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시선] 집회 불참 종용? 시대착오적...진실 밝히는데 주력해야

옛말에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고 했다. 괜한 오해를 살 일을 삼가라는 뜻이다.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한 유족을 생각해서라도 지금은 진실을 밝히는데 주력할 때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옛말에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고 했다. 괜한 오해를 살 일을 삼가라는 뜻이다.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한 유족을 생각해서라도 지금은 진실을 밝히는데 주력할 때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살인 미수’ 사건 하나만 터져도 난리가 났던 시절이 있었다. 맞다. ‘살인’ 사건을 말하는게 아니다. 내 기억으로는 90년대 중반까지도 그랬다. ‘어쩌다’ 강력 사건이 발생하면 기자들은 ‘모처럼’ 부산을 떨어야 했다. 그만큼 과거 제주는 강력 범죄와 거리가 멀었다. 

이를 섬이라는 지역적 특성과 결부하는 해석이 많았다. 도둑·대문·거지가 없는 이른바 삼무(三無) 전통의 발현이라는 그럴싸한 분석도 존재했다.

그러더니 언제부턴가 범죄 피해를 우려하는 일이 일상화됐다. 주변에 범죄가 너무 자주 일어나서다. 흉흉해졌다고나 할까. 어느덧 ‘범죄의 도시’라는 오명까지 쓰지 않을까 걱정해야할 판이다.

‘국제안전도시 제주’의 부끄러운 민낯을 보여주는 통계가 있다. 제주경찰청의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다. 2015~2017년 제주지역 인구 1만명당 5대범죄 발생 건수는 510건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살인, 강도, 절도, 폭력, 성폭력 등 모든 게 전국 평균을 웃돌았다.

이는 체감안전도 저하로 이어졌다. 같은기간 경찰청이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체감안전도는 66.9점. 전국 최하위권에 속했다. 

이에 한 국회의원은 “과거 제주는 도둑 없고 범죄 없는 도시의 이미지였다”며 ‘격세지감’을 떠올렸다.   

당시 제주청장은 이 통계를 실리를 챙기는데 활용했다. 그는 2012년과 2017년을 비교하면 치안수요(인구)가 12.6%나 늘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같은기간 전국 평균 인구 증가율은 1.6% 밖에 안된다면서 “인력 확충!”을 읍소했다. 

이와 궤를 같이하는 분석이 있다. 급증하는 범죄가 외지인이 제주로 몰려들면서 빚어진 현상이라는 것이다. 글쎄다. 무관하다고 단정할 수도, 그렇다고 쉽게 고개가 끄덕여지지도 않는다.

빈발하는 범죄의 원인을 짚거나 대책을 논하자는 게 아니다. 강력사건이 벌어졌을 때 우리의 태도를 한번 돌아보자는 것이다. 

고유정의 엽기 행각이 올 여름 전국을 충격에 빠뜨렸다. 그 못지않게 경찰의 대응과 처신이 연일 도마에 오르고 있다.  

부실 수사 의혹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오죽하면 경찰청 본청이 직접 제주에서 진상조사를 하겠는가. 

여론의 질타에 초동수사를 맡았던 경찰관들이 내부 통신망에 글을 올린 것은 누가봐도 경솔했다. 글의 내용은 초동수사에 문제가 없었다는 취지였다. 

매번 한발씩 늦거나 수사의 기본을 지키지 않은 경찰의 항변을 국민들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담당경찰관 징계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올라온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현장검증을 하지 않은게 ‘현대판 조리돌림’을 우려한 경찰서장의 결단 때문이라는 언급은 여론의 뭇매를 맞기에 충분했다. 현장검증은 범죄의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절차로 알고 있다.  

급기야 경찰은 지역주민들에게 9일 열리는 촛불집회에 참여하지 말라고 종용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이 집회는 지역 청년회 등이 주도했다.  

이들의 요구는 고유정에 대한 엄중처벌과 조속한 피해자 시신 수습 등이다. 경찰의 부실수사에 대한 성토도 예견됐다. 이미 지난 6일 집회에서 지적이 있었다. 

철저하고 신속한 수사로 사회불안을 없애달라는 요구는 사회구성원으로서 당연하다.  

‘물밑 작업’ 의혹이 일자 또 한번 경찰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변해도 공권력은 그대로라는 비판이 나왔다.

경찰은 선을 그었다. 입장 자료를 내 초동수사에 대해 정확한 사실관계를 설명하기는 했어도 집회 불참 부탁이나 물밑작업은 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한 관계자는 “개별 경찰이 친인척이나 지인들과의 대화 과정에서 오해를 산 것이 아닌가”라고 했다. 조직적으로 움직인 일은 없다는 얘기였다.   

믿고 싶지만, 신빙성 있는 제보가 한 둘이 아니었다.

옛말에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고 했다. 괜한 오해를 살 일을 삼가라는 뜻이다. 

그러지 않아도 일각에서는 경찰이 이번 진상조사에서 검경수사권 문제를 의식해 결국은 물타기 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작년 제주청장의 읍소 전략은 차라리 애교에 가까웠다. 적어도 치부를 감추거나 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한 유족을 생각해서라도 지금은 진실을 밝히는데 주력할 때다. <논설주간/상임이사>

* 소리시선(視線) /  ‘소리시선’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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