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26. 닭도 제 앞씩 끊어 먹는다

* 지 앞씩 : 제 앞씩, 제 앞의 것만
* 근어 먹나 : 그러내 먹는다. 끊어 내 먹는다

어릴 적 일이다. 집에 기르는 닭과 친했다. 그때는 레그혼 같은 외국에서 들여온 종들이 있었다. 깃털 빛깔이 알록달록 고와 사랑스러웠다. 한 달이면 스무 개 가까운 달걀을 낳았으니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없던 시절 달걀은 최고의 반찬감이었으니까. 녀석들 알을 낳자마자 화급하게 둥지를 나오며 꼬꼬댁 꼬꼬댁 소리 지르는 게 신기했다.  
  
닭들이 마당이나 우영(텃밭)에서 먹이를 찾아 먹는 것을 유심히 보다 놀랐다. 자기 앞엣것만 쪼아 먹지 남 앞에 덤벼들거나 빼앗으려 않는 게 아닌가. 먹이 놓고 서로 쌈질하는 일이 일절 없었다. 단, 갑자기 지네가 출현했을 때만은 예외였다. ‘닭과 지네’라고 하지 않는가. 천적 관계다. 눈앞에 지네가 나타났다면 꼬꼬댁 소리치며 바람처럼 달려든다. 
  
닭이란 종에게는 눈앞에 지네만 보면 필사적으로 쪼아 죽이는 유전자가 있는 모양이다. 제 앞씩만 쪼아 먹던 닭들이 이성을 잃을 때가 바로 지네가 등장할 때다.
  
어쨌거나 욕심을 부리지 않고 제 앞씩 쪼아 먹어 먹이를 독차지하려고 과욕을 부리지 않고 살아가는 닭의 모습이 어린 눈에도 예사롭지 않았다. 한데 만물의 영장임을 자처하는 인간들은 과도한 욕심을 내기 일쑤다. 욕심에 눈이 뒤집히면 내 것 네 것을 분간하지 않게 된다. 함부로 남의 영역까지 침범하면서 싸움이 벌인다. 심지어 종교계까지 그런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가. 이른바 밥그릇 싸움, 욕심이 부른 화(禍)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한낱 미물인 닭도 제 앞만 그러먹지 않는가. 사람은 모금지기 제 분수를 알아야 하느니.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닭도 욕심을 부리지 않는데 사람이 되고서 과욕으로 분란을 일으켜서야 사람 면목이 서겠느냐 함이다. 무욕(無慾), 사람이 이루기 어려운 경지다. 그럴싸한 비유다.

원불교 〈대종경〉에 ‘욕심’에 대해 밝히고 있다.

“욕심은 없앨 것이 아니라 도리어 키울 것이니, 작은 욕심을 큰 서원(誓願)으로 돌려 키워서 마음이 거기에 전일(專一)하면 작은 욕심들은 자연 잠잘 것이요, 그러하면 저절로 한가롭고 넉넉한 생활을 하게 되리라.”

제거해야 할 욕심이 아닌, 큰 서원으로 키워야 할 적당한 욕심을 함께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욕심이 없으면 마음이 편하다고 한다. 하지만 ‘공부는 욕심이 있어야 해, 그래야 성적이 올라’라며 욕심을 ‘의욕’과 혼동해 쓰는 경우도 있다. 욕심에서 잘되는 일 없다고 하는 걸 보면, 지나친 욕심을 부리게 되면 오히려 일을 그르치게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왕의 형으로서 욕심을 버리고 무심(無心)의 경지에서 한 평생을 보낸 사람이 있다.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月山大君). 조정의 권신들의 암투로 왕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게 되자, 부귀영화를 버리고 자연 속으로 은둔했다. 본시 학문을 좋아한 그는 산수간(山水間)에 몸을 두어 서적을 쌓아두고 시문을 읊으면서 풍류적인 삶을 이어 갔다 한다.

그가 남긴 시조 한 수가 있다.

추강(秋江)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치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無心)한 달빛만 싣고 빈 배 저어 오노라 
〈청구영언〉

시조의 종장에 나온 ‘무심’이 키워드다.

‘무심(無心)한 달빛만 싣고 빈 배 저어 오노라’는 놀라운 절창(絶唱)이다. 마음을 비운 무심의 경지에서 나오는 목소리라 심금을 울린다.

작은 욕심을 잠재울 수 있는 큰 욕심이 아니면 버려야 할 것이 욕심이다. 크고 작은 화(禍)가 욕심에서 나온다. 한낱 미물인 닭도 제 앞만 그러먹지 않는가. 사람은 모금지기 제 분수를 알아야 하느니.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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