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공으로 배우는 공동체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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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사를 위한 놀이 수업] 7. 탁구공 고속도로 놀이

3초의 영상을 얻기 위해 60분 동안

솔직히 이 놀이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만든 지 얼마 안 되는 놀이인 데다 품이 매우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는지 한 번 들어보실래요? 6m 정도 길이(긴 회의 책상 2개를 이어붙인 정도의 길이)에 책 계단을 만듭니다. 처음에는 한 권, 두 번째는 두 권, 세 번째는 세 권……. 이렇게 끝없이 계단을 만들어야 내리막길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 위에 기둥을 쌓습니다. 그 위에 다시 고속도로를 덮습니다. 내리막길 고속도로가 완성됐다면 시작 지점에서 탁구공을 놓고 골인 지점까지 통과해야 이기는 놀이입니다. 볼링장을 생각해 보세요. 핀에 닿기도 전에 왼쪽 오른쪽 파울라인에 얼마나 많이 빠졌나요? 탁구공도 볼링공과 비슷한 처지입니다.

놀이 소개를 간단히 해주자 아이들이 분주하게 그림책을 퍼 나르기 시작했습니다. 몸이 근질거려 가만히 있지 못하는 친구들은 그림책 《마법사의 제자》에 나오는 부지런한 빗자루처럼 멈추지 않고 책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책을 너무 많이 가져온다고, 책을 쾅 하고 던져서 동생들에게 잔소리를 들었습니다. 대공사를 하는 어린이들을 보면서 탁구공 고속도로 놀이는 일단 책이 많아야 하고, 사람 수가 많아야 하고, 결정적으로 가만히 있지 못하는 장난꾸러기들이 많이 있을 때 재밌게 놀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시간이 이렇게 많이 걸릴지 몰랐습니다. 집에서 간단히 준비할 때는 경사로를 금방 만들었고 탁구공도 끝까지 잘 굴러가서 심심할 거라고 예측했거든요. 아이들이 부지런히 고속도로 공사를 할 때 저는 다음 놀이를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집에서 놀이 설계하면서 해본 것은 1~2m에 불과했지만 실제 놀이는 6m나 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방바닥에서 할 때와 큰 회의 책상 위에서 한다는 점도 달랐습니다. 6m의 고속도로를 바닥에 쌓기는 어렵습니다. 긴 회의 탁자를 놀이판으로 삼는 까닭은 어느 정도 높이가 있어야 시선이 집중되고, 아이들이 책을 나르며 공사하기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이 놀이는 시행착오의 시행착오가 반복됐습니다. 고속도로가 점점 완공돼가는 모습을 보면서 또 다른 고민이 생겼습니다.

‘탁구공이 골인 지점까지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을까?’

한 친구가 놀라운 제안을 했습니다.

“선생님, 터널을 만들면 어떨까요?”

아이의 질문에 머리가 맑아졌습니다. 책등을 하늘로 향하게 하고 책배를 다리로 삼아서 길게 세워 놓으면 탁구공이 터널을 따라 끝까지 굴러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탁구공 고속도로는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터널의 건설로 인해서 안전하게 탁구공의 길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탁구공의 발사대를 제안한 아이 역시 빛나는 아이디어였습니다. 그 아이는 ‘미끄럼틀’을 생각했습니다. 책으로 만든 터널의 조각 하나를 뽑아서 옆으로만 비틀면 미끄럼틀이 됩니다. 미끄럼틀 위에서 탁구공을 떨어뜨리면 급한 경사를 따라 완만한 경사인 고속도로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때문에 속도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완주 성공한 어린이가 나온 시점은 놀이를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다행히 성공하는 모습은 영상으로 담을 수 있었습니다.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 그림 1. 하늘팀과 땅팀으로 나눠서 골인 지점부터 출발 지점까지 책을 하나씩 더 높여 내리막길을 만들며 탁구공 고속도로를 세우고 있는 어린이 건설 일꾼들의 모습.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 그림 2. 똑같은 모양처럼 보이는 끝없이 이어지는 책표지가 어린이의 관찰력과 집념, 상상력을 만나자 점점 미스터리의 속살을 보여주는 그림책. 책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는 공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점이 매력적인 《책 속의 책 속의 책》.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위대한 팀의 일원이 된다는 것

스위스의 일러스트레이터 출신 그림책 작가인 요르크 뮐러의 《책 속의 책 속의 책》은 거울 속 거울처럼 책을 들고 있는 책 표지를 들여다보고 있는 소년이 등장합니다. 책 속에는 똑같은 표지의 책이 들어 있고, 또 그 책 속에는 같은 책이 반복되는 듯이 보입니다. 우리들의 일상이 얼핏 보면 똑같은 일만 계속 되는 것처럼 보이듯. 하지만 돋보기로 자세히 보니 작은 차이가 보입니다. 그리고 문처럼 들어갈 수 있게 된 책입니다. 아이들은 관찰과 응용의 대가입니다. 자세히 관찰하면 판에 박은 일상도 다양하고 재밌는 일들로 가득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6m라는 긴 거리를 옆길로 새지 않고 끝까지 탁구공이 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수만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아이들의 관찰력과 활기, 응용력을 자극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놀이가 의도한 것처럼 흘러가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의견이 맞지 않아서 티격태격 다투기도 하고, 상대팀을 방해하기도 하고 뛰어다니기도 합니다. 남자 아이들 중에는 책을 쌓고 기둥을 세우는 작업이 지루해 딴 짓을 하기도 합니다. 저는 넌지시 이야기를 합니다. 승리하는 팀은 승리하는 방법을 알고 있고, 패배하는 팀은 이유가 있다고. 결국 아이들의 모든 행동은 승리 또는 패배라는 결과로 수렴되기에 과정을 성실히 해야 한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배웁니다.

탁구공 고속도로처럼 규모가 큰 공동체 놀이를 많이 만들려고 노력하는 까닭은 한 사람의 힘만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린이들이 ‘팀’이라는 개념에 익숙하기를 기대하는 건 아직은 무리입니다.

“저는 성공했는데 팀원들이 제대로 못해서 짜증이 났어요.”

유일하게 탁구공 완주에 성공한 친구는 팀원들을 탓했습니다. 자신이 팀원들을 도와주지 않고 훼방을 했으면서 승부의 추가 이미 기울었을 때 ‘어차피 질 거예요’라고 김빠지는 이야기를 하는 친구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탁구공 고속도로 놀이는 그 규모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자신들의 패배가 눈에 보이지만 끝까지 책 길을 다듬는 아이, 승패와 상관없이 웃는 얼굴로 친구들을 돕는 아이, 기발한 아이디어로 성공 확률을 높이려는 아이,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한 권 한 권 쌓는 아이. 아이들을 사진에 담을 때는 잘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뒤늦게 발견한 이야기가 참 많았습니다. 재밌는 건 놀이 종반부로 가면서 모든 아이들이 책 정리를 해야 한다는 점을 걱정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들이 다 어지럽혔으면서.

한 아이가 꼭 기둥을 세워야 하는지 반문했습니다. 책의 계단만으로 어느 정도 경사가 만들어졌으니 책을 깔아서 길만 평평하게 만들고 탁구공이 궤도를 이탈하지 않게만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주장이었습니다. 한 번 시도해볼 만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팀 어린이들은 기둥을 치우고 길만 깔았습니다. 하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는 않았습니다. 탁구공이 벗어날 확률이 더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이번 판단의 결과는 뼈아팠습니다. 전체적으로 탁구공 고속도로 놀이에는 성공 가능성보다 실패 가능성이 크며, 어린이들이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자기 일에 집중하고 협력하는 모습은 감동적이었습니다. 딴 짓을 하던 친구들도 하나씩 자기 자리로 돌아와 맡은 일에 충실히 했습니다. 제가 만든 놀이 중에서 인생에 가장 가까운 놀이를 하나 꼽자면 ‘탁구공 고속도로’를 꼽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 그림 3. 딴 짓을 하던 어린이도, 동네의 소문난 장난꾸러기도 집중해서 작업을 해야 할 만큼 탁구공 고속도로는 대공사였습니다. 그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오승주는?

1978년 제주 성산포에서 나고 자랐다. 제주대에서 국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2003년부터 10여 년간 서울 강남에서 입시컨설팅, 논구술 특강 등의 일을 하다가 대한민국 입시구조와 사교육 시스템에 환멸감을 느꼈다.

이후 언론운동과 시민정치운동, 출판문화운동, 도서관 운동 등에 참여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변화의 힘은 가정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족의 끈이 이어지게 하는 일에 인생을 걸었다. 소홀했던 가정이 무너지기 직전, 아이의 간절한 외침 소리를 들었기 때문.

2013년 《책 놀이 책》을 써 아이와 부모를 놀이로 이어 주었고, 3년간의 공부방 운영 경험과 두 아들과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썼다. 아빠 육아, 인문고전으로 아이 깊이 읽기로 가족 소통을 꾀했다.

현재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공자의 논어》,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사마천의 사기》를 집필 중이며 아주머니와 청소년을 작가로 만드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글쓰기·책쓰기 강사로서 지역 도서관과 활발히 사업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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