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시선] 경관 사유화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

바닷물이 철썩철썩 파도치는 서귀포 
금(은)비늘이 반짝반짝 물에 뜨는 서귀포 
자갯돌이 철썩철썩 물에 젖는 서귀포 

일제강점기 말부터 전국을 풍미한 노래 <서귀포 칠십리> 각 절(節)의 첫 소절들이다. 노랫말은 금지곡·개사곡·해금 등의 우여곡절을 거치며 변천을 거듭한 듯 했다. 컴퓨터 마우스를 옮길 때마다 각 소절의 배치 순서, 시점, 단어 등에서 미세한 차이점이 발견됐다.  

곱긴 고왔던 모양이다. 금비늘이면 어떻고 은비늘이면 또 어떤가. 어디 이 뿐이랴. 서귀포 해안은 곳곳에 기암절벽과 폭포, 올망졸망한 섬들이 어우러진 한폭의 동양화 그 자체다. 말그대로 천혜의 절경을 자랑한다. 

오늘날 서귀포를 상징하는 칠십리는 애초 거리 개념이었다. 조선시대 표선면 성읍리에 있었던 정의현성의 관문에서 방어유적인 서귀진(鎭)까지가 70여리라는 것이다. 그랬던게 1930년대 시인이자 작사가인 조명암과 작곡가 박시춘, 가수 남인수와 만나 노래로 환생했다. 금지목록에서 풀린 1993년 이후엔 제주출신 재일동포들에게 향수를 달래주는 최고의 노래로 자리잡으면서 어엿이 서귀포를 지칭하는 낱말이 됐다. 

칠십리를 ‘아름다운 해안’의 대명사로 친다면, 칠십리는 서귀진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서쪽으로도 빼어난 풍광이 쉼 없이 펼쳐진다.  

주관의 차이가 있겠으나, 압권은 올레 6코스 중간 지점 쯤 되는 검은여 해안 일대다. 서쪽으로 소정방, 정방폭포가 이어지고 앞 바다에는 섶섬과 문섬이 고즈넉하게 떠 있다. 가물가물하지만, 90년대 중·후반으로 기억된다. 난 이 곳에서 숨이 멎을 듯 풍광에 매료됐던 순간이 있었다. 

그 땐 몰랐다. 오롯이 만끽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는 사실은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알았다. 검은여 해안에 위치한 한 호텔이 부지 내 남쪽 해안을 올레꾼들이 다니지 못하도록 일부 구간을 막아버린 것이다. 올레꾼들은 해안 절경을 뒤로하고 멀찌감치 돌아가야 했다. 2009년말의 일이다. 문제의 업체는 한진그룹 계열사인 대한항공 소유의 서귀포칼호텔이었다.

부영, 한진. ‘경관 공유’를 거부하는 대기업의 행태는 제주도민에게 씁쓸함을 안겨줬다. 왼쪽은 서귀포칼호텔 해안 코스, 오른쪽은 부영 2~5호텔 조감도.

구간 폐쇄는 고(故) 조양호 회장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의 지시였다는 의혹이 뒤늦게 제기됐다. 올레 6코스가 개장한 것은 2007년 10월. 호텔 해안 개방은 당시 대한항공과 (사)제주올레의 사전 협의에 따른 것이었다. 더구나 호텔 측은 마케팅 수단으로 올레길을 적극 홍보해오던 차였다. 2009년 상반기에는 ‘1사 1올레 마을’ 결연까지 체결했다.  

전말이 알려진 건 2018년 4월( 한진그룹 이명희 ‘갑질’ 제주올레 길도 막았다-2018.4.27 제주의소리 )이었다. 한진 일가의 갑질이 국민적 공분을 불러 일으키던 때였다.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한달쯤 뒤엔 호텔이 수십년동안 도로와 공유수면 등을 무단 점용한 사실까지 드러났다. 여론의 뭇매를 맞던 호텔측은 그해 7월, 9년동안 닫혀있던 문을 다시 열 수 밖에 없었다.    

자신들은 법을 어겨가면서 ‘경관 공유’를 거부한 대기업의 행태는 제주도민에게 씁쓸함을 안겨줬다. 
 
절경이라면 주상절리로 유명한 대포동 지삿개 해안도 빼놓을 수 없다. 중문관광단지 동쪽에 자리한 지삿개는 도내 주상절리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주상절리는 화산폭발에 의해 분출된 용암이 바닷가로 흘러와 물과 만나 급격하게 수축하면서 생성된 육각형 또는 사각형 형태의 기둥을 말한다. 이곳은 기둥 하나의 높이가 30~40m에 달하며, 그 기둥들이 만든 해안의 길이가 1km에 이른다고 하니 상상만 해도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신이 빚은 최고의 비경이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다. 

과거 서귀포칼호텔이 해안을 ‘인위적으로’ 봉쇄했다면, 이곳은 ‘건물’ 자체가 해안 경관을 가로막을 판이다. 공교롭게도 둘 다 호텔이 걸려있다. 지삿개는 호텔 건축에 따른 경관 사유화 논란으로 뜨겁다. 뜨겁다는 의미에서는 일종의 핫 플레이스다. 

논란의 중심에는 이번에도 대규모 기업집단에 속하는 부영그룹이 있다. 논란은 그룹 계열사 부영주택(주)이 2016년 2월 대포동 주상절리 해안 29만3897㎡에 총객실 1380실의 호텔 4개동(2, 3, 4, 5 호텔)을 짓겠다며 건축허가를 신청하면서 시작됐다. 부영은 이미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제주) 서쪽의 호텔을 사들여 ‘제주부영호텔 & 리조트’라는 이름으로 영업중이었다. 호텔 4개동의 위치는 ICC제주 동쪽에서 아프리카 박물관 사이로 약 1km에 달한다. 해안과의 거리는 불과 100~150m. 건축고도는 지상 9층까지 지을 수 있는 35m. 원래 이 일대 건축고도는 최고 5층, 20m였다. 고도완화 특혜 시비가 일었다. 도민사회에선 이대로라면 수려한 해안을 다 가릴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했다.  

환경단체의 문제제기, 제주도 감사위원회 감사, 한국관광공사(중문관광단지 사업시행자)에 대한 제주도의 환경보전방안 재보완 요구 등을 거쳐 제주도는 그해 12월 건축허가를 최종 반려했다. 뒤늦게나마 민심을 받든 셈이 됐다.

부영 측은 두 건의 소송으로 대응했으나 최근 제주지방법원은 제주도의 손을 들어주면서 의미있는 메시지를 던졌다. 

제주의 지질학적 특성과 도민들의 인식변화로 인해 환경적 가치에 대한 보호가 강조되고 있다며 환경영향평가가 완료됐더라도 제주도는 재평가를 요청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환경영향평가 제도의 입법 취지는 환경공익에 대한 보호와 함께 지역 주민들이 환경 침해를 받지않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는 개별적 이익에 대한 보호까지 포함된다고 강조했다. 행정당국을 뜨끔하게 할 정도의 전향적인 내용이었다. ‘보물섬 제주’의 환경적인 가치를 매우 적극적으로 해석한 것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판결 직후 환경단체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거론하며 수용을 촉구했다. 제주도에는 주상절리대 문화재보호구역 확대 추진을 요구했다. 

하늘이 내린 경관은 어느 누구의 전유물이 아니다. ‘사회 기여’를 기업이념의 하나로 내세우고 있는 부영은 어떤 대답을 내놓을까. <논설주간/상임이사>

* 소리시선(視線) /  ‘소리시선’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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