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지법, 11일 강간살인 혐의로 재판 넘겨진 박모 씨에 무죄 선고

법원의 판단은 무죄였다.

미제의 사건으로 남아 있던 10년 전 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에 대해 검찰과 경찰은 유죄를 자신했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정봉기 부장판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등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모(50)씨에 무죄를 11일 선고했다.

재판부의 입에서 무죄라는 단어가 나오자 피고인석에 있던 박씨는 울음을 터트렸다. 같은 시각 방청석에 있던 담당 형사들은 고개를 떨구었다. 

박씨는 2009년 2월1일 새벽 제주시 용담동에서 자신이 운행하는 택시에 탑승한 이모(당시 27세.여)씨를 성폭행 하려다 살해하고 애월읍 고내리의 배수로에 사체를 유기한 혐의를 받아 왔다.

경찰은 시신이 발견된 2009년 2월7일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택시기사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이를 위해 도내 택시기사 5000명을 전수조사하고 운행기록까지 분석했다.

당시 경찰이 지목한 유력 용의자가 박씨였다. 수사에 탄력을 받는 듯 했지만 피해자의 사망 일시를 두고 혼선이 빚어졌다. DNA 등 직접증거까지 나오지 않으면서 수사는 난항에 빠졌다.

풀려난 박씨는 이듬해인 2010년 2월 제주를 떠나 여러 지역을 떠돌며 생활해 왔다. 그사이 수사본부까지 해체되면서 사건은 장기미제로 남게 됐다. 

2016년 2월7일 제주지방경찰청 장기미제사건팀이 사건을 넘겨받으면서 형사들은 다시 박씨를 겨냥했다. 2017년 6월 제주청 형사과장을 맡은 김기헌 총경이 사건을 진두지휘했다.

경찰은 여성의 사망시점을 증명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동물사체 실험을 진행했다. 당시 사체 상태와 기후조건까지 맞춰 사망 시점을 실종 당일을 기준으로 24시간 이내로 특정했다.

이후 범행 동선에서 박씨의 차량이 찍힌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정하고 당시 용의자와 피해자의 옷, 택시에서 발견된 섬유 조각에 대한 미세증거 분석 작업을 진행했다.

발전된 과학수사 기법을 총동원 해 10년 전 증거물을 다시 꺼냈다. 각 사안별로 입증 불가능한 경우의 수를 제외하며 용의자를 추렸다. 경찰의 마지막 경우의 수도 역시 박씨였다.

반면 법원은 피해자가 피고인의 택시에 탑승 했는지 여부와 검찰이 제시한 CCTV 속 차량이 피해자의 택시인지 여부에 대한 증거가 모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신체에서 피고인과 피해자의 옷에서 전혀 발견되지 않은 미세섬유증거가 검출됐다”며 “피해자가 사망 전에 제3자와 접촉하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고인의 택시에서 피해자의 옷에서 검출한 미세섬유증거와 유사한 섬유가 검출됐지만 동일하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며 “이를 이유로 두 사람간 접촉을 단정짓기도 힘들다”고 밝혔다.

CCTV에 대해서도 “영상 속 차량이 피고인이 운전한 택시와 동일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범행 경로의 다양성이 존재하는 만큼 반드시 최단거리로 이동했다고 볼 증거도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주장이나 변명이 일부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점이 있지만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됐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검찰은 "증거의 증명력 판단에 관해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판결문을 분석해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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