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청진기] (9) “분노하지 말라, 대신 공감과 연대로”

'제주 청진기'는 제주에 사는 청년 논객들의 글이다. 제주 청년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았다. 청년이 함께 하면 세상이 바뀐다.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에서, 각종 사회문제에 대한 비판적 시선, 청년들의 삶, 기존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서브컬쳐(Subculture)에 이르기까지 '막힘 없는' 주제를 다룬다. 전제는 '청년 의제'를 '청년의 소리'로 내는 것이다. 청진기를 대듯 청년들의 이야기를 격주마다 속 시원히 들어 볼 것이다. [편집자] 

지금 우리 사회의 분노가 뜨겁다.

지난달 4일 가족과 함께 승용차를 타고 제주를 여행하던 A씨는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갑작스럽게 앞으로 끼어든 카니발 차량 운전자에게 항의했다는 이유로 카니발 차주에게 폭행을 당했다. 어린 자녀들과 아내 앞에서 무차별 폭행이 이뤄져 많은 사람들에게 공분을 사고 있다. ‘제주 카니발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청와대 국민 청원이 등록됐고 현재 14만여명이 동참했다. 

열 받아서 홧김에 사람을 패고, 욱해서 살인까지 벌이는 우발성 범죄가 급증하고 있는 것은 한국 사회가 병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임계치에 도달한 분노는 결국 범죄율 상승으로 이뤄지는 만큼 분노조절과 관련한 교육과 훈련이 필요한 시점일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 같은 분노의 이면에는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한 좌절, 무력감, 경제적 어려움, 스트레스와 같은 사회 구조적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 이 분노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실제 이 같은 현상은 우리나라만 발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서구의 많은 나라들은 고속성장기가 끝날 무렵 분노사회를 경험했다. 이들은 분노사회를 해결하기 위해 불평등 구조를 개선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분노관리를 통해 이를 극복해 나갔다.

‘분노’는 사람 누구나가 가지는 보편적인 감정이다.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어떻게 표출되느냐에 따라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3·15 부정선거에 항거해 일어난 4·19혁명은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어냈고,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의 호헌조치에 분노한 1987년 6월 항쟁은 대통령 직선제 부활을 가져왔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분노는 유래없는 촛불집회를 이끌었고,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었다. 이처럼 분노는 역사적 변화를 이끌어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분노가 만만한 이웃이나 힘없는 약자를 향한다면 그것은 일그러진 감정의 잔여물이며 그저 범죄일 뿐이다. 

현재도 자신들의 잘못된 역사를 반성하지 않고, 경제적 보복 조치를 취하고 있는 일본 아베 정권에 대한 분노,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김용균을 둘러싼 불평등 구조에 대한 분노 등 우리의 분노가 향해야 할 곳은 너무나도 많다.

우리의 분노가 향해야 할 곳을 제대로 직시해야 한다. 우리 사회를 둘러싼 불공정과 불평등을 들여다보고, 이를 바꾸기 위한 분노여야 한다. 

대중에게 분노의 절제를 요구하거나 이전에 소극적 분노사회로 돌아가라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해결될 것 같지 않고, 우리 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분노를 만들어내는 구조적 현실에 대한 보다 과감한 대책을 통해 우리 사회의 공동체적 인식을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

분노라는 감정만이 아니라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 대한 공감과 연대가 함께 해야 한다. 약자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과 구조를 향해 잘못됨을 바로잡고 변화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강보배는?

만 28세.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 사무국장.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청소년교육, 청년정책, 사회적경제, 주민자치에 관심을 갖고 '더 나은 제주'를 꿈꾸며 활동해왔다.

지금은 노마드처럼 전국을 다니며 청년들을 연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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