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드슈즈] 포스터.

가히 디즈니를 필적할만한, 우리 손으로 만든 한국 애니메이션이 상영 중이다.

'레드슈즈'(감독 홍성호, 애니메이션 감독 김상진)는 빨간 구두를 신으면 180도 변하는 레드슈즈와 억울한 저주에 걸려 초록색 난장이가 된 일곱 왕자를 주인공으로, 위기에 빠진 동화의 섬을 구하기 위한 신나는 모험을 담은 애니메이션 영화다.

'원더풀 데이즈'의 홍성호 감독과 디즈니 출신의 김상진 애니메이션 감독을 중심으로 드림웍스 제작진, 더빙에는 클로이 모레츠(스노우 화이트 역), 샘 클라플린(멀린 역)과 같은 대형 해외 배우들까지 의기투합해 글로벌 시장을 겨냥했다.

시나리오 개발 기간만 5년, 프로덕션 기간 3년 반까지. 긴 시간 공을 들인 '토종' 애니메이션의 탄생이라 불리는 레드슈즈는, 한국 3D 애니메이션의 한 획을 그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다채로운 작화와 CG의 정교함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레드슈즈의 크레딧에는 라인프로듀서(제작 전략 수립, 예산, 일정, 인력 등 프로덕션 관련 제작 현장의 실무를 담당) 역할을 맡은 제주 출신의 고윤아PD(36) 이름이 올랐다. 31일 직접 레드슈즈의 제작 비하인드와 의미에 대해 들어봤다. 고 PD는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 출신으로 제주여고, 세종대(호텔경영, 만화애니메이션 전공)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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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슈즈] 제작에 참여한 스텝들의 모습. (왼쪽부터 최돈현 룩뎁·라이팅 수퍼바이저, 이경득 캐릭터리깅·시뮬레이션 수퍼바이저, 고윤아 라인프로듀서, 장무현 공동감독·CG 수퍼바이저, 구본민 이펙트 수퍼바이저, 이진용 모델링 수퍼바이저) 사진=고윤아PD. ⓒ제주의소리

시나리오 개발 기간이 종료되고, 프로덕션이 막 시작되는 시점에 라인프로듀서로 제작에 합류한 그는 “국내 애니메이션은 성공 사례가 없어 많은 제작사들이 외주 수주를 받아, 다년간 수익금을 모아가며 자체 IP(지식재산권) 제작을 병행하는 식으로 사업이 운영되기에 대부분의 영상 제작 환경이 녹록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전했다.

많은 우수 제작 인력이 비교적 조건이 좋은 북미 등 해외 스튜디오로 유출되는 이유기도 하다.

여유롭지 않은 여건에서 대규모 프로덕션을 진행하며 그의 마음에 가장 깊게 각인 되었던 것은 높은 질의 장편 애니메이션 영상을, 우리 손으로 구현하기 위해 밤낮 없이 연구하고 작업하는 레드슈즈 국내 아티스트들의 저력이었다.

영화의 가성비를 높이기 위해서 레드슈즈의 공동감독이자 CG슈퍼바이저 장무현 감독은 프로덕션 단계부터 전략적으로 어셋(asset)을 분할해 프로덕션에 임했다.

예를 들면 스노우 화이트의 본래 모습과 국왕인 아버지 캐릭터 모델은 동일한 어셋을 활용했다. 같은 모델 위에 머리모양과 의상만 변화시켜 제작비 절감의 목적을 이룬 것이다.

레즈슈즈의 매력을 꼽아달라는 질문에는 “완성도 높은 영상 퀄리티를 제작한 대부분의 스텝이 한국인이라는 점에서 자랑스러운 토종 애니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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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베어를 디자인하고 있는 최민정 컨셉 아티스트. 사진=고윤아PD. ⓒ제주의소리

이어 "아직 수익성이 검증 되지 않은 국내 장편 애니메이션 사업에 끊임없이 도전장을 내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기에, 주어진 제작 기회를 감사히 여기며 약 200명의 제작진이 할 수 있는 힘을 다 보탰다"고 말했다. 

이번 기회로 국내 제작진들이 높은 질의 영상미를 장편 분량으로 구현해내는 역량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검증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또 앞으로 국산 애니메이션이 잘 성장해 "투자 논리에 의한 기획과 스토리텔링보단 우리가 잘 아는 생활상 위에서 펼쳐지는 판타지를 더 실감나고 호소력 있게 담아 세계인에 소구해보면 어떨까"하는 소망을 전했다.

제주를 무대로 한 애니메이션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더 이상 토종 애니메이션이니 봐달라는 식의 권유는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며 "시대의 요구와 관객의 눈높이뿐 아니라, 마음에도 다가갈 수 있는, 더 나은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고민하고 정진하는 분들이 어딘가 아직 많으니 응원해주시길 바란"다고 관객들에게 전하고픈 한마디를 남겼다.

레드슈즈는 7월 25일 개봉해 박스오피스 톱5에 진입하며 순조로운 항해를 이어가고 있다.

디즈니에 버금가는 새로운 한국 애니메이션, 또 새롭게 재탄생한 21세기의 백설공주를 보고 싶다면 레드슈즈를 만나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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