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지의 이웃 미등록 노동자] ④ 농업·1차산업 ‘인력 태부족’ 현실
건설업 ‘불법 하도급’ 등 기형구조 외면한 채 외국인노동자에 책임전가 

통계에도 잡히지 않은 미등록 이주노동자. 어느새 제주에도 1만여 명을 훌쩍 넘어섰다. 마땅한 대책도 없이 쉬쉬하는 사이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찾아온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은 산업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어느덧 지역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수준에 이른 것이 현실이지만, 음지에 가려 여러 사회적 문제를 낳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는 음지에 갇힌 이웃 ‘미등록 노동자들’에 대한 정책 현실과 법 규제 사이의 괴리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조명해본다. <편집자주>

제주 건설경기가 지난해 하반기 이후 급속히 침체되면서 건설현장 외국인 불법체류 노동자들이 많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도내 건설현장에서 불법체류자들을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사실과 관련 없음. ⓒ제주의소리
제주 건설경기가 지난해 하반기 이후 급속히 침체되면서 건설현장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도내 건설현장에서 미등록 노동자들을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사실과 관련 없음. ⓒ제주의소리

2019년 6월 기준 제주도내 미등록 이주노동자 수는 1만3517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수준이다. 올해 초 ‘미등록 이주노동자 자진 출국 기간’이 성공적(?)으로 운영되면서 본국으로 돌아간 이들이 3600여명에 이르렀기에 가능했다. 이마저 없었으면 1만6000여명을 넘어섰을 것이다. 

불과 5년 전인 2014년 제주지역 미등록 노동자 수는 2000여명 수준이었다. 5년만에 1만명 이상의 미등록 노동자가 늘어난 셈이다. 제주의 노동현장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외국인들의 상당수가 미등록 체류자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주도내 미등록 노동자 문제가 손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비관적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현실을 인정하고 지역실정에 맞는 정책 대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는 이유이기도 하다.

육지부와는 달리 제주지역 외국인 노동자의 90% 이상은 미등록 외국인이다. 출입국·외국인청 관계자에 따르면 육지부의 경우 F-1, F-4 비자 등 합법적 취업 비자를 취득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다수다. 때문에 노동현장 단속에서 미등록 노동자로 적발된 강제퇴거 대상은 외국인노동자의 극히 일부다. 

반면, 제주도는 단속이 이뤄지면 현장 노동자 대부분 강제 퇴거 대상이다. 제주도로 무비자 입국 후 체류 기간을 지나 눌러 앉는 경우가 상당수에 이르는 것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무사증 입국' 제도가 낳은 대표적인 부작용이다. 

이는 제주지역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더욱 음지로 숨어들게 하는 기제가 되고 있다. 이들을 일거에 퇴출시키는 방안은 현재로서는 없다. 제주는 타 지역보다 근본적 문제 해결을 위해 더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하는 것도 현실이다.

특히 동일한 '미등록 이주노동자' 범주에 포함되지만, 각 산업 현장의 사정은 복잡하고 저마다 상황이 다르다. 미등록 노동자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정책과 대안을 찾으려면 이런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산업현장 별 분포 수준을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미등록 노동자의 절반인 50% 가량은 건설 현장, 나머지 중 30~40% 가량은 농업과 양식업 등 1차 산업 현장, 10% 내외는 요식업·유흥업 등에 종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최근 5년여 제주에 불어 닥쳤던 '부동산 광풍'은 건설경기의 가파른 상승세를 불렀고, 노동 수요 역시 급증했다. 현장의 인력난을 메운 것은 외국인 노동자였다. 당시는 건설현장이 넘쳐나 내국인 노동자들로만은 인력이 턱없이 모자랐던 터라 ‘일자리 분쟁’도 거의 없었다.

지난 2014년까지만 하더라도 2000여명에 그쳤던 미등록 외국인이 불과 5년만에 1만3000여명을 넘어서게 된 것도 이 건설경기 과열에 의한 여파였다. 그러나 부동산 열풍과 건설경기가 급속히 가라앉으면서 건설현장의 미등록 노동자 수요가 최근 들어 진정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건설현장 일자리가 확연히 줄면서 내국인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 간 '일자리 다툼'이 본격적인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이전까지는 일정한 기술을 요하고 임금 조건이 조금이라도 나은 일은 내국인 노동자가, 상대적으로 일은 고되고 임금이 낮은 일은 외국인 노동자가 맡는 등 나름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교통정리’가 되어왔다. 그러나 지금은 그 균형이 무너졌다.

건설 현장 소장 김민철(가명) 씨는 “한창 건설경기가 좋을 때는 현장 인력이 부족해 웃돈을 얹어주면서까지 일꾼을 데려오기도 했다. 그때는 문제될 게 없었는데, 일자리가 확 줄어드니까 여기저기서 큰소리가 난다”며 “이미 외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것에 익숙해진 건설 현장에서 임금과 근로시간 등 내국인에 비해 유리한 조건의 외국인 노동자들을 선호하는 경향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21일 태풍 다나스가 제주를 휩쓸고 지난간 제주의 어느 농장에 급한 일손이 필요하자 농장주 최모(가명)씨는 소위 '반장'을 통해 농장에 외국인노동자 인력을 급히 구했다. 대부분 불법체류자들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구슬땀 흘려 일한 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 ⓒ제주의소리 
21일 태풍 다나스가 제주를 휩쓸고 지난간 제주의 어느 농장에 급한 일손이 필요하자 농장주 최모(가명)씨는 소위 '반장'을 통해 농장에 외국인노동자 인력을 급히 구했다. 대부분 미등록 노동자들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구슬땀 흘려 일한 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 ⓒ제주의소리 
제주도내 건설경기가 지난해 하반기 이후 침체되면서 외국인노동자들이 많이 빠져나갔지만, 여전히 도내 건설현장에서는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사진은 기사 특정사실과 관련 없음. ⓒ제주의소리
제주도내 건설경기가 지난해 하반기 이후 침체되면서 외국인노동자들이 많이 빠져나갔지만, 여전히 도내 건설현장에서는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사진은 기사 특정사실과 관련 없음. ⓒ제주의소리

지난해 도내 관급공사 현장에서 미등록 외국인노동자들을 고용하다 논란이 되기도 했다. 도내 건설경기가 예전 같지 않자, "고령의 내국인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불법체류 중인 젊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우선 고용한다"는 건설노조의 공식 항의가 제기돼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이후 관급공사나 대규모 공사현장에서 관리감독이 강화돼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의 모습이 많이 줄었다. 그러나 아직도 상당수 민간 공사현장에서 미등록 노동자들을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요식업이나 호텔 등 서비스업종에서도 고민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내국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고, 열악한 노동환경에도 순종적이라는 점에서 사업주가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 고용을 선호하고 있다. 수요가 점차 느는 추세다. 

외형만 보면 내국인 일자리를 미등록 외국인노동자들이 잠식하는 모양새다. 반면 농업 현장의 경우 온도차가 확연하다. 내국인 일자리를 잠식하는 형태라기보다는 수요보다 공급 인력이 부족하거나 내국인 인력을 구하지 못해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 빈자리를 매워주는 구조다.

2017년 호남지방통계청이 발표한 '제주특별자치도 최근 3개년 고용현황'에 따르면 2016년 10월 기준 농림어업의 노동력 부족률은 11.4%로, 생산 단순직(11.6%)과 함께 제주에서 가장 노동력이 부족한 직군으로 집계됐다. 농림어업은 노동력 부족률이 지속적으로 증가한 직종으로도 첫 손에 꼽혔다.

통계 밖의 현실은 더욱 심각하다. 통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일정 규모를 갖춘 농업경영체와는 달리 고령의 농가들은 인력 부족 문제에서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제주도 농가의 고령화는 점차 심화되는 추세다. 

5년 주기로 진행되는 통계청의 농림어업총조사에 따르면 2010년 제주지역의 60세 이상 농가인구는 총 3만1195명이었다. 전체 농가인구 11만4539명의 27.2%가 고령인구다. 열명 중 3명 가까이가 고령인 셈이다. 

불과 5년이 지난 2015년이 되면 고령화는 더 고착화된다. 농촌 이탈현상이 뚜렷해지면서 농가 인구수는 9만3404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60세 이상 농가인구는 3만1171명으로 5년 전과 별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고령인구 비율은 33.3%로 크게 증가해 노동력이 줄었다. 

농민 박철환(가명, 대정읍) 씨는 “주변 농가들을 보면 ‘농사 망치고 망하느니 미등록 노동자라도 쓰고 보자’는 식이다. 내국인 인력을 구하는데 온갖 방법을 다 써봤다. 웃돈을 얹어서라도 인력을 데려오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며 “농사짓고 먹고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농민들이 언제까지 계속 불법이라는 올가미를 써야 하는지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서귀포시내 모 지역 농협 관계자는 “이미 농촌에는 일할 젊은이들 찾기란 하늘에 별따기나 다름없다. 농촌을 떠난 자식들은 돌아올 수 없는 구조이고, 실제로 젊은이들이 농촌으로 돌아오는 일은 거의 없다”며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들을 데려오는 것은 고육지책이다. 농민들은 한결같이 ‘외국인노동자 없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제시해달라’는 입장”이라고 역설했다.

이 관계자는 “제도적으로 얼마든지 보완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미 ‘계절노동자’ 등 한시적으로 비자를 내주는 제도가 현장의 호응을 얻기도 했다. 업종의 특성을 잘 분석해 이 같은 방법을 적극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이주 노동자 인권단체 관계자는 “최근 일자리를 두고 내국인과 외국인 노동자간 ‘대결 구도’로 논란이 확산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농촌과 건설현장 등 우리의 노동시장 현실은 미등록 노동자들 없이 농사를 짓기가 힘들고, 이들 없이 건물을 올리기 힘든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현실인식을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또, “다단계로 불법 하도급이 이어지는 건설현장의 왜곡된 구조는 외면하면서 오히려 낮은 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견뎌내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일자리 난의 책임을 돌리려 하는 분위기는 분명한 잘못”이라며 “그들은 '불법체류'라는 압박 때문에 각종 차별을 받으면서도 스스로 차별을 숨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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