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연극공동체 다움 입체낭독극 ‘경성산파 박자혜’

올해는 일본과의 긴 악연이 분기점을 맞는 해로 역사에 남을 전망이다.

3.1운동 100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라는 상징적인 의미에 더해,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수출 품목을 전격 제한하면서 사실상의 경제 보복, 경제 전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준 대법원 판결이 보복의 배경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아베 정부의 대응에 한국인들의 불매운동, 반일감정은 어느 때 보다 강하고 지속적인 응집력을 보이고 있다. 반도체부터 소상공인까지 산업 현장 곳곳에서 일본 의존도를 낮추는 유의미한 시도까지 나아가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동안 잘 드러나지 않았던 우리 안의 친일 세력, 일명 ‘토착왜구’의 존재도 온라인, 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하나 둘 밝혀지는 중이다.

하루가 다르게 긴박한 ‘이 시국’에 제주 극단 연극공동체 다움은 8월 신작으로 독립운동가 박자혜(1895~1943)를 조명한다. 창작 입체낭독극 <경성산파 박자혜>다.

박자혜는 4세 어린 나이에 궁궐에 들어갔고 숙명여학교 기예과, 사립조산부양성소를 거쳐  1916년부터 조선총독부의원 산부인과에서 간호사로 근무한 전문 직업여성이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사건과 인물로 보는 우리 근현대사 33-박자혜의 삶과 투쟁>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산파는 당대의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새롭고도 드문 전문직이었다. 우선 산파는 간호사로 병원에 취직할 수 있었다. 개업할 수도 있어 결혼의 제약에서 자유로웠으며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었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근대적 위생을 실현하는 의료인이라는 자긍심을 가질 만한 직업이었다. … 박자혜는 궁인, 학생, 간호부로 생활하면서 경제적 능력을 보유하고 나아가 사회적 지위를 지닌 여성 주체로 성장하였다. 이때까지 그녀의 삶에 민족의식 정치의식의 영향이나 흔적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박자혜의 운명은 1919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달라진다. 3.1운동 참가 부상자들을 치료하면서 내면의 변화가 일어났고 동료 간호사들과 만세운동을 계획한다. ‘간우회’라는 간호사 독립운동 조직도 만든다. 정치적으로 각성했지만 박자혜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조선총독부의 감시에 일도 그만두고 중국 유학을 떠나 결혼하고 귀국 후 조산원도 열었지만, 경제적으로 힘든 나날을 보낸다. 그의 남편은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 선생. “자신은 가정에 등한한 사람이니 미리 알고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말을 아내에게 자주 말했다고 하니, 박자혜의 고단한 삶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10년 형을 선고받은 남편 옥바라지, 육아, 생계 모두를 떠안아야 했던 박자혜. 결국 1936년 2월 남편 신채호가 옥사하고, 홀로 남아 독립의 그 날이 얼마 남지 않은 1943년 쓸쓸히 세상을 떠난다.

박자혜는 김구, 안창호, 안중근 같이 널리 알려진 독립운동가는 아니다. 뚜렷한 공적 활동도 1926년 12월 나석주 의거 당시 의열단원 참여 이외에는 많지 않다는 평가다. 그러나 묵묵히 가정을 지킨 박자혜가 있었기에 신채호라는 인물이 오늘날 같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3.1운동을 외면하였더라면 박자혜의 삶은 일제가 주도하는 세계 속에서 평온했을 것”이라며 “남성들이 밖으로 떠돌 때 여성들이 수행한 재생산노동, 돌봄노동은 독립운동이 장기 지속될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이었다. 누군가의 부인, 며느리로 불려온 박자혜, 이은숙, 허은, 한도신, 정정화와 같은 여성들의 노동이 아니었으면 장기 지속적인 독립운동이 가능했을까? 독립운동의 역사가 매일의 거사로 기록되지는 않는다. 매순간 생존 자체가 절박했으며 이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근거지를 유지하는 것이 평상시 보다 중요했던 곳이 바로 독립운동의 공간”이라고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운동가 여성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연극공동체 다움은 박자혜와 가상의 인물·사건을 통해 해방의 가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35년 8월, 박자혜의 조산원에 한 산모가 허겁지겁 찾아온다. 본인을 26세 노다 히미코라고 소개하지만, 극심한 산통에 자신도 모르게 ‘엄마!’를 찾는 조선인이다.

창작으로 태어난 노다 히미코의 존재는 상당히 극적이면서 흥미롭다. 그의 아버지는 이름만 들어도 일제 경찰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힘 있는 인물로 설정했다. 대표적인 친일파이자 일제강점기 창씨개명 1호인 ‘노다 헤이지로’ 송병준이 모델이다. 그에 반해 남편은 만삭인 아내를 두고 늘 도망 다니는 독립운동가다. 작품 말미, 노다 히미코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남편을 조우하는 순간은 극적인 효과가 정점으로 치닫는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노다 히미코는 첫 등장부터 뱃속의 아이를 일본인으로 키우겠다고 강조한다. “1919년 태어날 때부터 일본인이었기에 그냥 일본인으로 살고, 아이 역시 일본인으로 키우고 싶을 뿐”이라는 대사 속에는 예나 지금이나 ‘역사, 정치는 나와 상관없다’는 사람들의 인식이 담겨있는 듯하다.

박자혜는 노다 히미코의 출산 과정을 도우면서 꾸준히 ‘메시지’를 던진다. ‘당신도 언젠가 해방될 것이다’, ‘끝까지 고통에 맞서라’, ‘아이는 꼭 조선인으로 키워라’ 등등의 조언은 목숨을 건 인내와 고통의 시간을 견뎌야 소중한 새 생명을 맞이하듯, 민족의 독립과 해방 역시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작품은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권리가 지난 날 동안 무수한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려가며 하나씩 쟁취한 발판이라는 사실까지 나아간다. 그것은 역사를 최고 권력자의 업적으로 치부해서는 안되며,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때로는 희생한 평범한 사람들의 노력으로 일궈낸 ‘모두의 역사’로 인식하게끔 만든다. 피·눈물로 닦아진 발판 위에 안주하면서, 발판이 만들어진 과정을 폄훼·왜곡하는 무리들에 대한 비판 의식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눈 한 번 질끈 감으면 얼마든지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었음에도, 자신보다 우리, 민족을 선택했고 그 결과 보통의 행복을 포기해야 했던 박자혜의 인생. 그래서 ‘다시 태어나도 조선의 산파가 되고 싶다’는 마지막 말은 관객에게 한 없이 무겁게 다가온다.

<경성산파 박자혜>에서 박자혜 역은 황은미, 노다 히미코 역은 서민우가 맡았다. 특히 서민우는 극본과 연출을 담당했다. 낭독극이라고 소개하나 준비한 복장부터 연기까지 고려하면, 관객 입장에서는 사실상 정극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낭독극 앞에 ‘입체’라는 단어를 붙인 이유다.

지난 9일 '경성산파 박자혜' 첫 공연을 마친 연극공동체 다움의 서민우(왼쪽), 황은미. ⓒ제주의소리
지난 9일 '경성산파 박자혜' 첫 공연을 마친 연극공동체 다움의 서민우(왼쪽), 황은미. ⓒ제주의소리

작품은 그림자 인형극, 1인 2역(박자혜·신채호) 같은 구성으로 박자혜의 역사도 짧게 압축해서 보여준다. 극의 흐름을 해치지 않으면서 보는 매력도 더한다.

인물에 대한 극예술은 자칫 밋밋한 일대기로 흘러가는 경우가 있는데, <경성산파 박자혜>는 짧은 분량이지만 재미와 메시지 모두를 위해 고민한 흔적이 역력해 반갑다. 출산 장면은 준비하는 사람 입장에서 신경 쓸 요소가 많기에 자칫 어색해지면 어쩌나 싶었는데, 분위기를 무사히 이어갔기에 기억에 남는다. 작은 무대지만 꼼꼼한 디테일에 나름 신경 쓰는 평소 특징은 이번 공연에서도 잘 나타난다.

물론 두 명이서 무대를 책임져야 하는 만큼 모든 것이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 9일 첫 공연 후 관객들은 박자혜가 각성하는 계기를 보여주는 그림자 인형극을 포함해 주요 장면에서 힘이 더 들어가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연극공동체 다움은 매 공연이 끝난 뒤 관객과 함께 하는 다과 시간을 연다.) 개인적으로 덧붙이자면 극본 속에서 노다 히미코와 박자혜가 한층 첨예하게 부딪힌다면 어떨까 하는 바람도 있다. ‘그냥 일본인으로 살고 싶다’는 노다 히미코의 반복된 입장을 세분화시킨 대화 속에, 결과적으로 평범한 이들의 용기와 변화가 가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킨다면 작품이 전하는 의미가 커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성산파 박자혜>는 15~16일 경북 성주군에서 열리는 제10회 심산문화축제에 초청돼 원정 공연을 떠난다. 이 축제는 독립운동가 겸 교육자였던 성주 출신 심산 김창숙 선생을 기리는 뜻깊은 행사다. 공연 내용과 일맥상통하다고 볼 수 있겠다.

현실적인 한계가 분명했지만 노력의 결과물은 그리 부족하지 않은 완성도를 보였고, 마침 시기도 공감대를 형성할 시의적절한 때다. 향후 충분히 확장 가능한 잠재력도 확인했다. 연극공동체 다움의 <경성산파 박자혜>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또 하나의 독립영웅’을 만나는 소중한 시간이다.

남은 공연 날짜는 8월 23일과 24일이다. 시간은 오후 7시 30분. 날씨가 좋지 않을 경우 실내 공연으로 대체한다.

봉성리하우스씨어터
애월읍 봉성로 67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