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농가들의 사회안전망이 된 로컬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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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슈에서 본 제주농업의 미래] (5) ‘자발성’ 이끌어낼 풍토 조성이 관건

최근 로컬푸드에 쏟아지는 관심은 안전한 먹거리를 넘어 ‘농민이 행복한 농업’, ‘지속가능한 농촌의 미래’와 연결돼 있다. 수십년 전부터 로컬푸드를 기반으로 다양한 시도를 이어오고 있는 일본의 현실 모델들은 좋은 참고서가 된다. 다섯 차례에 걸쳐 일본 규슈에서 만난 농가들의 이야기를 싣는다. 제주농업의 미래를 내다 보는 계기가 될 것 같다. [편집자 주] 

오오무라 꿈의 농장 슈슈의 직매장. 지역에서 나온 다양한 종류의 로컬푸드를 만날 수 있다. 규슈에서 손꼽히는 성공 사례지만 그들의 직매장 건물과 시설들은 크지 않고 아담하다. ⓒ제주의소리
오오무라 꿈의 농장 슈슈의 직매장. 지역에서 나온 다양한 종류의 로컬푸드를 만날 수 있다. 규슈에서 손꼽히는 성공 사례지만 그들의 직매장 건물과 시설들은 크지 않고 아담하다. ⓒ제주의소리

매년 제주농업이 위기라는 말이 반복된다. 농가부채와 농산물 가격 하락을 두고 ‘고부가가치화가 필요하다’, ‘2차, 3차 산업과 연계해야 한다’는 방법론에 농업현장에서는 ‘산업화를 해도 농가에게는 정작 떨어지는 게 없다’는 냉소가 나온다. 돌고 돌아, 농업 관련 의제는 작물별 생산량이나 지원사업의 규모 등 ‘무난한 주제’에 초점이 맞춰진다. 

사실, 위기의 본질은 현재 ‘단일품목 대량 생산, 대량 유통’ 시스템 아래서는 가족농, 소농, 고령농이 설 자리는 없다는 데 있다. 이 상황에서 일본 아지무의 드림파머즈처럼 청년들이 농촌으로 돌아와 다양한 실험을 하는 일은 기대하기 힘들다. 가족농들이 떠나가고 청년들이 오지 않는 농촌의 미래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다품종 소량생산’이 특징인 로컬푸드가 대안으로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로컬푸드 체계가 일단 자리잡으면 고령농, 소농이 따라갈 수 있는 리듬이 조성된다.

임경수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 커뮤니티비즈니스사업 자문위원은 “단일 품목의 대량 생산-유통 시스템은 고령농이 계속 소득을 올릴 수 없는 구조”라며 “로컬푸드의 특징인 다품종 소량 생산 체계를 통해 본인의 노동력을 시기별로 분산할 수 있어 고령농의 농업은 지속가능해진다”고 말했다.

또 “로컬푸드가 자본력이 없는 청년들도 크지 않은 농지규모에서 ‘살아보고 실험하면서’ 농업에 진입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일본 규슈의 혁신 농가들은 로컬푸드를 기반으로 다양한 시도를 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농민들이 뭉쳐 스스로 지역의 문제를 발굴하고 대안을 모색했다.

아지무의 드림파머즈는 청년농부들이 ‘최상급이 아닌 과일의 판로 확충’을 고민하다 적은 양의 남는 과일로도 만들 수 있는 드라이 후르츠를 개발해냈다. 이들의 가공시설은 ‘농가들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소규모다.

후쿠쓰의 살구마을 이용조합은 지역의 여성농민들이 남는 과일의 처리 방안을 논의하다 서로 합심해 트럭 출장판매를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오오야마의 꿈의 농장 슈슈는 방치되는 경작지의 활용방안을 고심하다 농업대학이라는 콘셉트의 연중 체험프로그램을 개발해냈다.

후쿠쓰 살구꽃 마을이용조합이 운영하는 직매장의 매출은 한 해 4억원에 이르고, 각종 농업축제와 정부부처 평가에서 훌륭한 마을만들기 사례로 인정받았다. "남는 과일들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지역 여성농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에서 시작됐다. 사진은 살구꽃조합의 여성조합원들. ⓒ살구꽃 마을이용조합
후쿠쓰 살구꽃 마을이용조합이 운영하는 직매장의 매출은 한 해 4억원에 이르고, 각종 농업축제와 정부부처 평가에서 훌륭한 마을만들기 사례로 인정받았다. "남는 과일들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지역 여성농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에서 시작됐다. 사진은 살구꽃조합의 여성조합원들. ⓒ살구꽃 마을이용조합

이들의 움직임은 지역 복지 차원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 소농들에게 꾸준한 수입원이 제공되고, 지역주민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새로운 역할이 주어진다. 고령농도 계속 농업에 종사할 수 있게 되고, 방치될 뻔한 농지는 이 지역의 가치를 알고 방문하는 이들의 놀이터가 된다. 수익은 지역 농민들에 환원되고, 주민들은 꾸준한 일자리를 제공받는다. 

‘어떻게 하면 이 지역 농업이 지속가능할까’를 고민하던 자발적인 움직임이 이젠 사회안전망의 기능을 하게 된 셈이다. 

자발성의 요건은 충분한 시간이다. 농민들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각종 지원사업으로 대규모의 예산을 투입해 만든 대형 시설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드림파머즈, 꿈의 농장 슈슈 등 규슈의 로컬푸드 혁신 농가들은 ‘사람이 먼저 있어야’하는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미치노에키와 살구꽃 이용조합의 사례는 최초 공간조성을 도와주고 운영은 농민들에게 맡기며 ‘판만 조성하고 뒤로 숨는’ 행정의 역할을 잘 보여준다.

임 위원은 로컬푸드와 사회적경제의 성지로 꼽히는 전북 완주를 언급하며 “완주도 농민들이 3년을 준비하고 나서야 직매장을 만들었다”며 “농민조직이 준비가 되지 않았음에도 성과를 올리기 위해 빨리빨리 건물을 짓는 식으로 접근한 지역은 다 주저앉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주민 자발성이 없는 곳, 사람이 없는 곳은 잘 돌아가기 어렵다”며 “준비시간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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