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할 자리에 당해주는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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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광의 제주 산책] 8. 생야일편 부운기 사야일편 부운멸

법회 마치고 마음 편한 시간은 일요일 오후다. 느긋하다고 말하고 싶다. 아마 성직자들의 모두가 그럴 것이다. 내가 아는 지리산 암자에서 법회를 보는 스님이나 대형교회의 목사님이나 신부님이나 법회에 임하게 되면 가장 긴장된다. 보다 더 정성스럽게 마음속에 공감대가 형성되도록….

법당에 선풍기를 틀어놔도 그다지 시원하지 않다. 이번 주 설법은 ‘내가 당할 자리에 당해주는 게 큰 공부길이다’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슨 소리지! 당한다는 것은 바보이고, 권리침해이며 스스로 무능력함으로 인식되어 세상을 살아가는데 용기 없는 행동이다'라고 하며, '져주곤 못살아 그것도 한 두 번 자꾸 져주면 의례 그런 사람인 줄 알고 사람을 무시당하거든'하고 말한다.

이런 말은 일상에서 오해 없는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말이 정말 옳은 말도 아니다. 살아가면서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을 했지만, 결국 그것으로 인해서 내가 뜻하지 않는 마음의 상처를 받는 때도 있고, 또 해로운 일을 당했다고 섭섭하거나 괴로워했지만, 그것이 도리어 약이 되고 전화위복이 되는 일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 나의 어머니는 가끔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당한 놈은 발 뻗고 자도 남에게 못된 짓 한 놈은 절대 발 뻗고 못 잔다”고 말한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부처님 말씀이시다. 당할 자리에 당해주는 것은 일반사람들에게는 상상을 할 수 없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내 아이는 이 세상에서 가장 모범되고 건강하며 훌륭하게 키우고 싶어 한다. 또한 남보다 앞서고 기죽지 않고 사는 것이다. 의사나 법관을 시킬까 아니면 공무원이나 선생을. 세상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과 뜻있고 거룩하며 보람 있는 직업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그렇게 새 생명을 잉태한다. 

바로 그 마음이 부처님 마음이라는 것이다. 부처의 마음은 자비심의 종자를 뿌리고 그것을 거두는 일이 다반사다. 참고 기다리고 또 정성을 다해서 본연의 임무를 하고 상생과 상화를 해서 처처가 부처님의 모습이요 일마다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며 제악막작(악함을 짖지 말고)을 하며 중선봉행(선행을 받들음)을 하자는 뜻이 있다.

제공=정은광. ⓒ제주의소리
제공=정은광. ⓒ제주의소리

물론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도 인류에게 큰 진리다. 그러나 “원수가 나에게는 왠수가 되어서~” 잘 봐줄려 해도 봐줄 수가 없고 나를 괴롭히는 그런 상황에서 사랑한다는 것은 종교의 사랑타령이 내 삶을 더 힘들게 한다는 사람들도 이야기도 종종 듣는다.

쉽게 말해 ‘케이스 바이 케이스’처럼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마음과 행동이 다른 것이고 가는 길이 다르기도 하다. 

나의 스승은 나에게 이런 말씀을 가슴에 담아주셨다.

“네가 갚을 자리에서 참아라.” 
“그리고 네가 당할 자리에서는 당해주라. 그러면 된다.”

젊은 시절에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세월이 흘러 지금은 “그래, 큰 공부하는 깊은 뜻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법은 내가 손해 보면 절대 못사는 것으로 안다. 종교는 그것을 무시하고 '당한 네가 참아라, 그리고 당해주라, 그게 지혜로운 것이다'하니 이건 아니다 하며 반발하기도 한다. 

그런데 바보가 되면 좀 어때? 나는 이렇게 항변 한다. 어차피 인생은 바보 아냐? 삶은 영리하게 사는 것 같아도 되돌아보면 항상 바보처럼 살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그게 어쩌면 진실이기도 하다.

인생은 길에는 각자 개성이 다르고 업장과 자기 습관이 다르기 때문에 정도(正道)라고 해도 부족함이 많다. 버스기사는 기사 나름의 삶이 있고, 마늘 농사를 짓는 사람은 그 나름의 삶이 있다. 고기 잡는 어부는 파도를 넘나들며 밤낮으로 고기를 잡는 게 모두 자기 삶의 최선을 다하며 순수한 삶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밤에 서귀포 앞바다에 불빛이 환하게 비치면 그게 한치잡이 어선이란 것도 여기서 알게 되었다.

내 삶의 고백은 항상 조금씩 내가 손해를 보거나 당해주거나 그렇게 살아왔다. 그게 부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인 줄 알았다. 흘러가는 하안구름이 산이 높다고 불평하지 않고 강물이 구비처럼 흐른다고 짜증내지 않는다. 우리네 삶도 살아서 한 무리 구름이 떠도는 것이고 죽어서 한 기운 사라지는 형상에 지나지 않다. 

그게 '생야일편 부운기 사야일편 부운멸'(生也一片 浮雲起 死也一片 浮雲滅)이다. 그게 우리네 흔적이고 바람이다.

# 정은광은?

정은광 교무는 원광대학교에서 원불교학을 전공하고 미술과 미학(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원불교 사적관리위원과 원광대학교 박물관에서 학예사로 근무하며 중앙일보, 중앙sunday에 ‘삶과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다년간 우리 삶의 이야기 칼럼을 집필했다. 저서로 ‘그대가 오는 풍경’ 등이 있다. 현재 원불교 서귀포교당 교무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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