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31. 아침 잔소리에 소발 꺾는다

* 아적(아척) : 아침
* 존다니 : 잔소리, 군소리
* 쉐발 : 소발(牛足)
* 꺼끈다 : 꺾는다

재미있는 말이다.

아침은 새로운 하루가 열리는 신선한 시간이다. 새로운 출발점에서 여러 가지 구상도 하려니와 일에 대한 계획을 짜거나 진행 과정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시점이다. 가슴이 부풀거나 활력으로 넘칠 수도 있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걱정되거나 긴장돼 정신적인 여유를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럴 때 누가 옆에서 잔소리를 늘어놓으면 기분이 상하게 마련이다. 잔소리란 게 상대방에 대해, 하는 게 눈에 들지 않아, 이래라저래라 지적하는 것이므로 서로 간 대립도 되거니와 지나친 간섭이라 생각되면 몹시 불쾌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면 아침에 상한 기분이 하루 종일 따라다니게 된다. 더욱이 직장인일 때는 일과를 망치는 수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일에 능률이 오르지 않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능률이 오르지 않으면 일에 성과도 떨어진다.
  
특히 아침 잔소리는 듣는 사람에 그치지 않고 가족 등 주위 사람들에게 불쾌한 감정을 갖게 함으로써 심하면 안 좋은 방향으로 흐를 우려가 다분히 있다. 삼가는 게 좋다.

옛 어른들도 아침 잔소리에 매우 민감했었나 보다. 오죽했으면 아침 잔소리를 들어 기분이 상하다 보니 죄 없는 ‘소의 발을 꺾는다’고 했겠는가. 한낱 잔소리가 집안에 큰 화(禍)를 자초하게도 된다고 경계한 것이다. 

잔소리를 소재로 한 말이라, ‘잔소리’를 곁들여 좀 풀어놓아야 할 것 같다.

‘잔소리’는 본디 좋은 뜻을 가진 말이 아니다. 쓸데없는 말 혹은 필요 이상으로 듣기 싫게 꾸짖거나 참견하는 말이 잔소리인 때문이다. ‘필요’라는 것이 자기(말하는 話者) 딴엔 필요하다 여길지 몰라도 상대방 입장에서는 필요하지 않을 수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조언(助言)과 잔소리가 갈라진다. 아무리 유익하고 뜻있는 말일지라도, 필요성이 없는 말을 늘어놓는 건 무의미하다. 실없이 되니 공허하다. 결국 상대에게 조언해 주었다고 자기만족에 그칠 뿐이다.

잔소리는 특히 부모가 자식에게 자주 할 수밖에 없다. 자식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말도 조언이랍시고 늘어놓게 되는 것이다. 자식 나이가 마흔이 되고 쉰 줄에 올라도 부모 눈에는 자식이 어린아이로 보이니 어쩔 수 없기도 하다.

데일 카네기의 〈최대한 부부 사이의 무덤을 파는 법〉에서 “사람을 파괴하는 데 지옥의 악마들이 개발한 가장 치명적이고 가장 확실한 방법인 잔소리는 가장 파괴력이 강하다. 절대 실패하는 법이라곤 없다. 마치 킹코브라에 물린 것처럼 항상 파괴적이고 파멸로 몰고 간다”고 했다. 

오죽했으면 아침 잔소리를 들어 기분이 상하다 보니 죄 없는 ‘소의 발을 꺾는다’고 했겠는가. 한낱 잔소리가 집안에 큰 화(禍)를 자초하게도 된다고 경계한 것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오죽했으면 아침 잔소리를 들어 기분이 상하다 보니 죄 없는 ‘소의 발을 꺾는다’고 했겠는가. 한낱 잔소리가 집안에 큰 화(禍)를 자초하게도 된다고 경계한 것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잔소리의 파장이 이만저만 크지 않음을 일깨워 준다.

똑같은 잔소리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약점이 오랫동안 고쳐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뜻할 수 있다. 약점 잡힐 일이 없다면 잔소리도 나올 일이 없다. 그러니 잔소리를 듣지 않는 최상의 방법은 잔소리로 지적되는 것들을 빨리 고치거나 처리해 버리는 길밖에 없다.

잔소리는 보통 “나는 예전에 안 그랬다. 만날 시험에 100점을 맞았어”, “누구누구는 이러하더라, 너는 왜 그렇게 못하니?”부터 시작해서 도가 지나치면 “네가 내 자식이냐?”, “동물도 안 그런다”, “넌 사람도 아니다”로 격하게 흐른다.

듣는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감정적‧모욕적 말들을 포함해 욕설로 발끈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쯤 되면 이미 잔소리 수준을 넘어 버린다. 언어폭력으로 비화하고 마는 것이다. 때로는 그 정도에 그치지 않고 진짜 폭력을 휘두르게 되기도 하려니.

잔소리는 어느 선에서 조곤조곤 그러면서 부드러운 어조로 하면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지만 심하거나 자주 하면 의도하는 바가 그만 무산되고 만다. 더군다나 아침 존다니(잔소리)는 절대 삼갈 일이다. 그게 평화를 깨지 않고 질서를 편안하게 유지하는 길이 된다. 

‘아적 존다니에 쉐발 꺼끈다.’ 심상하게 들을 말이 아니다.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