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청진기] (8) 세상이 그대를 조급하게 만들지라도

'제주 청진기'는 제주에 사는 청년 논객들의 글이다. 제주 청년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았다. 청년이 함께 하면 세상이 바뀐다.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에서, 각종 사회문제에 대한 비판적 시선, 청년들의 삶, 기존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서브컬쳐(Subculture)에 이르기까지 '막힘 없는' 주제를 다룬다. 전제는 '청년 의제'를 '청년의 소리'로 내는 것이다. 청진기를 대듯 청년들의 이야기를 격주마다 속 시원히 들어 볼 것이다. [편집자] 

얼마 전 수능 영어문제를 우연히 다시 봤는데 매우 놀랐던 게 10년이 지나도 문제 구성이 그대로였다. 시험과목으로서의 영어와 언어로서의 영어는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그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영어 능력을 키우기 위한 방법이 이대로 괜찮은 건지 아니면 바꾸기 위해서 감수해야 되는 리스크 때문에 딱히 문제가 되지 않았던 문제들로 명맥을 이어왔는지에 대한 의문은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제주는 10년 뒤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지금 제주는 10년 전과 어떻게 달라졌을까? 혹시 바꾸려는 리스크를 감수하지 못한 채 딱히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들로 일관해 바뀌지 못했던 건 아닐까? 이대로라면 자라나는 세대가 제주를 자연스럽게 떠나는 시점도 떠나는 원인도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내가 원하는 일자리가 없어서, 배우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금방 떠올릴 수 있다. 

간혹 제주에서 내가 원하는 길이 있더라도 자신의 선택도 하나의 답이라고 증명해나가며 설득하는 시간을 보내곤 한다. 그런데 요즘 제주는 더욱 그런 삶을 기대하며 지켜봐 줄 여유가 없어 보인다. 내가 가는 길이 행복하다고 증명할 길이 없는, 지지 받지 못한 청년들은 이런 시선을 피해 자신의 욕구를 발견하고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막연하지만 제주를 떠나고 본다.

맞지 않는 사람이 떠나면 되는 문제가 아니다. 제주는 그대로 남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주민들에게 살기 좋은 곳이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살고, 어쩔 수 없이 떠나는 곳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자라나는 세대가 제주에서 자신의 삶을 펼칠 수 있기 위해서는 문제가 되지 않음직한 것들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는 선에서 ‘네 멋대로 살아라’하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지켜볼 수 있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도 쉽지 않은데, 정해진 무언가를 먼저 제안하며 더 원하게끔 하는 것이 청년들을 지치게 만든다. ‘살아보니 이런 것은 어렵다’며 실패를 두렵게 하는 세상에서, 자신의 욕구를 찾아 시도해보는 과정이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설득하는 일은 사회의 강한 입김에 밀려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이런 점을 문제로 인식한 제주는 청년들과 소통하며 지원해왔지만 청년들을 제주의 더 나은 비전을 제시할 주체로 기대하며 바라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여전히 청년들은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발언을 하기 어렵고, 기성세대와 동등한 무게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다. 청년들의 문제를 스스로 발굴하고 해결점을 찾겠다는 욕구는 점점 늘어나고 있고, 그 분야도 다양하다.

제주청년센터가 작년에 이어 시행하는 ‘제주청년정책 연구공모’ 서류심사 합격한 9팀의 연구주제를 보면 알 수 있다. ‘정신질환 실태조사, 외국어 교류 공동주거 서비스, 난민 청년과의 관계, 프리랜서, 삶의 불안, 청년몰 정책, 쓰레기 문제와 사회적경제, 해외취업 프로그램, 제주청년정책 분석’ 등 면접심사를 통해 6팀의 연구가 진행될 예정으로 청년이 직면한 문제 또는 청년들이 주체가 되어 지역의 문제의 해결안을 도출하는 데에 지역 청년들의 관심과 잠재력을 느낄 수 있다.

한편, 청년 일자리에 대한 정책으로 9월 말에 정식 출범을 앞둔 ‘제주 더 큰 내일센터’가 제주의 미래를 이끌 ‘혁신인재’를 육성하겠다고 참여자 100명을 모집하고 있다. 지난 1일에 개최된 1차 설명회에는 청년 120명이 참여했다. 앞으로 이어지는 네 차례의 설명회와 온라인으로 내용을 확인하고 있는 도내외 청년들을 감안하면 1차에 참여한 청년들의 숫자는 이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높은 상황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줬다.

설명회에 참여한 청년들은 자기 삶의 소명을 찾고 스스로 업을 만들어가는 인재를 육성한다는 내용을 듣고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라 믿는다. 제주의 미래와 청년의 가능성을 연관을 지을 때면 다소 무겁게도 혹은 자신이 기여할 수 있는 제주의 미래가 있다는 것에 설레는 마음으로 공고 내용을 더 꼼꼼하게 체크했을지도 모른다. 

<꾸뻬씨의 행복여행> 이라는 영화 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행복은 소명에 응답하는 것(Happiness is answering your calling).”
“우린 다 행복할 의무가 있다(We all have an obligation to be happy)”

자신의 소명을 찾아갈 때 때로는 주저앉고, 때로는 빠른 길을 놓고 돌아가며 답답해 보일 수도 있다. 왜 그렇게밖에 못하겠냐는 사회적으로 주어진 ‘효율적인 길’의 압박이 우리의 마음을 끊임없이 조급하게 만들어도, 자신만의 멋을 찾아 ‘네 멋대로’ 살 수 있길 바란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은 사회에서 스스로 실패할 권리를 주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앞으로 힘든 일을 겪었을 때 다시 재도약 하는 힘이 될 것이다. 그럴 수 있는 구성원들이 살아가는 제주의 미래가 지속가능하고 건강한 제주의 미래라고 믿는다.

꿈꾸던 어떤 것을 포기하고 내면의 목소리와 적당히 타협함으로써 생활이 편안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면서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나를 벌써 포기하기에는 아깝지 않은가? 

월 150만원의 지원금과 교육과정을 포함해 최대 2년까지의 지원과정이 청년들에게 있다는 얘기만으로도 벌써 참여자들을 향하는 부담스러운 시선이 느껴진다. 이런 우려가 비단 나만 갖고 있는 생각은 아닐 것이다.

청년들도 6개월에서 2년이라는 시간을 택하기까지 굉장한 많은 고민과 자신의 삶에 대한 결단이 필요할 것이다. 자신의 삶 그리고 가족과 지역사회에 애정을 갖고 무언가를 자신의 관심과 연결 지어 해보려는 그 열띤 마음을 꺼뜨리지 않고 잘 살려갈 수 있도록 응원과 지지를 해줬으면 한다.

얼마 전 버스정류장을 이용하시는 어르신 분들의 고충을 덜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한 청년이 있다. 어르신들이 자주 찾으시는 목적지를 중심으로 버스번호를 나열했는데, 그 반응이 꽤 좋았다. 청년이 지역의 문제를 인식하고 스스로의 의지를 내는 것이 바로 제주의 가능성 아닐까? 이런 청년들의 아이디어를 실생활에서 느낄 수 있게 그리고 더 나아가 지속 가능한 업으로 이어갈 수 있는 계기가 많이 생겨나길 바란다. 

제주에서 청년들이 자신의 삶을 상상하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즐겁게 하는 과정 안에서 제주를 이롭게 할 여러 프로젝트도 생겨날 것이다. 그러니 영혼 없는 일은 말고 ‘네 멋대로 살아라!’

“행복이란 온전히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다(Happiness comes when you feel truly alive)“

강나루는?

만 29세. 나의 삶과 일을 함께 추구하는 선택을 해왔다. 지역의 문제를 지역주민들이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그곳의 사람과 자연이 생기롭게 유지된다고 믿는다. 체코슬로바키어과와 유엔평화학과를 졸업했고, 제주에 돌아와서는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지원 업무를 했다.

직장을 떠난 뒤에는 기획과 연구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경험을 축적해나가는 것이 나의 중요한 ‘일’이다. 제주에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삶을 응원하는 데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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