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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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적 인간] 28. 비스트(The Beast), 이정오, 2019 

'영화적 인간'은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라고 말한 질 들뢰즈의 말처럼 결국 영화가 될(이미 영화가 된)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에 대한 글이다. 가급적 스포일러 없는 영화평을 쓰려고 하며, 영화를 통해 생각할 수 있는 삶의 이야기들이다. [편집자 주]

영화 ‘비스트’ 포스터. 출처=네이버 영화.
영화 ‘비스트’ 포스터. 출처=네이버 영화.

#27. 제주시청 부근 투룸
창문 밖으로 네온사인이 번쩍인다. 모텔, 편의점, 단란주점, 노래방 등. 큰 도로 근처라 자동차 소리가 들린다. 가랑비가 내려 비에 젖은 자동차 소리가 네온사인에 반사 되어 물빛으로 빛난다.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이 없다. 외부인의 발자국도 발견되지 않았다. 옆방에선 남동생이 잠을 자고 있었다. 남동생은 법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다. 그날밤도 공부를 하다 잠들었는지 남동생의 책상 위에는 ‘형사소송법’이 펼쳐져 있다. 꼼꼼한 성격인지 중요한 문장에는 형광펜으로 자를 대 선을 그었다. 

#30. 제주동부경찰서
피해자는 단란주점에서 일했다. 남매는 함께 자취를 했다. 남매는 누나의 직업 문제로 자주 다투었다. 피해자는 가끔 손님과 함께 집으로 들어왔다. 그런 다음날이면 남매는 말다툼을 했다. 경찰은 남동생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피해자는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됐다. 사인은 경부압박질식사. 부모는 망연자실했다. 딸은 죽고, 아들은 살인자가 되었다. 남동생은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45. 광주지방법원
피의자 남동생은 계속 혐의를 부인했다. 첫 재판에서 남동생은 징역 15년을 선고 받았다. 남동생은 항소했다. 광주에서 재판이 다시 열렸다. 부모가 탄원서를 제출했다. ‘우리 아들은 그럴 아들이 아니라고. 어렸을 때부터 남매는 사이가 각별했으며 서로 애틋하게 생각했다.’ 남동생은 탄원서에도 있는 일부 내용으로 피해자 누나와의 추억담을 말했다. 그것이 최후 진술이었다. 판결은 살인, 징역 15년. 남동생은 더는 항소하지 않았다. 

#52. 제주도 바닷가
남매의 어린 시절. 남매 둘이서 보말을 잡고 있다. 아버지는 텐트를 치고, 어머니는 물을 끓인다. 남매가 보말을 잡아오면 삶아서 먹을 것이다. 음악은 핑크 플로이드의 <Julia Dream>이 흐른다. 누나가 좋아했던 음악이다. 누나와 남동생의 웃음소리. 부모가 그 둘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하늘엔 약간의 먹구름. 갑자기 비가 쏟아져 남매가 텐트 쪽으로 뛰어온다. 누나가 넘어져 무릎에서 피가 난다. 놀란 남동생이 누나를 업으려 하자 누나가 업히려 하지 않는다. 페이드 아웃.  

현택훈
시인. 시집 《지구 레코드》, 《남방큰돌고래》,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산문집 《기억에서 들리는 소리는 녹슬지 않는다》 발간. 영화 잡지 <키노>를 애독했으며, 영화 <스쿨 오브 락>의 잭 블랙처럼 뚱뚱하고, 영화 <해피 투게더>의 장국영처럼 이기적인 사랑을 주로 한다.
trace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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