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시선] 제2공항 공개토론 수용, ‘민심 확인’으로 나아가길 

지난 25일 원희룡 제주지사와 만난 강원보 제2공항 성산읍반대대책위 집행위원장(가운데), 박찬식 제2공항 반대 범도민행동 공동대표(맨 왼쪽). 이날 면담에서 공개방송 형식의 제2공항 토론회를 진행키로 결정했다. ⓒ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지난 25일 원희룡 제주지사와 만난 강원보 제2공항 성산읍반대대책위 집행위원장(가운데), 박찬식 제2공항 반대 범도민행동 공동대표(맨 왼쪽). 이날 면담에서 공개방송 형식의 제2공항 토론회를 진행키로 합의했다. ⓒ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자주 실망하면서도 원희룡 지사에 대해 일말의 기대를 거두지 않는 이유는, 실낱 같지만 그가 쉽게 민의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여기에는 자치단체 수장으로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 때 중앙정부 보다는 도민 편에 설 것이라는 희망이 서려있다.

4월10일 제주도의회 임시회 본회의장. 제2공항 찬성 측 의원이 지금 상황이 답답하다는 듯 쉴새없이 몰아세우자 원 지사는 정부를 겨냥, 작심 발언을 했다. “문재인 정부도 (제2공항을)안할 거면 안할 거라고 얘기해달라”

후보 시절 ‘조기 개항’ 입장을 밝힌 문재인 정부를 향해 미적대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냈으니 일종의 결기가 느껴졌다. 반어(反語)가 아니다. 과거 도정에서도 이러한 사례가 있었나 싶었다. 

김태환 도정은 해군기지 추진 과정에서 해군과 한몸처럼 움직였다(2019년 5월29일 ‘[전문]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 결정문’). 우근민 도정은 15만톤 크루즈선의 입출항 가능성을 검증하겠다며 공사(공유수면 매립) 중지 카드를 꺼내든 것 까지는 좋았으나 결국 유야무야 되고 말았다. ‘윈윈 전략’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그런 상상도 해봤다. 원 지사가 정부에 대고 제2공항은 제주의 미래가 달린 일이니 먼저 도민의 의사를 충분히 물어보겠다고 선언하는 장면 말이다.

숱한 의혹에도 오히려 “제주의 경제지도를 바꿀 것”이라며 제2공항 필요성을 강조(2월20일 담화문)한 마당이니 말그대로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그런데 말입니다’. 현실에서는 정부 결정이 뒤집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고정불변의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얘기다. 

2016년 6월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이 난 동남권 신공항 입지 문제를 국무총리실에서 재검증하기로 한 최근의 사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부·울·경 시도지사들의 압박에 정부가 사실상 입장을 바꾼 것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이해가 깔려있다는 분석이 나왔지만, 해당 지자체들의 입장에서만 보자면 자기결정권을 적극 행사한 셈이 된다. 오해 없길 바란다. 결정 번복의 옳고 그름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제주 제2공항 역시 지역 민심을 다시한번 살펴봐야 할 이유는 많다.

우선 입지 선정을 둘러싼 갖가지 의혹 중 속시원히 풀린게 거의 없다. 이에따라 사전 타당성 용역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이대로두면 도민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깊어질게 뻔하다. 그런 점에서 ‘강정’은 뼈아프지만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10여년 갈등’을 잉태한 2007년 4월26일의 마을 총회가 얼마나 졸속적이고 비민주적이었는지는 이미 드러나지 않았던가. ‘자율적인 결정’을 강조한 대학 교수 100인의 충고를 허투루 들어선 안된다.

여론의 변화 추이도 고려해야 한다. [제주의소리]가 지난 6월 여론조사를 실시했더니 찬반이 팽팽(2019년 6월27일 ‘제2공항, 찬성 48.6%-반대 47.1% ’팽팽’’)했다. 특히 공론조사에 대해선 찬성(76.7%)이 반대(17.2%)를 압도했다.  

‘도민여론 수렴’은 일찌기 당정이 합의한 사항이기도 하다. 2월26일 당정협의회에서 민주당과 국토교통부가 합의한 5개 항 중에는 ‘국토부는 향후 제주 제2공항 추진에 있어 제주도가 합리적, 객관적 절차에 의해 도민 등의 의견을 수렴해 제출할 경우 이를 정책 결정에 충실히 반영, 존중키로 했다’는 내용이 있다.

여론 수렴 방안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7월29일 도의회 정책토론회에서 나온 공론조사든 주민투표든 심층 여론조사든 형식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굳이 추진 주체를 따질 일도 아니다. 어쩌면 제주도민의 자기결정권 확보 측면에서는 제주도가 하는게 바람직하다. 무엇이든 그 결과를 존중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 

“공론조사도 법에 따라 하려면 국토부가 해야 한다”며 완강한 입장을 보이던 원 지사가 최근 공개토론회를 전격 수용했다. 물론 공론조사에 대해선 “마음에 없다”며 선을 그었지만, 태도 변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서두에 ‘일말의 기대’를 운운한 것도 이같은 배경이 있었다. 

조기 개항을 약속한 문 대통령도 사실은 ‘절차적 투명성 확보’라는 전제를 뒀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로 시작하는 그 유명한 취임사에도 ‘과정의 공정성’은 두 번째로 언급됐다. 현재 제주 제2공항은 바로 그 절차의 투명성, 공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해군기지는 비록 졸속적이었지만 마을총회라도 있었다.  

민의를 좇아 마음을 여는 것은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다. 외려 용기있는 일이다.

정확한 민심을 헤아리는게 중요하지 결과는 부차적인 문제다. 우리 일은 우리가 결정하겠다는,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낼 때는 내는 도백의 호기를 바란다면 무리일까. <논설주간/상임이사>

* 소리시선(視線) /  ‘소리시선’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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