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사를 위한 놀이 수업] 5. 착한 용과 못된 용의 레이스 놀이

못된 용을 살려주세요

“너 지금 왜 그래?”
“조용히 하지 못해!”
“어디 그렇게 해봐!” 

아이를 야단치고 나면 부모는 가슴이 쓰라리지만 혼난 본인은 마음이 어떨까요? 저는 그게 무척 궁금했습니다.  야단을 맞고 난 직후의 아이의 뇌를 관찰하면 대뇌 변연계라는 부분이 활성화되어 있다고 합니다. 대뇌 변연계는 희로애락이나 쾌감, 불쾌감 같은 정서를 담당합니다. 이 부분은 인류가 원시인이었던 몇 백만 년 전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다듬어져 왔으니 어린이가 짜증을 내거나 말썽을 부리거나 회피하는 건 마음이 건강하다는 의미입니다. 감정 코치인 조벽 교수에 따르면 이런 상황에서는 “노르에피네프린, 코티솔 등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고 혈압이 올라가면서 심장은 1분에 95회 이상 빨리 뛴다”(조벽·최성애, 《청소년 감정코칭》)고 합니다. 

대뇌 변연계라는 어려운 낱말을 ‘못된 용’이라는 상징으로 단번에 표현한 그림책을 만났습니다. 

못된 용이 정말 못된 것은 아니에요. 
레아 같은 아이에게서 플로리안을 지켜 줘야 할 때만 못되게 굴지요. 
레아는 화가 나면 꼬집고 할퀴고 침을 뱉고 깨물어요. 
예전에는 레아가 놀이터에 오면 플로리안은 집으로 도망갔어요. 
하지만 착한 용과 못된 용이 생긴 뒤로는 피하지 않았어요. 
레아가 싸움을 걸어오면 못된 용이 번개처럼 나타나 불을 뿜었거든요. 
불꽃이 얼마나 뜨겁고 거센지. 
레아는 플로리안에게 한 발짝도 다가갈 수 없었어요. 
-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글, 옌스 라스무스 그림, 《착한 용과 못된 용》

사실 어린이의 대뇌 변연계를 소재로 한 놀이는 아주 오래 전부터 만들고 싶었어요. 어린이의 스트레스 반응이 점점 강해지고 있으니까요. 좋은 그림책을 만난 덕분에 놀이가 번쩍 하고 솟아났습니다. ‘착한 용’은 이성 능력을 담당하는 ‘전두엽’을 상징합니다. 사람에게 매우 중요한 두뇌의 두 영역을 재밌는 놀이로 만들 수 있다면 어린이들의 감정은 더 건강해지지 않을까요?

이 놀이는 어린이의 건강한 마음을 지켜줄 목적도 있지만 어른들로 하여금 어린이의 건강한 마음을 지켜주게 하려는 목적도 있습니다. 어른들은 어린이가 변연계 반응을 일으키면 덮어놓고 진압하려고 하고 버릇없다고 핀잔을 주기 일쑤입니다. 그 결과 어린이들의 못된 용은 작아지고 또 작아져서 붉은 반점으로 뒤덮이고 있습니다.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그림 1. 여자 어린이들은 못된 용을 그리는 대신 착한 용 두 마리를 그리기 일쑤입니다. 서호초등학교 2학년 오시현 어린이. ※ 학부모의 동의를 얻어서 사진을 게재함.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그림 2. 전두엽(착한 용)과 대뇌 변연계(못된 용)를 잘 형상화한 감정 그림책 《착한 용과 못된 용》.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인기 투표 압도적 1위를 얻은 못된 용! 

‘착한 용과 못된 용의 레이스’ 놀이의 핵심은 아이들에게 착한 용과 못된 용에 대해서 이해를 시켜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착한 용과 못된 용이 있으니까 꺼내주기면 하면 됩니다. 

“친구들이 기분 나쁘게 하거나 제멋대로 하면 못된 용이 튀어나와서 본때를 보여줘야 해요.”
"그러다가 맞으면요?"

한 어린이는 “착한 용은 있는데 못된 용은 없어요”라고 대답하기도 했습니다. ‘못된 용’이라는 비유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보디가드’, ‘호위무사’, ‘수호천사’ 같은 용어로 환기를 시켜주면 좋습니다. 

‘착한 용과 못된 용의 레이스’는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용 그리기는 풍선에 색깔 네임펜으로 두 용을 그리게 합니다. 꼭 용 모양이 아니라 수호천사라든지 비슷한 것을 그려도 좋습니다. 사인펜은 쉽게 번져서 번지지 않는 네임펜 같은 도구를 사용하는 게 좋습니다. 용을 그린 어린이에게는 간단한 인터뷰를 시도해 어떤 상황에서 용들이 나타나고 어떤 특기를 가지고 있는지 이야기하게 하면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놀이는 ‘착한 용의 레이스’와 ‘못된 용의 레이스’로 나뉩니다. ‘착한 용의 레이스’는 일종의 공동체 놀이로 뒷사람이 풍선을 앞사람의 등에 붙이고 두 손을 허리에 얹은 채로 마치 ‘지네’처럼 나아가는 놀이입니다. 어린이들이 승부욕에 취해서 풍선을 떨어뜨린 채로 달리기도 하고, 몸체가 떨어지기도 하고, 손을 쓰기도 합니다. 심판은 세밀하게 관찰한 후 손을 쓰는 경우는 경고하고 풍선을 떨어뜨린 경우는 실격시켜야 합니다. 착한 용의 레이스는 여러 사람들이 동시에 진행하기 때문에 눈을 크게 뜨고 보지 않으면 판정 시비에 휘말릴 수 있습니다 

‘못된 용의 레이스’ 놀이는 가장 재밌다는 반응을 얻었습니다. 마치 배구공을 치듯 풍선을 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놀이이기 때문입니다. 못된 용의 공격성과 날렵함을 놀이에 담았습니다. 어린이들은 마치 샌드백 두드리는 통쾌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풍선을 치면서 동시에 앞으로 달려가야 하기 때문에 순발력과 집중력을 높여줍니다. 어떤 방식으로 풍선을 쳐야 속도를 높일 수 있는지 어린이들은 관찰하면서 스스로 연구합니다. 

어린이들이 부정적인 감정 상황에 날로 취약해져서 걱정하던 차에 정말 즐겁게 놀아줘서 고마웠습니다. 못된 용 콘테스트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못된 용을 들고 ‘혼나기 챔피언 놀이’를 하는 것도 추천합니다. 못된 용이야말로 부모에게 혼나기만 하는 캐릭터니까요. 1분이라는 시간 동안 혼난 일을 가장 많이 말하는 친구가 챔피언이 되는 놀이입니다. 이 놀이의 핵심 포인트인 못된 용을 불러와 더 재밌는 놀이를 만들어 보세요. 

▲그림 3. 확실히 못된 용은 남자 어린이들이 전문입니다.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그림 3. 확실히 못된 용은 남자 어린이들이 전문입니다.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오승주는?

1978년 제주 성산포에서 나고 자랐다. 제주대에서 국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2003년부터 10여 년간 서울 강남에서 입시컨설팅, 논구술 특강 등의 일을 하다가 대한민국 입시구조와 사교육 시스템에 환멸감을 느꼈다.

이후 언론운동과 시민정치운동, 출판문화운동, 도서관 운동 등에 참여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변화의 힘은 가정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족의 끈이 이어지게 하는 일에 인생을 걸었다. 소홀했던 가정이 무너지기 직전, 아이의 간절한 외침 소리를 들었기 때문.

2013년 《책 놀이 책》을 써 아이와 부모를 놀이로 이어 주었고, 3년간의 공부방 운영 경험과 두 아들과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썼다. 아빠 육아, 인문고전으로 아이 깊이 읽기로 가족 소통을 꾀했다.

현재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공자의 논어》,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사마천의 사기》를 집필 중이며 아주머니와 청소년을 작가로 만드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글쓰기·책쓰기 강사로서 지역 도서관과 활발히 사업을 펼치고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