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 ‘야스쿠니 망령’ 고발사진전 여는 다큐사진작가 권철
“올해 8월15일 광복절 광화문서 전시할 것...친일 잔존세력 척결해야 우리 역사 진일보”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권철 ⓒ제주의소리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권철 ⓒ제주의소리

“일본 군국주의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는 당하지 않습니다.”

25년, 인생의 절반을 일본에서 보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이자 포토저널리스트인 권철(53)은 한 치의 망설임 없는 눈빛으로 말했다. 권철은 2015년 코미디 같은 일부 언론의 오보와 행정의 무지로 관덕정 마당에서 열려던 <군국주의의 망령-야스쿠니> 사진전이 무산된 바 있다. 이후 4년 만인 올해 8월 6일부터 23일까지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기획 초대 전시로 야스쿠니의 민낯을 고발하는 전시를 제주국제컨벤션센터 갤러리에서 연다.

일본 아베 정권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승소 판결을 두고 사실상의 ‘경제 보복’을 가하면서 어느 때 보다 양국 갈등이 절정에 달한 시점, 전범들을 안치한 야스쿠니 신사(靖国神社)를 통해 일본의 군국주의 민낯을 고발하고자 하는 전시이다.

2005년부터 지금까지 카메라로 야스쿠니를 정조준해온 권철. 그는 야스쿠니에 대해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는 그들의 발톱”이라면서 일본 극우 세력, 그리고 우리 안의 ‘토착왜구’ 모두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철은 한때 JVJA(일본 비주얼저널리스트협회) 회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 일본에서 13명 남짓인 JVJA 회원이 된다는 건 소위 그 판의 사진쟁이들 사이에선 '하늘의 별따기'로 비유된다. 그런데 그는 얼마 지나지않아 스스로 탈퇴를 했다. 조직과 배경보다 ‘도꼬다이(獨對)’로 세상과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숙명처럼 새긴 자신의 사진철학 때문이다.

2015년 무렵, 제주에서 가족들과 머물면서 삶의 터전을 중국 개발자본에 빼앗긴 이호테우해변 주변 제주해녀들의 현실을 기록한 '이호테우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상업사진이 아니기에 돈 안되는 사진쟁이는 가족들 생계를 부양하기 위해 당시에도 제주시내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국화빵을 구워 팔았다. 지금도 카페 아르바이트 등 생계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닥치는대로 다 하고 있다.

오해와 편견에 맞서서 자기만의 철학을 앵글에 담는 것이 중요할 뿐, 겉치레나 포장은 불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조직과 배경보다 독대(獨對)로 세상과 부딪히는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숙명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다. 그가 권철이다.

다음은 8일 가진 독립언론 <제주의소리>와의 인터뷰 전문.

권철 사진작가. ⓒ제주의소리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일본 '야스쿠니'의 실상을 알리고 고발하는 사진전을 열고 있는 권철 사진작가. 지난 8일 독립언론 제주의소리와 인터뷰 중인 권철. ⓒ제주의소리

Q. 2015년 관덕정 전시를 이제야 제대로 열게 됐다. 소감은?
A. 사실과 다른 여론에 휘둘린 제주시 행정의 불허 조치는 지금 생각해도 막장 코미디다. 그럼에도 제주와 한국 문화예술계, 특히 사진계에서 조용히 있었다는 게 정말 아쉽다. 제주사회 안에서 '문제'라고 꼬집는 여론도 부족해 충격을 받았다. 결국 거리 전시를 강행하고 나중에 이호테우 해변에서 사진을 불태우는 퍼포먼스로 마무리했는데 일부는 그마저도 꼬투리를 잡았다. 일본 아베정부가 발톱을 드러내는 시점에 제주에서 야스쿠니 사진을 다시 전시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지난해까지 작업한 최신 사진도 더했으니 더욱 의미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Q. 야스쿠니를 취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A. 일본에는 1994년 사진 공부를 위해 건너갔다. 유학 중에 2003년 도쿄 신주쿠에서 일명 ‘가부키초(歌舞伎町) 정화작전’이 벌어졌다. 중국인, 동남아인 무엇보다 한국인이 주요 타깃이 됐다. 많은 사람이 잡혀가고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갔다. 그때 여파로 옆동네인 오쿠보(大久保)가 제2의 한인타운이 됐다. 한인들이 박해받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야스쿠니가 눈에 들어왔다.

이후 가부키초 정화작전을 주도한 이시하라 신타로 당시 도쿄도지사,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잇달아 야스쿠니를 참배했다. 국내에서도 크게 알려졌는데, 당시만 해도 프리랜서 카메라맨이라 야스쿠니를 취재할 자격이 없었다. 2005년 한국의 모 신문사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를 취재해달라는 요청이 와서 2005년 8월 15일 야스쿠니를 제대로 보게 됐다. 그때 마주한 야스쿠니는 평소 벚꽃이 만개한 평온한 공원이 아니었다. 군복을 갖춰 입고 총·칼을 들고서 군국주의의 부활을 전면에 드러내고 있었다. 숨겨져 있던 ‘군국 부활’이란 발톱이 카메라에 정확히 포착됐다. 그때부터 야스쿠니를 연구하면서 주요 작업으로 삼고 있다. 

Q. 숨겨진 발톱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일본에는 정말 많은 신사가 있다. 수백, 수천 개가 있을 것이다. 그 많은 신사 중에 야스쿠니는 1869년 메이지 유신 선포와 발맞춰 만들어졌다. 이때부터 야스쿠니는 강력한 군국의 상징물이란 의미를 지니게 됐다. 전쟁을 치루면서 수많은 전사자들도 그곳에 안치했다. 쉽게 말해서 일본은 야스쿠니를 통해 군국의 에너지를 보충한다고 보면 된다. 군국이 무엇이냐. 군사를 앞세운 국가다. 일본의 군국주의는 한반도를 36년 동안 식민 지배했고 태평양 전쟁까지 일으켰다.

그런 야심을 일본을 아직까지 버리지 않았고, 그 상징이 바로 야스쿠니다. 수많은 일본 정치인이 매해 야스쿠니를 참배한다. 야스쿠니 안에는 수백 그루의 벚나무가 심어져 있다. 일본 극우세력에게 벚꽃은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를 의미한다. 군국 부활의 상징물인 야스쿠니 신사, 상징화인 벚꽃. 지극히 의도적인 행위이기에 한국은 야스쿠니 신사와 그곳의 벚꽃을 불편하게 여겨야 한다.

권철 작가의 사진 작품 '야스쿠니'. ⓒ제주의소리
권철 작가의 사진 작품 '야스쿠니'. ⓒ제주의소리
권철 작가의 사진 작품 '야스쿠니'. ⓒ제주의소리
권철 작가의 사진 작품 '야스쿠니'. ⓒ제주의소리

Q. 벚꽃에 무슨 의도가 담겨있다고 보나?
A. 꽃 자체는 그저 꽃일 뿐이다. 다만, 지금 야스쿠니를 포함한 한일 양국에 심어진 수많은 벚꽃은 분명한 의도를 지니고 있다. 다른 예를 들어보겠다. 일본군위안부 소녀상은 동상일 뿐이다. 숨을 쉬는 것도 아니고 말을 하거나 화려한 장식도 없다. 하지만 소녀상 안에는 우리 어머니, 할머니, 조선여인들의 한이 서려있다. 그 한을 의도적으로 표출하기 위해 만들었다.

거꾸로 일본 입장에서는 소녀상이 불편하다. 가해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해자인 일본이 불편하라고 의도적으로 소녀상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일본 극우세력이 의도적으로 의미를 부여한 벚꽃과 야스쿠니를 우리는 얼마나 불편해 하고 있나. 나는 야스쿠니에 갈 때 마다 등골이 오싹한 무서움을 느낀다. 벚꽃이 만개한 계절에 야스쿠니에 가면 관광객 인파로 가득하다. 그 가운데는 군국주의라는 숨은 뜻을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조선총독부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너희들(식민지인)이 아무리 반대를 해도 너희 후손들은 100년 뒤에 벚꽃나무 밑에서 축제를 벌일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일본 작가 오오누키 에미코는 “사쿠라(벚꽃)는 일본 제국 영토에 상징적 도장을 찍는 행위”라며 “식민지인은 벚꽃놀이를 즐기며 일본화 돼 간다”고 전한다. 그들이 소녀상을 불편해 하듯, 우리도 벚꽃을 불편하게 여겨야 하는 이유다.

한국에 있는 벚꽃도 가볍게 보면 안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1950년대부터 한국에서는 일제 잔재를 척결한다는 의미로 벚나무를 대대적으로 베어냈다. 그러나 1960년대 들어서 벚나무가 다시 심어지는데 이는 당시 정권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서울 윤중로를 보면 우에노 공원과 유사하다. 벚꽃이 만개한 윤중로를 63빌딩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욱일기가 펄럭이는 것 같다.

진해 군항제는 이순신 장군의 얼을 기억하기 보다는 그저 벚꽃 축제로 남아버렸다. 이제와서 벚나무를 모두 베어버리자는 주장은 아니다. 다만, 일본이 왜 태평양 전쟁에서 벚꽃을 강조했는지, 야스쿠니에 왜 벚꽃을 대대적으로 심었는지, 벚꽃에 담긴 의도가 무엇인지 알고는 놀아야 하지 않겠나.

권철 작가의 사진 작품 '야스쿠니'. ⓒ제주의소리
권철 작가의 사진 작품 '야스쿠니'. ⓒ제주의소리
권철 작가의 사진 작품 '야스쿠니'. ⓒ제주의소리
권철 작가의 사진 작품 '야스쿠니'. ⓒ제주의소리

Q. 이번 <군국주의의 망령-야스쿠니> 전시를 통해 독자들이 무엇을 느꼈으면 하나.
A. ICC JEJU 갤러리에는 40여점의 야스쿠니 사진이 전시돼 있다. 한편에는 지극히 평화로운 신사 풍경이다. 사람들이 산책하며 뛰놀고 있다. 반대쪽에는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는 사람들이 신사 안에서 벌이는 퍼포먼스가 찍혀 있다. 이런 대비 속에 일본 극우세력의 민낯을 느껴보길 바란다.

개인적으로 일본을 100% 부정하지 않는다. 친절하고 정직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성실한 일본인들은 우리가 배워야 한다. 핵심은 군국 부활을 꿈꾸는 일부 극우세력이 문제다. 그들이 다시는 야욕을 품을 수 없도록 우리는 기억하고 똘똘 뭉쳐야 한다. 한국 안에서도 일본에 동조하는 세력이 여전히 남아있다. 역사에 남을 촛불혁명의 성과를 꺼뜨리지 않고 한국이 진일보하려면 친일 잔존 세력을 반드시 척결해야 한다. 그들의 부활은 야스쿠니 부활과 다름없다. 뿌리를 뽑아야 한다. 무지해서 잊어버리면 안 된다. 또 다시 당할 수는 없다. 이번 8월 15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야스쿠니 사진전을 진행한다. 혼자서 여는 전시다. 동참하실 분이 있다면 힘을 합쳤으면 좋겠다. 

권철 사진작가. ⓒ제주의소리
권철 사진작가는 다큐멘터리 사진가이자 포토저널리스트다. 그는 야스쿠니 외에도 재일조선인마을 우토로, 소록도 한센병, 가부키초 등의 현장을 누볐다. ⓒ제주의소리

Q. 야스쿠니, 재일조선인 마을 우토로, 소록도 한센병, 가부키초 등등 다루는 주제들이 하나 같이 무겁다.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삶은 어떤가?
A. 2008년까지는 보도사진가로 활동했다. 한때는 일본 최고 주간지에서 최고 개런티를 받으며 수입이 좋았을 때도 있었다. 사진가로서 삶이 바뀐 계기는 2008년 중국 쓰촨 성 대지진이었다. 당시 현장 취재를 갔는데 폐허가 된 현장에서 구조된 어느 어린이를 만났다. 그 아이는 거대한 콘크리트에 다리가 깔렸다. 열악한 구조 현장 상황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이를 기절 시키고 다리를 톱으로 잘라 병원으로 이송했다. 아이의 어머니를 병원에서 만나 이야기를 접하고 며칠 동안 밥도 먹지 못하고 바깥도 나가지 못하는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사진이 무엇인지, 사진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다가 그 뒤로 보도사진을 그만뒀다. 이후 다큐멘터리 작업에만 집중하고 있다.

현재 제주에 베이스캠프를 두고 한국, 일본을 오가며 활동 중이다. ‘한중일’ 세 나라를 바라보는 적합한 위치라고 생각해, 지인 한 명도 없지만 2014년 말 제주에 처음 왔다. 이전과 비교하면 생활은 어렵다. 가뜩이나 돈 안되는 다큐멘터리 사진이기에 취재 비용 모두 내가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하고 있다.(그는 몇해 전에도 잠시 제주에서 생활하는 동안 국화빵 장사로 생계를 해결하기도 했다.) 아내와 아이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하지만 이건 내 숙명이다. 사실 속에 숨어있는 진실을 캐내서 알려야 한다. 그것이 저널리스트의 역할 아니냐. 앞으로도 야스쿠니를 비롯한 주제들을 계속 다룰 예정이다. 

# 권철

1967년생. 1994년 일본으로 사진 유학을 떠난다. 1997년 보도사진가 히구치 겐지에게 사사받아 일본사진예술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98년 일본대학교 예술학부 사진학과 연구생 과정을 마친다. 1999년 한센병 회복자를 다룬 사진기사가 잡지에 실리며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한다. 주요 취재 테마는 신주쿠 가부키초, 오오쿠보 코리아타운 한류, 야스쿠니 신사, 한센병 회복자, 재일 조선인 등이다. NHK, TBS, TV 도쿄, KBS, YTN 등의 방송과 매체에서 권철을 소개했다. 아시아 최대의 환락가인 '가부키초'를 16년간 밀착 취재한 <가부키초(歌舞伎町)>(일본 후소샤, 2013)로 제44회 고단샤 출판문화상 사진상을 받았다. <텟장, 한센병에 감사한 시인>(2013), 자전적 포토 에세이 <가부키초 스나이퍼>(일본 다카라지마샤, 2014), 제주 해녀들의 삶을 담은 <이호테우>(2015) 등을 펴냈다. 2014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가족들과 함께 한국으로 귀국해 제주도에 터를 잡았다. 이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가부키초, 한센병 회복자, 오오쿠보 한류 등을 소재로 한 사진전을 다수 가졌다.

- 《야스쿠니, 군국주의의 망령》(2015, 컬처북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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