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과 실컷 노는 어린이를 꿈꾸며 만든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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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사를 위한 놀이 수업] 3. 엄마 색깔과 아빠 색깔이 결혼해서 아이 색깔을 낳았어요

색깔과 사랑에 빠진 아이! 상상만 해도 가슴이 설렙니다. 요즘은 물감 놀이를 잘 안해서 아쉽지만, 물감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그 자체로 행복입니다. 물감결혼식을 하려면 먼저 튜토리얼 그림책 《파랑이와 노랑이》를 읽어줍니다. 그러고 나서 ‘색깔 대화’를 진행합니다. ‘색깔 대화’는 다음과 같은 주문과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색의 눈으로 보아라, 뾰로롱! 자, 주변에 어떤 색깔이 눈에 들어오나요?”

‘숨은 그림 찾기’처럼 ‘숨은 색깔 찾기를 해보겠습니다’라고 관심을 이끌면 좋습니다. 마치 마법사의 주문을 외우듯 말을 걸면 아이들의 머릿속에는 색깔로 가득 채워집니다. 이 때 주의할 점은 색깔 먼저 이야기하지 말고 물건을 말하게 해야 합니다. 색깔에 물건이 들어 있는 게 아니라 물건에 색깔이 들어 있기 때문이죠. 예컨대 빨간색 시계를 보면서 ‘빨강색’이라고 하면 다른 빨강색도 많아서 헷갈리지만, ‘시계’라는 물건을 먼저 말하면 아이들의 시선이 시계로 집중되고 자연스럽게 빨강색이 눈에 들어옵니다.

어린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줄 때 여태껏 보지 못했던 그림을 잘 찾아내듯, 주변의 사물들을 색깔로 말하라고 하면 생각지도 못했던 색깔을 짚어내기도 합니다. 한 도서관에서 색깔 대화를 진행할 때 한 어린이가 《여자 몸 사용 설명서》를 이야기해서 모두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책의 색깔이 너무 강했나 봐요.

처음에는 원색에 가까운 물건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빨강색, 파랑색, 노란색 물건들이 단골입니다. 하지만 현실의 빨강색은 두 가지 이상의 색이 조합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빨강색 물건이라고 해도 하얀색이나 노란색을 살짝 섞은 혼합색깔이죠.

“빨강색에 어떤 색깔을 살짝 섞었을까요?”

색깔이 섞이면 두뇌도 함께 섞입니다. 어린이들은 자신의 색깔 경험을 토대로 추론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가리켰던 빨강색 물건이 원색이 아니라 혼합색에 가깝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 해도 커다란 진전입니다. 두 어린이가 마침 책장을 짚었습니다. 첫 번째 책장은 아이보리 빛이었고, 두 번째 책장은 갈색에 가까웠습니다. 두 어린이 모두 갈색과 노란색을 합쳤다고 말했지만 아이보리 책장은 노란색의 비율을 높였고, 갈색 책장을 가리킨 아이는 갈색의 비율을 높였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와 같은 색깔 대화를 통해서 어린이들은 다음의 두 가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1. 엄마 색깔과 아빠 색깔이 결혼해서 아이 색깔을 낳았다.
2. 엄마 색깔과 아빠 색깔의 비율에 따라 아이 색깔이 달라질 수 있다.

놀이 이름을 ‘물감결혼식’이라고 부른 까닭은 결혼을 통해 색깔이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는 은유를 통해서 물감의 섞임을 적절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감결혼식 놀이의 튜토리얼은 천재 그림책 작가 레오 리오니의 《파랑이와 노랑이》(물구나무)입니다.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 그림 1. 물감결혼식의 그림책 튜토리얼. 놀이 방법 파악을 어려워하는 친구들에게 책 표지를 보여주면서 설명해주면 편리합니다. 파란색을 아빠 색깔, 노란색을 엄마 색깔, 초록색을 아이 색깔로 설명하고 여기다가 어떤 물건을 색깔로 표현했는지만 밝히면 됩니다.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많은 가족을 만들면 승리!

물감결혼식의 놀이 방법은 간단합니다. 처음에 색깔 대화를 통해서 발견했던 물건의 ‘가족 사진’을 색깔로 표현하라고 합니다. 아래의 사진(그림2)은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의 색깔 가족 사진입니다. 한 가족일 뿐이지만 정석대로 잘 표현했습니다. 특이한 점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형 색깔’을 표시했다는 점입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나 놀이 초보자와 물감결혼식을 할 때는 엄마 색깔, 아빠 색깔, 아이 색깔만을 가르쳐주는 게 좋습니다. 어린이가 물감을 섞다 보면 뜻한 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다른 색깔을 섞어볼 것입니다. 이것은 놀이의 또 하나의 묘미입니다. “선생님, 색깔 세 개 섞어도 돼요?”라고 질문하면 그렇게 하라고 대답해주시면 됩니다.

처음에는 저도 ‘두 가지 이상의 색깔’ 또는 ‘두어 가지 색깔’이라고 설명했지만 안 그래도 색깔 대화를 통해서 어린이들의 뇌는 지진이 날 것처럼 격동하고 있기 때문에 부담을 덜어주는 게 좋습니다. 세 가지 이상의 물감을 써서 원하는 색깔에 도달했을 때는 놀이 선생님을 뛰어넘은 것 같은 판타지를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 성취감은 대단히 소중한 것입니다.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 그림 2. 초등학교 1학년 남자 어린이의 작품. 아이 색깔에 ‘책장’이라는 정확한 이름이 있고, 아빠 색깔, 엄마 색깔에 형 색깔까지 더했습니다. 말해주지 않은 범위까지 넘어갔을 때는 콕 집어서 칭찬을 해주는 게 좋습니다.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아래 사진(그림3)은 초등학교 3학년 여자 어린이의 작품입니다. 엄마와 아빠, 형(오빠) 같은 가족의 비유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엄마, 아빠, 결혼 등의 은유는 목표로 한 색깔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며 추상적인 사고가 발달하는 단계에서는 첫 단계를 건너뛰어도 좋습니다. 이 학생은 더하기(+) 표시로 원색을 구분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네 가족이나 탄생시켰습니다.

제가 물감결혼식 놀이를 막 시작하던 시기만 하더라도 분명하게 표현되지 않았습니다. 대화와 질문을 풍부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색깔 가족사진에 원색을 집어넣지 않거나 어떤 물건을 표현하였는지 표시를 해놓지 않으면 다음에 이 작품을 보았을 때 느낌이 살아나지 않습니다. 색깔 대화를 진행할 때 어린이들이 발표했던 물건과 색깔, 그리고 엄마 색깔 아빠 색깔은 메모해 두게 하는 게 좋습니다. 진행자가 일일이 기억할 수 없을뿐더러 어린이들이 상상 속으로 섞었던 색깔과 실제 섞었던 색깔을 비교하려면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부분은 놓치기 쉬운 점이라 강조해 둡니다.

그리고 아래 학생은 ‘색깔결혼식’이라고 제목을 썼습니다. ‘물감결혼식’의 이전 이름은 ‘색깔결혼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색깔’이라는 낱말이 어린이들에게 잘 와 닿지 않고 추상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물감’이라는 낱말로 바꾸자 정확히 전달되었습니다. 물감을 섞어서 표현한다는 느낌을 제목에 넣을 수 있었기에 과감히 개명했습니다.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그림 3. 초등학교 3학년 여자 어린이의 작품. 엄마, 아빠 등 비유적 장치는 사라졌고 더하기(+)를 통해서 색의 구분을 하는 것으로 보아 추상적인 사고가 어느 정도 자리 잡힌 것으로 보입니다. 3학년 이상 어린이 또는 여자 어린이의 경우 색에 대한 감각이 타고나서 수준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다음으로 보여드릴 두 개의 사진은 물감결혼식 놀이를 하면서 특히 감명 깊었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 그림 4(왼쪽), 그림 5(오른쪽). 손에 물감을 잔뜩 묻혀서 보여주는 어린이. 피투성이 귀신을 표현하고 싶었던 걸까요? 그리고 물감 뚜껑을 열면서 해맑게 웃고 있는 어린이의 옷은 자신이 흘린 물감으로 디자인이 되어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맘껏 물감으로 놀아도 혼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진(오른쪽)을 사용하도록 흔쾌히 허락해준 석훈이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어린이들의 작품을 구경하고 있는데 한 어린이가 내게 다가오더니 시뻘건 손을 보여줍니다. 아이는 해맑게 웃고 있었습니다. 그 사진을 보았을 때 저는 마음 한쪽을 무겁게 누르고 있던 돌덩어리가 하나 뽑힌 느낌이었습니다. 이렇게 자신 있게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물감을 즐길 수 있는 어린이를 본 게 얼마만인지 모릅니다. 많은 어린이들이 그렇지 못합니다. 옷에 묻을까봐 손에 묻을까봐 조심조심 물감을 다루고 아껴 써야 된다며 개미 눈물만큼 물감을 짜내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는 건 슬픈 일입니다.

물감 뚜껑을 열면서 해맑게 웃고 있는 7세 어린이(석훈이)의 모습이 참 예뻐서 사진에 담았습니다. 기사에 사진을 올려도 될지 부모님께 허락을 받았을 정도로 탐나는 사진이었습니다. 옷에는 물감이 다 묻었습니다. 모든 어린이들은 물감 놀이를 하면서 당연히 옷에 묻고 손에 묻고 바닥에 떨어집니다. 그것은 자연의 이치만큼이나 자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는 부모님들이 적지 않습니다. 《공자춘추》라는 중국 드라마에서 공자의 제자 자공이 스승의 어린 시절을 제자들에게 설명하는 대사가 떠오릅니다. 색깔이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찾아와 실컷 놀다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소개합니다.

“‘스승님(공자)은 어렸을 때 같이 놀던 친구와 싸우지도 않고 장난도 치지 않고 어머니 말씀도 잘 듣고 종일 나가 놀아도 옷에 먼지 하나 안 묻었다.’ 이렇게 말하면 믿는 사람이 있을까? 동풍이 불면 서풍도 불 듯 스승님은 풍파를 겪으면서 천천히 성장하셨네.”
- 드라마 <공자춘추>  3편 중에서

#오승주는?

1978년 제주 성산포에서 나고 자랐다. 제주대에서 국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2003년부터 10여 년간 서울 강남에서 입시컨설팅, 논구술 특강 등의 일을 하다가 대한민국 입시구조와 사교육 시스템에 환멸감을 느꼈다.

이후 언론운동과 시민정치운동, 출판문화운동, 도서관 운동 등에 참여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변화의 힘은 가정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족의 끈이 이어지게 하는 일에 인생을 걸었다. 소홀했던 가정이 무너지기 직전, 아이의 간절한 외침 소리를 들었기 때문.

2013년 《책 놀이 책》을 써 아이와 부모를 놀이로 이어 주었고, 3년간의 공부방 운영 경험과 두 아들과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썼다. 아빠 육아, 인문고전으로 아이 깊이 읽기로 가족 소통을 꾀했다.

현재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공자의 논어》,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사마천의 사기》를 집필 중이며 아주머니와 청소년을 작가로 만드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글쓰기·책쓰기 강사로서 지역 도서관과 활발히 사업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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