스카프를 목에서 얼굴 아래까지 끌어 올렸다. 곧이어 오토바이를 타고 노형 배달지로 향했다. 일반우편물을 우편함에 넣지만 등기는 직접 고객에게 전달해야 한다.

고층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만 2~3층은 계단으로 이용하는 것이 오히려 빠르다. 시간을 아끼기 위함이다. 땀을 흘리며 올라가도 집 안에 고객이 없으면 다음날 다시 찾아야 한다.

7월은 그나마 물량이 적은 편이다. 추석이 다가오면 택배가 쏟아진다. 제주우편집중국과 화북동우편집배센터 소속 집배원 총 103명이 올해 배달한 물량은 1190만통이다.

1인 기준 일평균 물량은 일반통상 897통, 등기 111통, 소포 38통 등 모두 1046통다. 이는 통상특급과 소포특급, 국제특급(EMS)를 제외한 물량이다.

개인적 사유로 병가를 내거나 휴직한 동료들의 물량까지 더하면 실제 처리량은 1300통에 달한다. 업무량을 처리하기 위해 일과시간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집배원들의 동의를 얻어 한 직원의 근무일지를 확인해보니 초과근무 시간이 월 80시간을 오르내렸다. 올 초에는 100시간을 넘긴 적도 있었다.

제주우편집중국 소속 집배원들이 3일 아침 우편물 분류 작업을 마치고 오전 8시30분쯤 배달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제주우편집중국 소속 집배원들이 3일 아침 우편물 분류 작업을 마치고 오전 8시30분쯤 배달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제주우편집중국 소속 집배원들인 3일 오전 7시부터 출근해 우편물 분류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일과 시간이 아니어서 초과수당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물량 처리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제주우편집중국 소속 집배원들인 3일 오전 7시부터 출근해 우편물 분류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일과 시간이 아니어서 초과수당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물량 처리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제주우편집중국 소속 집배원들이 3일 아침 우편물 분류 작업을 마치고 행낭에 넣은 우편물을 정리하고 있다. 행낭은 승합차에 실려 거점 지역으로 옮겨진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제주우편집중국 소속 집배원들이 3일 아침 우편물 분류 작업을 마치고 행낭에 넣은 우편물을 정리하고 있다. 행낭은 승합차에 실려 거점 지역으로 옮겨진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이같은 살인적 노동시간에 내몰린 집배원들의 극단적 선택도 이어져왔다. 2017년 7월 경기도 안양에선 21년 차 집배원이 자신이 근무하던 우체국 앞에서 몸에 불을 붙여 결국 숨졌다.

같은 해 9월 전라도 광주에선 15년 차 집배원이 “두렵다. 이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을 하라네. 사람 취급 안하네. 가족들 미안해”라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인 선택을 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지난해 2월27일에는 충남 서산에서 번개탄을 피워 집배원이 숨지는 일도 있었다. 이 날은 근로시간 단축안이 국회에서 합의된 날이지만 고달픈 집배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현실은 그대로였다.

올해만해도 전국에서 9명의 집배원이 과로사 등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평소 과중한 업무와 피로에 힘들어했다는 유족들 증언은 공통분모다. 집배원들의 파업이 단순한 대항이 아닌 생존의 몸부림인 이유다.

집배원들의 잇단 죽음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자 지난 2017년 노사정이 참여해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이 꾸려졌다. 추진단 조사에선 집배원 직무 스트레스가 소방관(48.8점)보다 높은 54.6점이었다.

이후 상황이 나아졌을까. 이달부터 주52시간 근로제가 도입됐지만 제한된 시간에 물량을 처리하지 못해 무료 노동을 하는 시간은 오히려 늘었다는 것이 집배원들의 목소리다.

우정본부는 추가수당 지출을 막기 위해 퇴근을 독려하지만 집배원들은 맡은 물량 처리를 위해 퇴근후에도 일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원치 않은 무임금 노동에 내몰리는 구조가 어제 오늘 이야기는 아니다.

실제로 추진단 조사결과 집배원 평균 노동시간은 2017년 기준 2745시간. 우리나라 노동자의 평균 노동시간 2052시간보다 693시간 많았고, 3000시간 넘게 일하는 집배원도 1400여명에 달했다.

지난해 5월 우정노사협의회에서 2019년 7월1일부터 토요배달 폐지를 합의했고, 지난해 10월 추진단에서는 2000여명의 정규직 집배원 증원도 결정했다. 이번 파업은 그 약속을 지키라는 정당한 요구라는 것이다.  

집배원들은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고 성토한다. 실제로 집배원 1000명 인력 증원을 위한 예산이 2019년 국회 예산결산심사소위원회까지 통과했다가 마지막 소소위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우체국이 금융사업으로 한해 수천억 원의 흑자를 내면서, 공공성이 강해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우편사업은 우정사업본부 일이라고 모르쇠하는 정부이 책임이 무엇보다 크다고 지적한다.

“52시간 근로제 도입에 맞춰 인력 충원도 이뤄져야죠. 제한된 인원에 근무시간만 줄면 결국 저희에게 무료 노동하라는 것 밖에 안됩니다. 지금도 퇴근일지 작성하고 다시 일을 합니다”

집배원들은 살인적인 업무강도를 해소해 달라며 총파업을 결의했다. 5월24일 진행된 총파업 투표에서 도내 집배원 노조 377명 중 371명이 투표에 참여해 93.5%인 347명이 찬성했다.

9일 총파업이 현실화 되면 제주에서도 1958년 우정노조 설립 61년 만에 사상 초유의 우편 대란이 벌어진다.

제주우편집중국 소속 홍성권씨가 3일 오전 제주시 노형 일대에서 우편물 배달을 하고 있다. 제주지역 집배원들이 하루 처리하는 물량는 1300통에 이른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제주우편집중국 소속 홍성권씨가 3일 오전 제주시 노형 일대에서 우편물 배달을 하고 있다. 제주지역 집배원들이 하루 처리하는 물량는 1300통에 이른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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