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르포] 제2공항 예정지 온평 일대 숨골-동굴입구 수십개 곳곳 발견
민간공동조사단 "전형적인 곶자왈 지형, 동굴 존재 가능성 높아" 주장

 

제주 제2공항이 들어서는 예정 부지인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혼인지 안내판을 끼고 마을 안길을 따라 100m 남짓 들어가니 이미 수확을 마치고 헤집어진 무밭이 한 눈에 들어왔다.

조금 더 다가서자 밭 한가운데 돌 무더기가 쌓여 있었고, 바닷가가 있는 북쪽을 향해 깊다란 물길이 나 있었다. 비가 오면 자연스레 배수로 역할을 하는 '숨골'이 위치한 곳이었다.

돌 틈 사이로 손을 집어 넣어봤다. 한여름에도 서늘한 공기가 손 끝을 타고 순간 올라왔다. 뙤약볕 아래 대지의 기온은 33~35도에 다다랐지만, 숨골의 기온은 25도를 넘지 않는단다. 

굳이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지 않더라도 지하 공간과 연결된 숨 구멍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20일 찾은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숨골·동굴입구 추정 현장. ⓒ제주의소리
20일 찾은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숨골·동굴입구 추정 현장. ⓒ제주의소리
20일 찾은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숨골·동굴입구 추정 현장. ⓒ제주의소리
20일 찾은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숨골·동굴입구 추정 현장. ⓒ제주의소리
20일 찾은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숨골·동굴입구 추정 현장. ⓒ제주의소리
20일 찾은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숨골·동굴입구 추정 현장. ⓒ제주의소리

제주의 ‘숨골’은 화산지형으로 인해 만들어졌고, 천연동굴의 주변은 물론, 곶자왈·농경지·초지·목장 등 곳곳에 존재하며 지하수의 이동통로 역할을 하는 제주 지하수 탄생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특히 지표수가 없는 제주의 특성상 생명수 역할을 하는 지하수가 함양되기 시작하는 중요한 관리대상이다.

20일 오후 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의 안내로 찾아간 성산읍 제2공항 예정지에서는 이같은 숨골과 동굴 입구로 추정되는 곳들을 다수 확인할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 숨골은 국토교통부가 제주 제2공항 조성사업을 앞두고 수행한 전략환경영향평가 초안에서는 발견되지도 않았던 곳이다. 

곶자왈사람들, 제주참여환경연대, 제주환경운동연합 등 제주지역 환경단체가 공동조사단을 꾸려 지난 7월 18일부터 8월 15일까지 약 한 달간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이 일대에서 발견된 숨골은 총 69곳에 달했다. 

국토부의 환경영향평가에서 제시한 숨골은 단 8곳에 불과했다.  이번 조사에선 61곳의 숨골이 추가로 발견됐다. 동굴 입구로 추정되는 포인트도 최소 5곳에서 많게는 7곳까지 발견됐다.

새롭게 발견된 숨골·동굴은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미 공공연히 회자됐던 곳이고, 일주도로와의 거리도 멀지 않아 얼마든지 확인이 가능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럼에도 국토부 환경영향평가에는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되지 않아 부실 의혹을 키우고 있다.

조사인력과 조사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을 민간 조사단이 이뤄낸 성과와 비교하면 부실 의혹은 더 짙어진다.

20일 찾은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숨골·동굴입구 추정 현장. ⓒ제주의소리
20일 찾은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숨골·동굴입구 추정 현장. ⓒ제주의소리
20일 찾은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숨골·동굴입구 추정 현장. ⓒ제주의소리
20일 찾은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숨골·동굴입구 추정 현장. ⓒ제주의소리

처음 찾아간 숨골과 직경거리로 1km도 떨어져있지 않은 또 다른 메밀밭에서도 군데군데 숨골이 추가로 발견됐다. 이 곳 역시 돌무더기가 인위적으로 쌓여있었다. 쓸려오는 토양에 의해 숨골이 막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밭 한 귀퉁이에서는 1m 가량 낮은 지대의 깊이 파인 구멍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을 주민들에 의해 '지다리(오소리의 제주어)굴'이라 불리운 곳으로, 동굴과 연결됐을 가능성이 높은 곳이기도 하다.

해당 굴의 존재 가능성 역시 환경영향평가에는 누락돼있다. 국토부가 수행한 환경영향평가에 부실 의혹이 제기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환경단체 공동조사단이 찾은 숨골은 제2공항 부지 전역에 걸쳐서 분포돼 있다. 특히 새롭게 발견된 숨골 포인트를 연결해보면 제2공항 활주로가 들어서는 위치와 맞닿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장을 함께 찾은 김정순 곶자왈사람들 대표는 "숨골이 발견된 곳들은 전형적인 곶자왈 지대의 특징인 '투물러스(tumulus)' 형태를 띄고 있다. 용암이 굳으며 발생한 내부압력이 지반을 부풀게 한 것으로, 안은 비어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20일 찾은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숨골·동굴입구 추정 현장. ⓒ제주의소리
20일 찾은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숨골·동굴입구 추정 현장. ⓒ제주의소리

강순석 전 제주지질연구소장은 "제2공항 환경영향평가는 제주 화산지역이 지닌 독특한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다. 타 지역의 경우 숨골 한 곳만 나와도 지반을 조사해야하는데, 여긴 숨골이 너무 많다보니 조사를 제대로하지 않은 것"이라며 의구심을 표했다.

강 전 소장은 "짧게는 몇 십m, 길게는 몇 백m 규모의 중소동굴이 지하에 존재할 것으로 본다. 용암지대이다보니 주변이 평평해 활주로를 만들기 좋아 보였겠지만 지하의 굴을 연결시키면 활주로의 연장선에도 닿을 것"이라며 "공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에 굴의 존재여부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제언했다.

공동조사를 진행한 제2공항강행저지회의는 이 같은 결과를 토대로 부실하게 이뤄진 전략환경영향평가를 면밀히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2공항저지회의는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환경부는 제2공항 건설사업을 '중정평가사업'으로 지정해 사업 예정지역에 대한 합동현지조사를 실시하고 '환경영향갈등조정협의회' 구성을 위해 즉시 국토부에 권고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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