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청년들, 너븐숭이4.3기념관 방문 "무고한 희생 분노"

21일 사단법인 아름다운배움 '꿈사다리 프로젝트' 일환으로 제주시 북촌리 너븐숭이4.3기념관을 찾은 캄보디아 청년들.  ⓒ제주의소리
21일 사단법인 아름다운배움 '꿈사다리 프로젝트' 일환으로 제주시 북촌리 너븐숭이4.3기념관을 찾은 캄보디아 청년들. ⓒ제주의소리

전체주의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인해 무차별적 양민 학살이 일어난 20세기 최악의 사건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이국의 청년들은 제주4.3이라는 뼈저린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제주의 청소년들과 어우러져 서로의 아픔을 보듬었다.

교육 시민단체 '사단법인 아름다운배움'은 21일 오후 제주시 북촌리 소재 너븐숭이4.3기념관을 찾았다. 청년 멘토링 프로그램 '꿈사다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마련된 이날 행사에는 캄보디아에서 온 8명의 청년들과 제주지역 8명의 청소년들이 함께했다.

아름다운배움은 캄보디아 현지 청년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시골 마을을 방문하며 문화를 전파하는 프로젝트를 전개하고 있다. 지역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멘토링과 학습 지원을 통해 캄보디아 청년들의 자립은 물론 지역 인재 육성을 돕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이날 만남을 가진 캄보디아 청년들과 제주의 청소년들은 1대1 멘토링을 통해 두 지역에서 벌어진 대규모 학살 사건의 기억들을 공유했다.

21일 사단법인 아름다운배움 '꿈사다리 프로젝트' 일환으로 제주시 북촌리 너븐숭이4.3기념관을 찾은 캄보디아 청년들. ⓒ제주의소리
21일 사단법인 아름다운배움 '꿈사다리 프로젝트' 일환으로 제주시 북촌리 너븐숭이4.3기념관을 찾은 캄보디아 청년들. ⓒ제주의소리

'죽음의 들판'을 의미하는 '킬링필드'는 1975년을 전후로 캄보디아를 집권한 크메르루주 정권의 양민 대량 학살한 사건을 뜻한다.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이 베트남군의 보급로를 끊겠다는 이유로 캄보디아 토지에 대량의 폭탄을 투하한 사건 역시 킬링필드에 포함되고 있다.

캄보디아의 근대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195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옛 왕가의 후손으로 초대 수상이 된 노로돔 시아누크(Samdech Norodom Sihanouk)는 대외적으로 중립주의 외교정책을 내세우며 베트남군을 지원하지도 않고, 미국의 원조 역시 배제했다.

그러나 북베트남군이 캄보디아 동부지역을 군사기지 내지는 군수물자 루트로 이용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론 놀(Lon Nol) 장군의 쿠데타에 의해 1970년 정권이 교체됐다. 이후 캄보디아에는 극심한 이념 대립이 벌어진다. 정권의 좌익 탄압과 이에 맞서는 폴 포트(Pol Pot)의 크메르루주 무장 투쟁으로 인해 사상자가 속출했다.

1975년 베트남전에서 패배한 미군이 철수하면서 론 놀 정권 역시 무너졌다. 캄보디아는 수도인 프놈펜을 점령한 사회주의자 폴 포트의 통치 아래 '농경 이상향'을 목표로 한 공산주의 이념의 실험장으로 변질됐다. 

폴 포트는 도시를 자본주의의 부산물로, 농촌은 사회주의의 이상향으로 보고 프놈펜 시민들을 도시 밖으로 추방했다. 이 과정에서 캄보디아 지식인들에 대한 대규모 숙청 작업이 벌어진다. 론 놀 정권에서 일 한 이들은 물론, 의사·교수·성직자 등도 처형됐다. 단순히 안경을 쓰고 있다는 이유로도 처형 대상에 올랐다. 이주와 강제노역 과정에서 아사자도 속출했다.

크메르루주 집권 기간 동안의 피해가 정확히 집계되지는 않지만, 적게는 100만명, 많게는 200만명에 달하는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00만명은 당시 캄보디아 전체 인구의 4분의 1에 달하는 수준이다. 최근에는 미군의 폭격과 크메르루주의 탄압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캄보디아인이 170여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21일 사단법인 아름다운배움 '꿈사다리 프로젝트' 일환으로 제주시 북촌리 너븐숭이4.3기념관을 찾은 캄보디아 청년들. ⓒ제주의소리
21일 사단법인 아름다운배움 '꿈사다리 프로젝트' 일환으로 제주시 북촌리 너븐숭이4.3기념관을 찾은 캄보디아 청년들. ⓒ제주의소리
21일 사단법인 아름다운배움 '꿈사다리 프로젝트' 일환으로 제주시 북촌리 너븐숭이4.3기념관을 찾은 캄보디아 청년들. ⓒ제주의소리
21일 사단법인 아름다운배움 '꿈사다리 프로젝트' 일환으로 제주시 북촌리 너븐숭이4.3기념관을 찾은 캄보디아 청년들. ⓒ제주의소리

이날 너븐숭이4.3역사관을 찾은 캄보디아의 청년들은 자신들의 아픈 역사와 무섭도록 유사한 제주4.3의 비극에 깊이 공감했다.

이들은 4.3해설사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며 무거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마을에 살던 일가족이 한 날 한 시에 학살당한 사건, 남아있는 유가족들의 애달픈 삶, 사망자의 이름 조차 남아있지 않았다는 사실에 고개를 푹 숙였다. 위령탑 앞에서 짧은 묵념의 시간도 가졌다.

캄보디아 청년들은 제주4.3 역시 양민에 대한 무차별적 학살이 벌어졌다는 점, 이념 대립으로 인해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점, 비교적 짧은 기간에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는 점 등에서 킬링필드와 매우 유사한 사건으로 봤다.

다만, 아직도 4.3에 대한 규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직접적인 원인이 된 당사자가 제대로 된 죗값을 치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함께 분노했다.

탄 소니멧(Tan Sonimeth)씨는 "정치적인 상황으로 인해 가족과 이웃을 잃은 사건이 반복된 데 대해 화가 난다"며 "그나마 캄보디아에서는 학살의 책임자에 대한 단죄가 이뤄졌지만, 4.3과 관련해서는 책임을 묻는 과정이 었었다고 들었다. 매우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평화를 기원하는 올바른 리더십이 바로 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캄보디아에 돌아가서도 4.3에 대해 잊지 않겠다. 킬링필드 사건 등이 기록된 박물관·역사관 등에 4.3을 비롯한 전세계 학살사건이 소개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