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청진기] (7) 청년정책심의위원 논란을 지켜보며

'제주 청진기'는 제주에 사는 청년 논객들의 글이다. 제주 청년들의 솔한 이야를 담았다. 청년이 함께 하면 세상이 바뀐다.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에서, 각종 사회문제에 대한 비판적 시선, 청년들의 삶, 기존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서브컬쳐(Subculture)에 이르기까지 '막힘 없는' 주제를 다룬다. 전제는 '청년 의제'를 '청년의 소리'로 내는 것이다. 청진기를 대듯 청년들의 이야기를 격주마다 속 시원히 들어 볼 것이다. [편집자]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하나 해보고자 한다. 

지난주, 제주도가 과거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선거사범을 제2기 청년정책심의위원으로 위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문제의 위원 이모씨는 2017년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제주 청년 1219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 1219명 중 실제 동의를 받은 명단은 40명에 불과했고, 대부분이 동의 없이 허위로 채워졌음이 밝혀졌다. 결국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 500만원이 선고되면서 이씨는 법적 책임을 지게 되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올해 이씨는 청년을 대표해 청년정책을 심의하는 청년정책심의위원에 지원했고 제주도는 그를 심의위원으로 위촉했다. 위원 자격에 관한 논란이 일자 제주도는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법률자문 결과 결격사유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려 위촉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도내 청년단체를 중심으로 공개 사과와 해촉 요구가 잇따르자 제주도는 제주청년기본조례 10조 8항을 근거로 이씨에게 자진사퇴를 요구했고, 이에 응하지 않자 결국 18일 이씨를 해촉했다.

이씨가 해촉되면서 논란은 일단락된 듯하다. 제주 청년들의 사과 요구에도 불구하고 제주도정은 언제나처럼 사과와 반성 없이 입을 다물었다. 이씨는 자진사퇴를 거부하고 아무런 사과 없이 심의위원회를 빠져나갔다. 기시감(既視感)과 학습된 무력감이 엄습한다. 

‘그래, 해촉되었으면 끝난 일 아닌가. 심의위원에 지원하고, 위촉한 것이 ‘불법’은 아니지 않는가. 잘못한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말란 말인가. 그렇게까지 젊은 청년의 앞길을 막아서야 되겠는가.’ 

사회는 여전히 우리에게 말할 것이다. 그보다 심한 일도 훨씬 많으며, 적응하고 버텨내야 하는 것이 어른의 삶이라고. 

그렇다면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해보자. 도대체 도덕의 문제는 어디로 갔는가? 위촉과 해촉이 아닌 사과와 반성 그리고 부끄러움은 어디에 있는가. 조작된 명단에 올랐던 청년들, 심의위원에 위촉된 청년들, 청년의 삶을 이야기해왔던 활동가와 정당인들 그리고 제주 청년들의 둘 곳 없는 분노만이 남았다. 

그야말로 도덕이 사라진 사회라 할 만하다. 이제 청년들은 어떤 물음을 던져야 할까. 지방공무원법과 조례를 통한 법적 판단이 행정과 기성의 언어라면, 우리의 언어는 법적 판단 위에 존재하는 도덕적 가치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청년의 언어는 ‘현실’을 걷어내고 잘못과 처벌을 넘어서 반성과 부끄러움을 이야기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는 곧 누구에게 권력과 대표성을 부여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우리는 ‘현실’을 이야기하는 자들에게 이 진부한 물음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주의 청년들이 끊임없이 제주도정에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이번 일이 단순한 심의위원 위촉 해프닝이 아닌 부끄러움을 잊은 사회에 경종을 울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우리는 스스로 세상물정 모르는 요즘 것들이 되어 피곤한 이야기들을 지속해나갈 필요가 있다.

현우식(29)

바라는 것은 깃털같이 가벼운 삶

탈제주를 꿈꾸며 서울로 향했으나
돌연 제주로 돌아와 사회학을 공부중

가까운 것엔 삐딱하나 먼 것에는 관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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