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지의 이웃, 미등록 노동자] ② 불편한 현실 인정하고 공론화 논의 필요

통계에도 잡히지 않은 미등록 이주노동자. 어느새 제주에도 1만여 명을 훌쩍 넘어섰다. 마땅한 대책도 없이 쉬쉬하는 사이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찾아온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은 산업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어느덧 지역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수준에 이른 것이 현실이지만, 음지에 가려 여러 사회적 문제를 낳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는 음지에 갇힌 이웃 ‘미등록 노동자들’에 대한 정책 현실과 법 규제 사이의 괴리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조명해본다. <편집자주>

같은 미등록 이주노동자 신분이라 할지라도 농업과 건설·서비스 시장의 사정은 다소 결이 다르다. 내국인과 외국인 노동자 간 '일감 나눠먹기'가 벌어지고 있는 건설 인력시장과는 달리 농촌지역 일자리는 내국인 인력을 찾기 힘들다는 전제를 두고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한국사회는 이들을 '불법체류'라고 낙인 찍고 있다. 그래서 미등록 외국인 노동시장은 철저히 음지에서만 움직이고 있다. 통계는커녕 사실 여부를 파악하는데도 어려움이 뒤따른다. 실상을 엿보기 위해서는 현장의 목소리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는 복수의 농민과 소위 '반장'으로 불리는 내국인 일자리 중개자를 통해 제주도내 미등록 외국인 노동시장의 속사정을 취재했다. 이미 수 년 전부터 인력시장에서 미등록 노동자의 고용이 고착화되고 있는 농촌지역에는 의도치 않은 '기이한 풍경'들이 연출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웃집 울타리 너머로 제사음식을 나눠먹던 풍경이나 농사일을 이웃끼리 서로 수눌음하던 제주의 오래된 정서는 서서히 옛말이 돼가고 있다. 이웃 간에 뻔히 알고 있는 미등록 노동자 고용 사실은 이제 '불편한 진실'이 됐다. 

이웃 간 서로 약점을 하나씩 쥐고 있는 셈이다. 옆집 아무개와 수틀리는 일이 생기면 곧바로 출입국·외국인청에 미등록 노동자 고용을 신고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실제로 4~5번씩 같은 이웃에 대한 미등록 노동자 고용 신고가 반복되는 경우도 있다. 

농민 입장에서는 미등록 노동자들 고용이 적발돼 물게 되는 벌금도 벌금이지만, 필요할 때 내국인 인력을 필요한 규모로 제때 공급받는 일이 쉽지 않아 또다시 미등록 노동자들의 일손을 빌릴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 한다. 

농사 특성상 필요한 인력을 제때 구하지 못하면 한 해 농사를 망치게 될 수도 있다. 가뜩이나 미등록 노동자 고용으로 인해 심적인 부담을 안고 있는 농민들인지라 조금이라도 불편한 이웃들과는 갈수록 단절되는 추세다.

제주의 농업현장에서 미등록 노동자들을 만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힘든 농사일에 종사하려는 내국인들이 갈수록 줄고 있어 인력 수급이 쉽지 않은  현실은 이처럼 미등록 노동자들에 대한 의존도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못지않게 그에 따른 기형적 현상이나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음지에 가린 미등록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한 이유다. © 제주의소리

제주 서쪽 지역의 어느 밭. 현장에 땅 주인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지만 수년째 경작은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일꾼들은 역시 모두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여느 밭들과 다른 점은 밭주인 모습은 정작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미등록 노동자 일자리를 알선하는 몇몇 브로커들은 농사를 짓지 않고 노는 땅, ‘휴경지’의 농사를 대행해주는 일종의 '상품'을 운영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 고객층은 육지부에 거주하면서 제주 땅(농지)을 사놓은 이들이다. 소위 ‘가짜 농사꾼’인 땅주인들이 주 고객이고 대부분 땅 크기가 대규모다. 

앞서 제주도는 도내 농지가 편법으로 취득돼 난개발에 이용되거나 개발을 꾀하는 사례가 생겨나고, 이로 인해 농지가 잠식되는 데다 농지 수요공급과 가격이 왜곡되는 현상이 나타남에 따라 2015년 4월 ‘농지 기능관리 강화 방침’ 발표를 통해 농지 특별관리를 실시해오고 있다.    

그러나 미등록 노동자 브로커들에 의한 대규모 휴경지 농사 대행은 제주도의 농지 특별관리 대책도 무력하게 만드는 행태다. 가짜 농사꾼인 땅주인들과 브로커 사이에 이해관계가 딱 맞아떨어져 쉬쉬하며 음성적으로 횡행하고 있다. 

농사 작물에 따라 '언제부터 언제까지 몇 명이 필요하다'는 견적이 나오면 근처 한산한 펜션을 빌려 미등록 일꾼들을 몰아놓고 경작이 진행되는 일은 이제 보기 드문 풍경이 아니다. 

이런 경우, 땅주인에게 계약된 최소한의 임대료만 지불하고 그 이상의 이윤은 고스란히 브로커의 몫이 된다. 이 때문에 브로커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더 많은 인력을 자체적으로 관리한다. 관리하는 인력의 규모에 따라 수입의 규모도 비례하기 때문이다. 

제주시 외곽 한적한 농촌에서 한창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 모습. 음지에 철저히 가려져 있어 인권 사각지대에 놓이는 등 미등록 노동자들에 대한 논의를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 제주의소리

농사현장에서는 특정 시기에 일거리가 몰리는 특성으로 인해 농번기에는 인력수급 문제로 한바탕 대소동을 치러야 한다고 지적한다. 월동무나 당근을 수확하는 겨울철에는 제주 동쪽 지역으로, 양파나 양배추 수확이 한창인 가을철에는 서쪽 지역으로 수천 명의 인력이 대거 움직이는 식이다. 

이맘때 이른 새벽 번영로와 평화로 길목에는 전세버스·콤비버스가 줄줄이 이어가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길목의 휴게소에는 일자리 중개자인 반장들 간 인력 배분이 이뤄진다. 

문제는 비수기다. 일거리가 있을 때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지만, 특별한 일거리가 없을 때 미등록 노동자들의 생활 패턴은 불투명하다. 반장들 역시 "비수기에는 이들과 연락할 일이 없어 어떻게 사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고 했다.

읍면지역 외진 곳의 한 종교시설에는 60~70명의 미등록 노동자들이 드나드는 곳도 있었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벌이 중 일부를 '십일조' 명목으로 헌금을 하면 해당 시설에서 노동자들이 거주할 방을 알아봐주고 일자리도 찾아주는 방식이다. 일당 7만원을 벌어오면 7000원을 내는 수준으로, 해당 시설에서는 미등록 노동자들에게 그 밖의 알선 수수료 등 기타비용을 일체 요구하지 않는다고 한다. 

해당 종교시설은 미등록 노동자들에 대한 일자리 소개 등이 선교 활동의 연장선이라 판단하고 있고, 노동자들도 묵을 숙소와 일자리 등을 종교시설에서 소개해주니 의지할 곳이 생긴 셈이다. 그러나 이 역시 정상적인 구조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취재 과정에서 브로커가 자신이 데리고 있던 미등록 노동자들을 본국으로 강제 송환되는 경우도 들을 수 있었다. 자신이 인력을 공급하고 있는 농가가 맘에 들지 않거나 말을 잘 따르지 않는 미등록 노동자들을 브로커가 직접 신고해 강제송환 시키는 소위 ‘자가발전’ 방식이다. 

농가 입장에선 미등록 노동자 고용현장이 적발돼 만만치 않은 벌금과 농사 일정에 큰 차질을 빚는 ‘엎친 데 덮친 격’이어도, 인력수급을 브로커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하는 상황에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다시 이 브로커에게 인력을 요청해야 하는 기이한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는 귀띔이다. 

반대로 미등록 노동자들끼리의 커뮤니티 내에서도 국적별로 조직화 돼 점차 시장에서 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미등록 노동자 중 일부는 매춘시장에 팔려나간다는 등 자세한 내용을 옮겨 담지 못하는 단편적인 증언들도 다수 있었다. 

미등록 노동자 신분 특성상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자신의 권리가 침해되더라도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 고용주가 앙심을 품고 출입국외국인청에 미등록 노동자 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다. 미등록 노동자가 강제로 쫓겨나야 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에게 요구되는 각종 불이익을 거부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므로 인권적 측면에서 실효성 있는 대안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진다. 

익명을 요구한 인권활동가 A씨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미등록 노동자 이슈가 여전히 우리사회에선 철저히 음지에 머무르고 터부시되고 있다는 점이다.”라며 “결국 기형적 노동시장의 고착화와 부작용 등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는 결국 불편한 현실을 수면 위로 끄집어 올려 공론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고 조언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