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웅의 지금 제주는] (13)부실한 환경영향평가제도 전형 사례

비자림로 확장공사 논란이 시작되고 이제 1년이 되어간다. 2.9km의 길지 않은 구간이지만 시민들의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여느 대규모 개발사업 논쟁보다도 많은 도민과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사업시행자인 제주도는 전국적인 비판여론에 당황했고, 공사중단 선언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제주도는 올 3월 공사를 재개했고 비자림로는 또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금은 이 곳에서 법정보호종이 다수 발견되어 환경부와 문화재청이 공사중지를 요구하면서 공사가 중단된 상황이다.

그렇다면 아직도 진행 중인 비자림로 논란이 도민사회에 던지는 의미와 시사점은 무엇일까? 첫째, 비자림로는 제주개발의 욕망을 상징적이고 함축적으로 보여준 공간이다. 단 몇 초 빨리 가기 위해 수천그루의 나무를 베어내는 것은 이윤창출에만 급급한 제주개발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도로 확장의 필요성과 타당성은 없거나 매우 낮지만 사업을 강행하고, 주변 환경의 훼손문제에 무감각한 것 역시 고스란히 닮았다. 확장 계획을 구상하고 실행하기까지의 절차와 과정도 투명성을 잃은 의혹투성이다. 당장 눈앞의 이익만을 위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고 있는 개발정책의 자화상이다. 

둘째, 비자림로 확장사업은 환경영향평가제도의 문제를 여실히 드러낸 사례이다. 최근 비자림로 공사구간 및 영향범위 내에서 다수의 멸종위기 야생생물과 천연기념물이 발견되었다. 팔색조, 두견이, 황조롱이, 긴꼬리딱새, 애기뿔소똥구리, 맹꽁이 등의 서식이 확인된 것이다. 제주도가 실시한 소규모환경영향평가서에는 법정보호종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는데 부실조사로 확인된 셈이다. 평가서에 첨부된 식생조사표 역시 식생조사의 거짓·부실로 의심할 수 있는 정황이 확인되기도 했다. 

사업자가 환경영향평가 대행업체를 선정하는 구조에서 환경영향평가를 맡은 대행업체는 제대로 된 환경성 조사보다는 어떻게 하면 사업자가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무난히 통과할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추게 마련이다. 그러다보니 실제 자연환경 현황보다 낮게 평가하기 일쑤다. 심지어 법정보호종을 발견하고도 누락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구조에서 제주도내 개발사업에 대한 환경영향평가의 협의권을 가진 제주도는 부실한 환경영향평가서가 제출되더라도 정치적 판단 하에 무사통과시키며 개발의 면죄부를 주는 본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셋째, 비자림로 논란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현재 공사가 중단될 수 있게 된 것은 비자림로를 지키려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들어 낸 운동의 성과이다. 시민들은 스스로 모니터링단을 구성해 환경조사를 진행하고, 제주도의 공사 강행을 감시했다.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시민들의 서명을 받아 공사를 최소화 할 것을 제주도에 요구하기도 했다. 법정보호종의 발견 이후에는 비자림로 생태 정밀조사 과정에서 시민모임이 추천한 인사를 조사반에 참여시켜 조사의 공정성을 관철시키기 위한 활동도 이어갔다.

제주도 곳곳이 개발의 생채기에 수난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난개발을 막으려는 시민들의 자발적 행동은 부당한 개발 권력에 저항하는 행동하는 양심이다. 이번 비자림로 시민모임이 보여준 활동은 도내의 여타 난개발 사업을 막기 위해 주민운동을 벌이는 현장에도 힘이 되는 긍정적인 사례이다. 활동의 결과를 떠나 우리 공동의 문제에 대해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목소리를 내고 행정의 개발정책에 문제를 제기한 것은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기에 충분하다.

현재 제주도에는 제주제2공항 건설계획을 포함하여 많은 개발사업이 추진되고 있고 이중에는 제2·제3의 비자림로 개발사업들도 여럿 있다. 도정은 여전히 개발중심의 정책기조를 고집하며 난개발 논란의 사업들도 승인절차를 척척 진행하고 있다. 제주특별법으로 제주도지사에게 주어진 환경영향평가 협의권한은 이들 개발사업의 정상추진에 매우 유효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따라서 개발중심의 도정 정책을 변화시키고, 인·허가 과정에서 최소한의 공정성과 정당성을 지키기 위한 감시와 견제를 위해서도 우리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는 절실히 필요하다. 비자림로의 수많은 뭇 생명들이 비명도 없이 사라져간 일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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