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를 걸어보고 싶은 제주 뮤지컬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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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창작 뮤지컬 ‘손색시’

가능성(可能性).

앞으로 실현될 수 있는 성질이나 정도를 의미하는 단어. 보통 희망적인 바람을 담아 사용한다. 27일 하루에 단 두 번 공연했을 뿐이지만 창작 뮤지컬 <손색시>를 보고 난 뒤 가장 먼저 머릿속에 드는 생각이 바로 ‘가능성’이었다.

<손색시>는 시작 전부터 여러모로 관심을 가지게 했다.

김녕사굴, 배나무 배조주 딸, 서복 등 제주 설화들을 융합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다. 배우와 연출을 비롯한 제작진은 서울 대학로에서 경험을 쌓은 인원들이 다수 포진했다. 현재 대학로에서 절찬리 공연 중인 인기 연극 <자메이카 헬스클럽>의 연출자 김재한,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에서 이길례 역을 수년 간 맡아온 강하나 등이 대표적이다. 작곡은 제주도립 서귀포관악단 수석 단원 김경택이 맡았다. 제주 출신인 김경택은 작곡과 공동 음악감독뿐만 아니라 줄거리의 밑그림도 그렸고 제주문화예술재단 사업에 신청해 예산을 마련하는 제작자 역할까지 도맡았다. 제작비는 4500만원 수준. 이것도 제주문화예술재단 전문예술창작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받은 3800만원 등등을 포함해서 어렵게 마련했다. 비단 제주시 창작 뮤지컬 <만덕>에 투입된 제작비 7억원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이 정도 예산은 뮤지컬을 만드는데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 와중에 김경택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남녀 주연 오디션이 각각 150대 1을 기록했다”고 당시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자신감을 피력한 바 있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보니 과연 어떤 작품이 무대 위에 등장할지 무척 궁금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홍보물 가장 위쪽에 새겨 넣은 ‘2019년 최고의 기대작’이란 문구가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손색시> 줄거리의 뿌리는 김녕사굴, 배나무 배조주 딸 설화다. 김녕사굴 원작은 제주에 부임한 판관 서련이 구좌읍 김녕리의 큰 굴에 사는 거대한 뱀을 물리치는 이야기다. 배나무 배조주 딸은 새엄마에게 핍박받은 배조주의 딸이 결국 행복하게 가족을 꾸리고 새엄마에게도 복수하는 내용이다.

<손색시>는 배조주 딸 ‘다온’(배우 김지송)의 새엄마(박진주)가 알고 보니 제주의 젊은 남성들을 잡아먹어 이무기로 변신하려는 거대한 뱀이라는 설정을 덧입혔다. 여기에 판관 서련(윤동기)은 실종 사건을 해결하라는 임금의 명을 받고 사또 신분을 숨긴 채 제주에 온 20세 금수저 양반 도령이라는 인물로 재창작했다. 다온은 생쥐 ‘서생원’(鼠生員, 배우 강하나)과 함께 몸이 편찮은 아버지를 위해 ‘생명초’를 찾는데 이 부분은 서복 설화를 참고했다.

원작 김녕사굴에서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심방 당부를 잊은 서련이 큰 뱀의 저주에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손색시>는 새엄마였던 뱀을 별 탈 없이 물리치고 서련과 다온도 서로 사랑으로 맺어지는 ‘해피엔딩’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힘은 ‘음악’이다. 15곡 가량의 수록곡을 음악감독 김경택이 모두 작곡했는데, 유명 뮤지컬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세련된 구성을 자랑한다. 클래식 현악기, 피아노, 어쿠스틱 기타, 국악 등 음을 만들어내는 악기 또한 골고루 신경 썼다. 남녀 간의 사랑, 친구와의 우정,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책임감과 결기, 야망 등등 극에서 요구하는 분위기에 맞게 음악은 웅장하면서 때로는 감미롭게 극장을 채운다. 곡 길이를 2~3분 남짓으로 맞추면서 관객들이 비교적 처지지 않았고, 일반 대사와 노래가 단절되는 부담 역시 크게 도드라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젊은 세대의 감각엔 당연히 잘 부합하고 나이 많은 관객에게도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세련된 음악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후술하겠지만 (부득이하게) 너무나도 단출한 무대를 마주하다가 노래가 나오면서 깜짝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음악만큼은 지난 몇 년 간 제주 창작 뮤지컬에서 만나지 못한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 음악에서 <손색시> 정도의 인상을 남긴 제주 뮤지컬은 지난 6월 초연한 창작 뮤지컬 <최정숙-동 텃저, 혼저 글라>를 꼽겠는데, <최정숙-동 텃저, 혼저 글라>는 성가(聖歌) 느낌이라면 <손색시>는 최신 대학로 감각을 연상케 한다.

그래서 일까. 대학로 연기 경험을 고루 갖춘 20~30대 젊은 배우들은 별 문제없이 멋지게 노래와 연기를 소화한다. 상황에 따라 고음과 저음을 뽑아내는 여주인공 다온 역의 김지송, 중저음으로 관객에게 다가선 남주인공 서련 역의 윤동기 뿐만 아니라 강하나, 노현, 박진주에 1인 다역을 소화한 앙상블 방은지, 윤성돈도 하모니를 매끄럽게 구현했다.

27일 오후 7시 30분 공연을 마친 뮤지컬 '손색시' 출연진들이 무대 인사를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27일 오후 7시 30분 공연을 마친 뮤지컬 '손색시' 출연진들이 무대 인사를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웃음 코드도 관객 입장에서는 반갑다. 역할에 따른 분위기, 대사뿐만 아니라 배우 개인기로 쏠쏠하게 웃음을 가져왔는데 서련 역의 윤동기, 서련의 심복 ‘칠성’ 역을 맡은 노현 콤비가 사실상 거의 모든 웃음을 책임졌다. 서련과 칠성은 시대 배경도 얼추 비슷한 영화 <조선명탐정>에서 김명민, 오달수 콤비를 떠올리게 했다. 한껏 어색한 제주사투리로 만든 웃음은 영리했다.

<손색시>는 5000만원도 안 되는 금액으로 만든 뮤지컬이다. 때문에 소품이나 무대 장치는 많은 부분 양보할 수밖에 없겠다고 일찌감치 짐작했다. 예상대로 무대 배경은 99% 영상에 의존하고, 무대 위 장치는 ‘상자 같은 커다란 구조물’을 변형시켜가며 어렵사리 응용한다. 그림자 인형극은 설화 분위기에 잘 어울렸지만 고육지책의 고민이 녹아있지 않나 싶다. 작품 규모를 고려하면 설문대 여성문화센터 공연장은 충분하지 않았다. LED 조명을 꽂아 넣은 생명꽃, 다소 민망한 상황에서 진행한 서생원의 변신을 포함한 여러 순간마다 ‘여건이 낫다면 이렇게 저렇게 해서 더 풍부하게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해본 관객은 기자 뿐만이 아닐 것이다. 내년 제주아트센터를 포함해 후속 일정을 추진 중인 상황에서, 이러한 아쉬움은 충분히 극복하리라 기대해 본다.

여주인공과 동행하는 서생원의 존재는 추정컨대 배조주 딸 원작에서 등장하는 하얀 쥐와 배조주 딸의 팔을 낫게 하는 꿈 속 친어머니를 참고하지 않았나 싶다. 하얀 쥐는 배조주 딸에게 구슬을 줬지만, 새엄마에게는 개똥을 준다. 뮤지컬에서는 서생원에게 중요한 역할을 부여했지만, 쥐라는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보여줄 방법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손색시>가 추구하는 방향이 무엇이고, 겨냥하는 관객층이 누구냐에 따라 결정될 사안이기도 하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동물 캐릭터로 인해 극 분위기가 상당히 달라짐을 체감했다. 실체를 드러낸 ‘구렁이’ 존재를 비롯한 작품 안의 판타지 요소를 어떻게 하면 설득력 있게 구현할지도 제작진에게 주어진 숙제라는 사족을 덧붙인다.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가능성’이란 단어를 다시 꺼내본다. <손색시>는 올해 10월 27일 파리한인예술인협회 초청 공연을 앞뒀고, 내년에는 제주아트센터와 손잡고 공연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다음 공연이 정말 궁금하다고 생각하게 만든 작품은 오랜만이다. 가능성이 ‘어엿한 실력’으로 만개해 다시 만나는 순간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ps. <손색시>는 파리 현지 공연을 위한 후원을 모집하고 있다. 후원자에게는 다음 유료공연 초대권과 뮤지컬 갈라쇼 초청 기회를 제공한다. 문의할 전화번호는 010-2561-2846이며, 후원 계좌는 302-1071-2936-01(농협)이다. <손색시> CD판매비용, 음원 유통 수익금, 후원금의 절반은 한부모 가정과 아동복지 후원금으로 전달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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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삼 2019-07-28 21:03:32
제주가 고향도 아니고 몇번 여행간게 전부지만 제주 설화를 바탕으로한 국내 창작뮤지컬이기에 더욱더 관심이 갔었습니다 특히나 음악이 훌륭할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답니다 총감독인 김경택 감독과 음악감독 윤현종 편곡과미디디자인에 참여한 이승택. 강정우 젊고 뛰어난 음악인들의 열정이 있기에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작품일것이라 믿어요~응원합니다
124.***.***.177

유재은 2019-07-28 13:07:52
공연 한시간 전 ㆍ재난문자가 왔다 ㆍ
제주에 폭우가 쏟아질거라는 ㆍ공연 시작 이십분전ㆍ정말 쏟아진다 ㆍ아니 퍼붓는다 ㆍ용감한 관객들은 자리를 채워가고 십분 늦께 공연은 시작되었다 ㆍ
돌지난 손녀 덕분에 로비에서 영상으로 봐야하는 아쉬움ㆍ 한기자님의 기사 덕분에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ㆍ배우분들 ㆍ관계자분들 고생하셨어요 ㆍ아트센터 공연을 기대해봅니다 ㆍ 다함께 관심 가져 봐요 ㆍ*뮤지컬 손색시 *
61.***.***.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