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사를 위한 놀이 수업] 6. 책 가위바위보, 책 돌리기, 동전 농구 놀이

첫째 아이와 책의 첫 번째 만남

제 첫째 아이가 돌이 되기 전이었을 겁니다. 아이는 책과 처음 만났습니다. 그 때의 일은 책과 사람의 관계, 그리고 놀이에 대한 저의 생각을 바꿔 놓았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책은 읽는 대상이라고만 생각했거든요. 한창 ‘구강기’에 접어든 아이가 물고 빨아도 좋을 만한 소재의 책을 쥐어주었습니다. 간단한 그림과 알록달록한 색깔들이 담겨 있고 시원한 여름 바다와 하늘이 생각나는 파랑색이 가득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아이는 책의 내용에는 아랑곳없이 그저 물고 빨다가 지겨워졌는지 집어던졌습니다. 한참 후에는 온 집안을 기어 다니다가 마치 새로운 물건을 발견이라도 한 듯 책을 집어 들더니 한참 물고 빨다가 다시 집어던졌습니다. 그런 행동을 한 시간 동안 서너 번이나 하더라고요. 생각해보면 사람이라는 몸과 책이라는 몸이 처음으로 인사하는 건 퍽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일상에서 이렇게 자연스러운 만남이 이루어지는 건 드뭅니다. 

아이들과 책 놀이를 하기 전에 반드시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책을 몸에 비유해서 각 부위의 이름을 맞히는 것입니다. 가장 쉬운 문제는 책표지. 아이들은 ‘얼굴’이라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책등’입니다. 우리가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주로 보는 책의 부위가 ‘책등’이기 때문입니다. 책등 반대쪽의 ‘책배’까지 알려주면 아이들은 책을 사람처럼 상상하기 쉽습니다. ‘책 가위바위보 놀이’는 책등과 책배를 자주 사용하는 놀이입니다. 

하지만 재밌는 놀이가 있더라도 놀이에 어울리는 그림책이 없다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다행히 책의 몸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놀이와 참 잘 어울리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클로드 부종의 《아름다운 책》입니다. “왜 아름다운 책일까?”, “책의 어떤 점이 아름답다는 걸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그림책을 시작하면 아이들은 놀이와 그림책의 의미를 금세 파악합니다. 

“크흐흐흐!”
여우가 와락 달려들었습니다. 
에르네스트와 빅토르는 그제야 큰일 났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제 꼼짝없이 죽었구나!’
둘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도망칠 수도 없고, 
숨을 데도 없고, 싸울 무기도 없었지요. 가지고 있는 건 오로지
책 한 권밖에 없었으니까요. 
“책! 그렇지!”
에르네스트는 여우에게 번개처럼 달려들어 책을 휘익 치켜들었습니다. 
그러고는 있는 힘을 다해 여우의 머리통을 내리쳤습니다.

- 클로드 부종, 《아름다운 책》

왜 아름다운 책일까요? 에르네스트와 빅토르 형제는 두꺼운 표지를 가진 책 덕분에 달려드는 여우를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그래, 껍데기가 커다랗고 딱딱한 걸로” 책을 다시 구해와야겠다고 말한 것은 책의 아름다움을 한 번 더 강조해줍니다. 제가 만든 모든 ‘책 놀이’는 하드커버 그림책을 도구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가장 첫 번째 튜토리얼은 《아름다운 책》입니다. 제 첫째 아이가 반질반질한 폴리에스테르 소재의 책 다음으로 갖고 논 장난감도 ‘딱딱한’ 그림책이었습니다. 여전히 첫째는 책의 내용은 안중에도 없고 던지고 찢고 물어뜯으면서 놀았습니다. 아이가 책의 내용에 관심을 가진 건 그로부터 한참 후의 일입니다. 

책의 몸통을 가지고 놀이를 하는 게 중요한 까닭은 아이들에게 책에 대한 올바른 시작점을 마련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책에 대한 생각의 폭도 넓혀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책을 펼쳐놓고 천자문 외듯 '하늘 천 따지'를 하지 않습니다. 책을 펼치고 책의 내용에 주목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그 시간에 대한 느낌과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놀이가 채워져야 합니다.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그림 1. 책 돌리기를 잘 하려고 엄청 집중하는 어린이. 책이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르므로 다른 사람과의 거리를 두고 해야 한다.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그림 2. 책의 두꺼운 몸통 덕분에 목숨을 건진 두 토끼 형제의 이야기를 통해서 책이 가지고 있는 뜻 밖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클로드 부종의 《아름다운 책》.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딱히 도구 없어도 즐겁게 놀 수 있어서 더 좋은 책 돌리기, 책 가위바위보, 동전 농구

《아름다운 책》을 읽어주고 나서 여러 가지 질문으로 아이들의 관심을 유도한 후 천연덕스럽게 그림책 돌리기를 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책 돌리기를 귀신같이 잘 하던 친구들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책 돌리기를 잘 못해요. 그런데도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저마다 자기가 해보겠다고 간청합니다. 책 돌리기만으로 30분을 놀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아이들은 집에 가서도 혼자 책 돌리기 놀이를 할 것입니다. 

책을 잘 돌리려면 왼손으로 책의 모서리를 잡고 스핀을 잘 먹여야 합니다. 투수가 공을 던질 때 공의 회전수를 높이는 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그렇게 스핀을 먹인 책이 손가락 위에서 돌아갈 때 오른손은 높낮이를 조절하면서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게 기술이 필요합니다. 직접 해보지 않으면 돌릴 수 없지만 실력이 타고난 친구들이 있습니다. 

책 가위바위보 놀이는 승리자가 계속 승부를 하는 경우가 있고 세트로 나눠서 진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승리자가 계속 하는 경우는 가위바위보 기회를 못 받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저는 세트 게임으로 진행하는 편입니다. 비교적 나이가 어린 친구들(초등학교 저학년 또는 미취학 아동)이 있다면 승부하기 전에 물어봐야 합니다. 

“졌다고 울기 있기 없기?”

어린이들 중에는 가위바위보 졌다고 나라를 잃은 것처럼 비통해하는 친구들을 적잖이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책등을 배에 바짝 붙이고 책배를 둘로 갈라 책장이 흩날리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가위 바위 보’를 확실히 하는 것입니다. 가위 같은 보가 있고, 바위 같은 가위가 있고, 또 이를 이용해서 요령을 피는 아이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가위바위보 하기 전에는 반드시 인사를 시킵니다. 

인사는 몸의 아름다운 말과 같습니다. 인사를 하려면 자세를 바로잡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올바른 정신과 태도가 자극 받습니다. 저는 놀이의 중간에 승부를 겨루기 전에 반드시 인사를 시킵니다. 그러다 보니 전체 놀이를 하면서 2~30번 정도 인사를 합니다. 인사를 하는 까닭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페어플레이에 대한 약속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린이들에게 인사하는 습관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책의 몸통을 가지고 하는 놀이 자체가 책과의 인사이기도 합니다. 

동전농구 게임은 다양한 동전을 가지고 던져 보게 하는 게 좋습니다. 동전과 책의 질감, 마찰력, 던지는 각도 등을 조절하면서 성공률을 높이는 모습을 보면 어린이들이 본능적으로 과학자의 기질을 타고 나지 않았나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서 전국의 사서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이 수업을 시연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수업이 끝나고 한 선생님이 개인적으로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 그것도 책 놀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같은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자문도 가능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책을 내용적으로만 바라보지 않았는지. 그림책 《아름다운 책》의 아름다움을 생각한다면 저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그림 3. 책 가위바위보 놀이. 책등을 배에 붙이고 책을 손으로 삼아 가위바위보를 하는 단순한 놀이지만 몰입도는 매우 높다.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오승주는?

1978년 제주 성산포에서 나고 자랐다. 제주대에서 국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2003년부터 10여 년간 서울 강남에서 입시컨설팅, 논구술 특강 등의 일을 하다가 대한민국 입시구조와 사교육 시스템에 환멸감을 느꼈다.

이후 언론운동과 시민정치운동, 출판문화운동, 도서관 운동 등에 참여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변화의 힘은 가정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족의 끈이 이어지게 하는 일에 인생을 걸었다. 소홀했던 가정이 무너지기 직전, 아이의 간절한 외침 소리를 들었기 때문.

2013년 《책 놀이 책》을 써 아이와 부모를 놀이로 이어 주었고, 3년간의 공부방 운영 경험과 두 아들과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썼다. 아빠 육아, 인문고전으로 아이 깊이 읽기로 가족 소통을 꾀했다.

현재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공자의 논어》,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사마천의 사기》를 집필 중이며 아주머니와 청소년을 작가로 만드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글쓰기·책쓰기 강사로서 지역 도서관과 활발히 사업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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