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사를 위한 놀이 수업] 1. 돈 대신 상상력을 더한 '자연그리기 놀이'

얼마 전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특별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국어와 체육 통합수업으로 정규 수업 시간을 배정해 주셨습니다.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수업 내용인 정크아트에 대한 사전 수업과 준비물을 상세히 안내해주셔서 재밌는 볼거리를 많이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학창 시절 생각이 났습니다. ‘야외수업’이라는 한마디에 며칠 전부터 설렜던 마음. 틀에 박힌 학교와 교실에서 잠시만이라도 일탈해 숨을 쉬어보고 싶은 욕구가 없는 어린이는 없을 것입니다. 만약 이 수업을 제주시의 어떤 초등학교에서 한다면, 서귀포의 한 초등학생이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전국 어느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수업은 행복할 것입니다. 이런 기회를 받지 못한 친구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다른 초등학생에게 이런 기회를 준다는 건 불가능할 거라는 생각에 안타까운 감정이 휘몰아치던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만약 초등학교 선생님에게 즐거운 놀이 수업 방법을 알려줄 수 있다면 그 선생님 덕분에 초등학생들이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반 학생들에게 행복한 시간을 선물하고 싶은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 교육 과정의 전달자로 머무는 스스로의 모습에 회의감을 가지고 있는 선생님, 교사의 자기결정권을 중요시하며 교육과정의 창조자로 다가가고 싶은 선생님, 그 무엇보다도 아이들과 친해지고 싶고 아이들의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 선생님들은 어디에나 있을 것입니다. 그 분들에게 제 마음이 잘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게임 설명서(튜토리얼)에 담은 놀이 정신

특별한 야외수업은 단지 밖에서 수업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학교 밖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자세히 들여다보고 관심을 가짐으로써 아이와 야외가 하나 되는 시간입니다. ‘자연그리기 놀이’는 정크아트(junk art)에 바탕을 둔 놀이 수업이지만 ‘자연물’이 추가된다는 점에서 ‘정크 아트 플러스 알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그리기 놀이는 이탈리아의 천재 그림책 작가 엠마누엘레 베르토시의 《누구세요?》(북극곰)의 상상력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버려지는 물건을 이어 붙여 캐릭터를 만들고 거기서 이야기를 입혀서 그림책을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즐겨 하는 휴대폰 게임에는 튜토리얼(tutorial, 게임 설명서)이 있습니다. 책 놀이는 그림책을 튜토리얼로 사용합니다. 책 놀이의 튜토리얼은 ‘놀이의 정신’을 담았습니다. 《누구세요?》가 추구하는 놀이의 정신은 ‘일상’입니다. 

놀이가 소비가 된 오늘날 ‘자연그리기 놀이’는 놀이의 소비를 거부합니다. 선생님들의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려보세요. 꼭 돈이 있어야 즐겁게 놀 수 있었던 건 아니죠. 볼펜이나 연필 두 개만 있어도 ‘스트리트 파이터’를 할 수 있었고, 돌멩이나 나뭇가지만 있어도 몇 시간 동안 재밌게 놀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값비싼 장난감이나 보드게임, 오르다, 스마트폰 등 돈으로 손쉽게 놀이를 사고 있습니다. 돈이 놀이의 세계로 들어오면 놀이의 정신은 크게 위축되고 맙니다. 30여년 전 돈도 없었고 장난감도 없었던 시절의 놀이 상상력을 지금의 아이들에게 선물해 줍시다. 

단지 못 쓰는 물건으로 작품을 만드는 활동이 되면 안 됩니다. 활동의 중심을 이루는 이야기, 즉 ‘테마’가 있어야 합니다. 저는 ‘광령초등학교에 살고 있는 요정 만들기’를 테마로 설정했습니다. 버려진 물건, 죽은 식물, 굴러다니는 나뭇가지나 작은 돌멩이 등이 모여서 하나의 존재로 부활할 때 뜻 깊은 활동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활동의 중심 이야기를 어떤 테마로 할지 미리 생각하고 아이들에게 제시하면 활동 전체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작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자연그리기 놀이의 준비과정

먼저 준비 과정은 알림장 또는 알림문자를 통해서 준비물을 모으는 일입니다. 놀이 수업에 대해서 며칠 전에 아이들에게 공지를 하면 이미 소문이 납니다. 아래는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의 부모님들께 보냈던 문자 메시지 내용입니다. 

오늘 알림장에 쓸 내용이 길어질 것 같아 0월 00일 0요일 정크아트 수업(우리주변에 버려진 물건을 이용해서 창작 표현활동) 준비물은 메세지로 알려드립니다~

꼭 다 가져와야하는 것은 아니니 집에 버려지는 재료나 물건이 있으시면 부담 없이 보내주세요^^

학생들이 도화지에 붙여서 창착활동(사이즈가 많이 크지 않는 크기)을 할 예정입니다

준비물 : 집에서 못 쓰는 물건(병뚜껑, 옷조각, 단추, 사용한 빨대 등) 또는 도화지에 붙일 수 있는 냉장고 속 쓸 수 없는 재료(예시: 밀감 껍질 또는 파프리카 윗부분 꼭지, 토마토 꼭지, 양파껍질, 시든 깻잎, 당근 껍질, 시든 양배추 배추 잎 등)

아이들이 준비할 것 외에 선생님이 준비할 재료는 도화지(또는 스케치북), 그리기 도구(색연필, 크레파스, 싸인펜 등), 투명테이프 큰 것, 가위, 딱풀 따위입니다. 아이들이 가져온 자연물이나 버리는 물건을 종이에 표현할 때는 투명테이프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충분한 양을 준비하시는 게 좋습니다. 

놀이는 전체적으로 준비 과정, 그림책 읽고 대화하기, 채집 활동, 그림 표현, 자랑하기의 흐름으로 진행합니다. 짧은 시간에 놀이를 마치기보다는 비교적 여유를 주는 게 좋습니다. ‘자연 그리기 놀이’의 가장 좋았던 점을 조사하면서 흥미로웠던 건 ‘채집 활동’이었습니다. 아이들이 가져온 준비물로 자신이 상상하는 목표를 표현하려면 필연적으로 뭔가 부족하다는 걸 느낍니다.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예술작품에 맞는 재료들을 찾는 시간을 주는 게 중요한 까닭은 자기 주변을 관찰하는 드문 기회가 바로 채집 활동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던 솔방울은 요정의 멋진 방패이거나 치마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자연물 하나하나에 대해서 아이 특유의 상상력과 관찰력을 발휘합니다. 

야외 수업 '자연그리기 놀이'에 참여한 아이들의 결과물.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야외 수업 '자연그리기 놀이'에 참여한 아이들의 결과물.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자연그리기 놀이의 본 과정

그림책 읽기 과정은 단순히 놀이 방법을 전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서 아이들이 놀이의 방법과 목적 등을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해야 합니다. ‘퀴즈’는 좋은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구세요?》를 읽으며 ‘물고기는 무엇으로 표현했을까?’라고 질문하면 삽의 머리 부분과 문 손잡이, 그리고 넓적바위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두 개 또는 세 개 이상의 자연물 또는 버려진 물건을 결합시켜서 요정을 만드는 방법을 대화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고기 그림에서 버려진 물건 외에 어떤 것들이 보이는지 물어보면 한동안 대답을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림책을 자세히 들여다보라고 하고 약간의 시간을 주면 해초와 물고기 떼를 그림으로 표현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단지 삽 머리와 문 손잡이 만으로 물고기를 표현하는 게 아니라 주변 풍경을 그림으로 그려줘야 한다는 것을 어느새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왜 그리기 도구가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놀이 수업 준비를 하는 선생님은 그림책을 읽어주며 던질 몇 가지 질문을 준비합니다. 문답 과정에서 놀이 방법을 충분히 설명하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교사의 수업 취지를 따라온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질문을 통해 그림책으로 튜토리얼을 전달하기는 꽤 오랜 시간과 시행착오가 필요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림책을 읽어주고 간단한 놀이 방법만 설명했거든요. 아이들은 그림책도 놀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결과물에서 문제점이 크게 나타났습니다. 고민 끝에 ‘그림책 퀴즈’라는 대안을 마련했습니다. 놀이 설명에 대한 질문을 만들어 퀴즈로 냈더니 아이들의 집중력과 이해력이 높아졌습니다. 질문을 도입한 후 아이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심지어 미취학 아동인 6세와 7세도 놀이의 방법을 정확히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퀴즈’는 그야말로 신의 한 수가 됐습니다. 

마지막으로 ‘자랑하기’ 과정에서는 인터뷰를 덧붙이는 게 좋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표현한 결과물에 대해서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는 언어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상상력이 담긴 질문을 통해서 상상력을 열 수 있습니다. 예컨대 아래 ‘강철기계’(그림1)를 표현한 어린이에게 “왜 배터리를 꼭꼭 숨기고 있어?” 또는 “배터리를 빼면 어떻게 돼?”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어린이의 상상력이 자극이 됐습니다. 공통 질문은 요정의 공격력과 방어력은 어떻게 되는지, 기분이 좋을 때 또는 기분 나쁠 때는 어떻게 변신하는지,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등을 질문으로 던지면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상상력도 키웁니다. 어린이들이 가장 즐거웠던 소감 중 하나는 ‘상상하기’였습니다. 상상하는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 교사는 좋은 질문을 준비해두는 게 좋습니다. 

야외 수업 '자연그리기 놀이'에 참여한 아이들의 결과물.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야외 수업 '자연그리기 놀이'에 참여한 아이들의 결과물.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야외 수업 '자연그리기 놀이'에 참여한 아이들의 결과물.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야외 수업 '자연그리기 놀이'에 참여한 아이들의 결과물.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위와 같은 방법으로 특별수업이 끝나고 며칠 지나 아이의 담임선생님과 통화하면서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이들의 학급 신문 활동 시간에 1학기 ‘대박 사건’에 놀이 수업이 선정된 것입니다. 

자연 그리기 놀이는 진정한 야외 수업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야외에서 자연과 대화하고 호흡하는 동안 어린이들이 자연과 자연스레 하나 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그리고 돈을 쓰지 않고 간단한 물건만으로 아름다운 그림과 즐거운 놀이를 선물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선생님의 어린이들도 좋은 선물을 받을 수 있다면 더없이 행복할 것입니다. 

#오승주는?

1978년 제주 성산포에서 나고 자랐다. 제주대에서 국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2003년부터 10여 년간 서울 강남에서 입시컨설팅, 논구술 특강 등의 일을 하다가 대한민국 입시구조와 사교육 시스템에 환멸감을 느꼈다. 

이후 언론운동과 시민정치운동, 출판문화운동, 도서관 운동 등에 참여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변화의 힘은 가정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족의 끈이 이어지게 하는 일에 인생을 걸었다. 소홀했던 가정이 무너지기 직전, 아이의 간절한 외침 소리를 들었기 때문. 

2013년 《책 놀이 책》을 써 아이와 부모를 놀이로 이어 주었고, 3년간의 공부방 운영 경험과 두 아들과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썼다. 아빠 육아, 인문고전으로 아이 깊이 읽기로 가족 소통을 꾀했다. 

현재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공자의 논어》,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사마천의 사기》를 집필 중이며 아주머니와 청소년을 작가로 만드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글쓰기·책쓰기 강사로서 지역 도서관과 활발히 사업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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