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사를 위한 놀이 수업] 4. 어린이는 재판을 잘 한다

옛날 중국 한(漢)나라 때 장탕(張湯)이라는 어린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고을의 공무원이었는데 외출을 하면서 아들에게 집을 보게 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와 보니 쥐가 고기를 훔쳐간 게 아니겠습니까? 크게 화가 난 아버지는 아들을 매질했습니다. 어린이 장탕은 쥐구멍을 파내 고기를 훔친 쥐와 쥐가 먹다 남은 고깃덩어리를 찾아냈습니다. 장탕은 쥐를 구속시키고 영장과 진술서를 갖춰 재판을 진행했습니다. 판결문을 읽으며 형벌을 주는 것까지 정식 재판과 다름없이 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하는 모습과 판결문을 읽고 감탄했습니다. 그리하여 아들에게 정식으로 판결문 작성법을 배우게 하였죠. 장탕은 관리가 되어 오랫동안 명성을 누렸습니다.

위 이야기는 역사의 성인, 사성(史聖)이라 불리는 사마천의 <사기열전>(혹리열전)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린이 장탕은 쥐 때문에 억울하게 아버지에게 매를 맞았고 ‘법대로’ 복수를 합니다. ‘복수’는 중국인의 독특한 문화이며 우리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공자도 <논어>에서 복수를 말하죠.

어떤 사람이 말했다. “은덕을 베풀어 원한에 보답하면 어떨까요?” 공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은덕은 무엇으로 보답한단 말인가? 곧은 마음으로 원망에 보답하고, 은덕으로 은덕에 보답해야 한다.”

- <논어> 헌문 편

어린이 장탕은 쥐에 대한 원한을 법률을 통해서 복수했으니 멋진 복수극이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장탕 어린이의 이야기는 저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꽤 오랜 시간 동안 ‘어린이 재판’ 놀이를 만들게 했죠. 장탕이 유독 특이한 게 아니라 모든 어린이는 장탕처럼 재판관의 특성을 타고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거든요. 원한과 복수심, 욕구 불만을 느끼지 않는 어린이는 없으니까요. 어린이의 마음속에서 들끓는 감정의 용광로를 ‘재판’이라는 논리적인 절차를 통해서 하나의 놀이로 승화시키는 일은 중요합니다. 어린이 재판 놀이는 다음과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만들었습니다.

1. 어린이가 자신보다 강한 힘 또는 억압(어른, 사회)에서 생긴 욕구불만을 해소한다. 
2. 논리적인 근거와 정당한 절차를 통해서 충분히 부정적 감정을 해소할 수 있음을 배운다.
3. 어린이라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옳고 그름, 선과 악에 대한 관념을 표현한다.
4. 자기보다 힘센 존재에 대해서 맘껏 복수함으로써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판타지를 즐긴다.

어른이 제멋대로 만들어낸 규칙 때문에 피해를 보는 어린이의 분노와 욕구 불만을 자극하기 위해서 《사라, 버스를 타다》(사계절)를 첫 번째 튜토리얼로 정했고, 어떤 형벌을 줄 것인지 모범을 보여주기 위해서 《백만 년 동안 절대 말 안 해》(웅진주니어)를 두 번째 튜토리얼로 정했습니다.

그림1. 어린이 재판 놀이의 그림책 튜토리얼. 부당한 규칙 또는 법률에 대한 어린이의 의분(義奮)을 일으키고 어린이다운 판결을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그림1. 어린이 재판 놀이의 그림책 튜토리얼. 부당한 규칙 또는 법률에 대한 어린이의 의분(義奮)을 일으키고 어린이다운 판결을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남자 어린이 판사님과 여자 어린이 판사님의 차이점

놀이를 시작할 때는 재판부의 모습에 가깝게 구성하는 게 좋습니다. 궐석재판에는 피고인을 제외한 재판장, 서기가 필요합니다. 놀이 진행자가 노트북을 앞에 놓고 서기 역할을 함으로써 어린이 판사의 발언에 힘을 실어줄 수 있습니다. 판결문을 읽고 의사봉을 두드리는 게 놀이의 하이라이트이기에 튼튼한 의사봉을 만듭니다. 잡지를 둘둘 말아 손잡이를 만들고 종이를 뭉쳐 의사봉 머리를 만듭니다. 투명테이프로 고정하면 멋진 의사봉이 됩니다. 재판의 의례에 따라서 판사가 입장할 때 모두 착석을 시키는 게 좋은데, 분위기를 보면서 착석은 생략할 수 있습니다.

진행자의 사회에 따라서 “지금부터 OOO 판사님의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라고 엄숙하게 선언하면 어린이 판사의 표정이 근엄해지며 재판 분위기가 만들어집니다. 판사가 판결을 내리면 노트북으로 받아 적고 판결문 낭독이 끝난 후에는 요약해주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서기가 받아 적는 모습만으로도 재판부의 권위가 표현됩니다. 초등학생 판사님들은 어떤 죄인을 꼽았고 판결을 내렸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그 사람(오빠)은 죄가 좀 많아요. 가만히 있을 때 내 방에 침범했고(여자의 방), 또 제가 엄마 아빠 말 듣는다고 자기 말은 안 듣는다고 짜증내고, 내 심부름도 하라고 억지를 부렸습니다. 그래서 어제 저는 펩시콜라를 사와야만 했습니다.

송수진(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 가명) 학생은 《백만 년 동안 절대 말 안 해》의 주인공과 똑같은 상황이었습니다. 그 책의 주인공도 여자 어린이거든요. 특히 이 책은 초등학교 4~5학년 여학생들의 폭풍 공감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다음은 판결 주문입니다.

오빠를 반으로 갈라서 투 플러스 원 상품으로 편의점에 진열하는 건 잔인하고, 가족이라는 점을 정상 참작해 한 달 480시간 동안 편의점 알바를 하고 알바비는 동생 송수진에게 기부를 해야 합니다. 최저시급 1만원 기준 하루 8시간 8만원이니까 한 달에 60만원을 제가 어른이 될 때까지 지급합니다. 60만원 × 12 × 8 = 5760만원입니다. 그 돈으로 대학 등록금과 용돈과 방값을 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저를 자주 울렸기 때문에 가중 처벌로 소고기를 일주일에 한 번 사줘야 합니다. 가족이 식당에서 소고기를 한 번 사먹는데 10만원이 든다는 걸 기준으로 하면, 10만원 × 4 × 12 × 8 = 3840만. 합해서 약 1억원 확보. 소고기를 사준 다음에는 츄파춥스까지 사줘야 하지만 츄파춥스는 제 돈으로 사먹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정이 있으므로 3000만원을 깎아주겠습니다.

참으로 너그러운 판사님입니다. 여자 어린이 판사님에 비해서 남자 어린이 판사님들은 꽤 엄정한 판결을 내려서 서기를 하는 내내 벌벌 떨었습니다.

피고 OOO는 제사 갈 때마다 만날 저를 때렸습니다. 그것도 모든 부위를. 거기(?)만 빼고. 나의 모든 욕은 OO 형이 가르쳐 준 것입니다. 형법 제28조 5항의 의거 하루에 100만원씩 제게 20년 동안 지급해야 합니다. 100만원 × 365 × 20 = 73억. 돈을 어떻게 모을 것인지는 알아서 고민하세요. (고민기(가명), 초등학교 4학년 남학생)

OO 형은 나한테 돈을 준다고 해놓고서 뻥쳤습니다. 돈을 빼돌렸습니다. OO 형이 피파 온라인4를 설치한다고 제게 아빠 핸드폰을 훔쳐오게 한 다음 내 비밀 번호까지 요구했습니다. 엄마가 준 용돈을 다 준다는 미끼로. 하지만 그건 사기였습니다. 그래서 OO는 매일매일 내가 죽을 때까지 10억을 내놓아야 합니다. 그래도 그건 너무 많으니까 제가 30살이 될 때까지 1억을 채워야 합니다. (양용준, 초등학교 4학년 남학생)

OOO은 OO 형한테 너무 개긴다. 다른 애들한테 잘난척한다. 어린 애들한테는 막 때린다. 계속 시비를 건다. 입을 떼면 욕이다. 우리 학교 95%는 그 형을 싫어한다. 95%는 싫어한고 5%는 그 사람을 모름. 방과 후 샘한테 매일 야단맞음. 너무나도 말을 안 들음. 너무나도 많이 혼남. 퇴학당할 각. 하지만 운 좋게 퇴학은 안 당함. 애들한테 패드립을 함. 남의 엄마한테도 패드립을 했음. 죄를 싫어해야지 사람을 싫어하면 안 되니까, 벌금 50억, 징역은 50년. 콩밥 대신에 쌀밥 한 톨.(이정원, 초등학교 4학년 남학생)

▲그림 2. 남자 어린이 판사님들은 여자 판사님들보다 양형을 엄하게 내리는 편입니다. 표정에서도 위엄과 분노가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왼쪽 이정원 어린이 판사, 오른쪽 양용준 어린이 판사) ※ 학부모의 동의를 얻어 어린이 얼굴 사진을 사용했습니다.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그림 2. 남자 어린이 판사님들은 여자 판사님들보다 양형을 엄하게 내리는 편입니다. 표정에서도 위엄과 분노가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왼쪽 이정원 어린이 판사, 오른쪽 양용준 어린이 판사) ※ 학부모의 동의를 얻어 어린이 얼굴 사진을 사용했습니다.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처음에 어린이 재판 놀이를 만들 때는 ‘나를 괴롭혔던 모든 존재’를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내 피를 빨아먹는 모기, 또는 나를 화나게 했던 동생처럼 자기보다 약한 존재도 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린이의 욕구불만과 억압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크고 힘 센 존재를 대상으로 삼아야 했습니다. 자기보다 힘 센 대상을 죄인으로 삼아야 판타지 효과를 키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놀이를 다듬으면서 새롭게 도입한 형식은 ‘궐석재판(闕席裁判)’입니다. 궐석재판은 피고가 없는 상태에서 진행하는 재판입니다. 어린이 재판 놀이를 하다가 종종 놀이에 참석하는 어린이가 판사와 피고인을 하는 경우는 감정 문제가 생길 수 있었습니다. 궐석재판을 하면 감정 문제를 피할 수 있습니다. 불필요한 감정 소모는 줄이되 어린이의 부정적인 감정을 놀이에 녹아들게 만들고 건강하게 승화시키려 한 ‘어린이 재판 놀이’는 어린이에게 일단 합격점을 받았습니다. 다시 까다롭고 예민한 어린이에게 ‘정말 재밌었다’고 칭찬받았으니까요. 다만 욕구 불만과 어른에 대한 분노가 보이지 않는 어린이들에게는 흥미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이들의 욕구 불만과 분노가 거대한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지금 상황에서는 쓰일 곳이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승주는?

1978년 제주 성산포에서 나고 자랐다. 제주대에서 국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2003년부터 10여 년간 서울 강남에서 입시컨설팅, 논구술 특강 등의 일을 하다가 대한민국 입시구조와 사교육 시스템에 환멸감을 느꼈다.

이후 언론운동과 시민정치운동, 출판문화운동, 도서관 운동 등에 참여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변화의 힘은 가정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족의 끈이 이어지게 하는 일에 인생을 걸었다. 소홀했던 가정이 무너지기 직전, 아이의 간절한 외침 소리를 들었기 때문.

2013년 《책 놀이 책》을 써 아이와 부모를 놀이로 이어 주었고, 3년간의 공부방 운영 경험과 두 아들과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썼다. 아빠 육아, 인문고전으로 아이 깊이 읽기로 가족 소통을 꾀했다.

현재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공자의 논어》,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사마천의 사기》를 집필 중이며 아주머니와 청소년을 작가로 만드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글쓰기·책쓰기 강사로서 지역 도서관과 활발히 사업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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