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시선] 크루즈항로 고시 ‘감감’...'민군복합형 관광미항' 어디로?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문제는 해군기지가 준공된지 3년을 훌쩍 넘겼지만 크루즈 항로 조차 고시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무늬만 민군복합항’이라는 자조가 나오는 이유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시드니, 하와이와 같은 민군복합형 명품 항만과 어깨를 겨루며…”

지금은 영어의 몸이 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발언은 호기로웠다. 2016년 2월26일 제주해군기지(제주민군복합형 관광미항) 준공식 때 그는 이렇게 축전을 띄웠다.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도 같은 말을 반복했다. “정부는 이곳을 미국 하와이나 호주 시드니 같은 세계적인 민군복합항으로 발전시키고자 한다” 

원희룡 지사도 거들었다. 강정마을이 세계인이 사랑하는 최고의 복합관광미항으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한껏 기대를 드러냈다. 

세계적인 관광미항, 국가안보, 지역경제 발전, 해양주권 수호…. 

해군기지냐 관광미항이냐, 오랜기간 항만의 정체성을 두고 빚어진 혼란을 방증하듯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 말의 향연이 펼쳐졌다.

개인적으로는 견강부회(牽强附會), 억지춘향이다 싶었지만, 좋게말해 그리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 쯤으로 치부하고 넘어갔다. 

꺼림칙했던 3년5개월 전의 그 느낌이 요즘 다시 들기 시작했다. 군함은 왕래가 잦은데 크루즈선은 거의 안보이기 때문이다. 

크루즈터미널이 준공된 2018년 5월28일 이후 이곳에 기항한 크루즈선은 2척에 불과했다. 9개월 넘게 개점휴업이 이어지다 올 3월2일에야 영국 국적 크루즈선이 처음 입항했다. 그리고 5월15일 역시 영국 국적 크루즈선이 입항한 후 두 달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다. 강정 크루즈항은 올해 총 82척의 크루즈선 입항이 예정돼 있지만, 대부분 취소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대 규모인 15만톤급 크루즈선 2대가 동시 접안할 수 있을 것이라는 11년전(2008년 9월11일 국가정책조정회의) 청사진이 무색해졌다. 

여기까지는 사드 여파로 볼 수 있다. 입항 취소가 예상되는 크루즈선 대부분이 중국발이다. 

반면 해군기지엔 미국의 핵 잠수함과 핵 항모까지 드나들었다. 

문제는 해군기지가 준공된지 3년을 훌쩍 넘겼지만 크루즈 항로 조차 고시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무늬만 민군복합항’이라는 자조가 나오는 이유다. 

저간의 사정은 있다. 크루즈 항로 고시 주체는 제주도. 고시에 앞서 제주도는 항로 주변 바닷속 암반을 제거하기 위해 올해 4월 문화재청에 현상변경허가를 신청했으나 퇴짜를 맞았다. 문화재청은 천연기념물 제442호인 연산호 군락 훼손을 우려했다.

제주도가 고시하려던 항로는 변침각(變針角) 30도를 적용했다. 변침은 여객선이나 항공기 등이 항로를 변경하는 것을 말한다. 이 30도 항로법선은 도립해양공원은 물론 범섬 인근의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그중에서도 핵심지역(core zone)), 천연기념물 제421호인 범섬·문섬천연보호구역을 관통하게 된다.   

당초 해군은 이들 보전지역을 침범하지 않기위해 진입각을 77도로 잡았다. 급선회해 입출항하는 방식이다. 이게 문제가 됐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군함과 달리 대개 10만톤이 넘는 크루즈선은 안전 우려가 제기됐다. 그래서 2012년 2월29일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30도로 변경한게 이번에는 문화재청이라는 복병을 만난 것이다. 2008년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민군복합항 추진이 확정된 후 3년여가 흐르는 동안 민항(크루즈선)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던 셈이다. 

가물에 콩 나듯 그동안 강정항에 입항한 크루즈선 2척은 현지 바닷속 사정을 잘 아는 전문가(?)를 태운 채 연산호와 암초를 피해 다녔다고 한다.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해군기지 반대 쪽에서는 애초 77도든 30도든 지리적, 환경적 측면에서 부적합한데도 기지 건설이 강행됐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부가 민항의 기능을 홀대한 정황은 이 뿐만이 아니다. 정부 말대로 15만톤급 크루즈선 2척의 동시 입항이 가능한지를 놓고 한때 논란이 뜨거웠다. 선박 시뮬레이션이 실시되고 검증, 재검증 문제가 불거졌다. 그러나 정부는 켕기는 게 있는지 공정하고 객관성있는 시뮬레이션을 하자는 제주도의 공식 요청도, 중립적 기관에 의한 시뮬레이션을 촉구한 도의회의 요구도 단칼에 거절했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기자회견과 일주일 뒤 국가정책조정회의를 통해 설계 오류 논란을 일축해버리고 말았다. 

군사시설 보호구역 설정을 둘러싼 해군의 태도 또한 민항을 푸대접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해군은 남방파제 끝 지점과 내부 수역 전체를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입장. 이 경우 모든 해역이 해군의 통제 아래 놓인다. 이에반해 제주도는 크루즈선이 오가는 해역은 제외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제주도는 진정한 민군복합항, 크루즈선 운항의 예측 가능성 확보 등을 주장의 근거로 내세우고 있으나 해군이 너무 완고해 4년 가까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 지점에서 민군복합형관광미항 공동사용협정서 위반 시비가 일고있다. 협정서는  2013년 국방부와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 제주도 3자가 체결했다. 군사시설 보호구역을 무리하게 확대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협정서 제8조를 해군이 어기려 한다는 것이다.  

제주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 '명품 미항'은 고사하고 민항에서도 자꾸만 멀어지는 것 같다. 그때도 못미덥긴 했다. 11년 전의 청사진과 3년여 전의 호기로운 약속은 정녕 일장춘몽이었던가. <논설주간/상임이사>

* 소리시선(視線) /  ‘소리시선’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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