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사를 위한 놀이 수업] 8. 통통볼, 커플 통통볼, 탁구공 농구 놀이, 칭찬 탁구공 그리고 의자 역할극

최고의 놀이, 최고의 장난감

최악의 놀이는 ‘돈’입니다. 역시 최악의 장난감은 돈으로 만든 것입니다. 소비가 놀이가 된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면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과거가 다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돈과 담을 쌓았던 30년 전의 어린이들은 지금보다 나았던 것 같습니다. 구슬이나 딱지, 공깃돌 같은 저렴한 물건을 사는 데만 돈이 들었고 폭죽 같은 고가의 장난감은 명절 때나 살 수 있었죠. 지금은 어떻습니까? 장난감 전용 매장은 어디서나 볼 수 있습니다. 고가의 장난감들이 어린이와 부모님을 어지럽게 만듭니다. 제가 책 놀이를 만들고 나서 들었던 가장 감동적인 말은 이것입니다.

“돈을 주고 장난감을 사지 않고도 즐길 수 있는 놀이여서 참 좋았어요.”

이 말을 들으니 어깨가 무거웠습니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간단한 물건으로 할 수 있는 놀이를 많이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동 전문가들은 ‘장난감 아닌 것을 장난감으로 만드는 행동’에 주목합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장난감으로 노는 아이의 두뇌는 허약해지는 반면 장난감 아닌 것을 장난감으로 만들면서 노는 아이일수록 두뇌는 건강해진다는 것이죠. 책을 돌린다든지, 지우개치기를 한다든지, 냄비를 머리에 뒤집어쓴다든지 하는 아이와 스마트폰을 멍한 눈으로 쳐다보는 아이의 두뇌 건강이 같을 수는 없겠죠.

탁구공과 의자, 종이상자, 네임펜만 있으면 통통볼, 커플 통통볼, 탁구공 농구 놀이, 칭찬 탁구공 그리고 의자 역할극 등 다양한 놀이를 할 수 있습니다. 이 놀이들을 설명하는 튜토리얼 그림책은 클로드 부종의 《파란 의자》(비룡소)입니다. 책에 대한 생각을 유쾌하게 뒤집어준 발랄한 상상력과 통찰력이 담긴 《아름다운 책》은 지난 번 글에 소개했죠? 이번에는 더 재밌는 이야기와 독특한 주인공들이 등장합니다.

주인공들의 이름부터 특이한데 ‘에스카르빌’과 ‘샤부도’를 빨리 발음하는 놀이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발음이 정확하지 않은 초등학교 저학년의 특성을 이용해 빨리 발음하기 대회를 하면 재밌는 소리와 엉뚱한 표정들을 마구마구 구경할 수 있습니다. 이름만 따라 해도 서로 쳐다보면서 웃기 바쁘죠. 사막을 걷던 에스카르빌이 “누구 하나 얼씬도 안 하네”라고 말하자 샤부도는 “삭막하다고 그래야지!”라고 바로잡아줍니다. 샤부도는 정확한 걸 좋아하거든요. 저는 또 멈춰 서서 누가 에스카르빌이고 누가 샤부도인지 물었습니다. 이번에는 근거를 가지고 대답을 해야 합니다. 예컨대 “어느 날, 에스카르빌과 샤부도는 사막을 걷고 있었습니다”는 표현으로 보아 앞장서서 걷는 게 에스카르빌이라는 식으로 대답해야 하죠.

두 주인공은 파란 의자 하나를 가지고 사골국물 끓이듯 온갖 놀이를 만들어서 놉니다. 개 썰매, 불자동차, 구급차, 경주용 자동차, 헬리콥터, 비행기……. 마치 끝말잇기 하듯 두 주인공은 갈마들며 기발한 놀이를 선보입니다. 그림책을 다 읽고 나서 갑자기 ‘에스카르빌 해볼 사람?!’, ‘사부도 해볼 사람?!’ 하고 외쳤습니다. 아이들이 떠나갈 정도로 소리치며 손을 번쩍 듭니다. 지원자가 워낙 많아서 장면별로 나눠서 역할극을 진행했습니다. 그림책의 후반부로 가면 ‘차력’에 가까운 퍼포먼스가 나옵니다. 안전사고에 주의하면서 어린이들이 할 수 있는 것까지 해보게 하면 좋습니다.

▲ 왼쪽부터 그림1, 2. 《파란 의자》의 매력적인 두 주인공 에스카르빌과 샤부도의 퍼포먼스를 흉내 내는 어린이들. 어린이들이 흉내 낸 장면은 본문에 담겨 있습니다.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 왼쪽부터 그림1, 2. 《파란 의자》의 매력적인 두 주인공 에스카르빌과 샤부도의 퍼포먼스를 흉내 내는 어린이들. 어린이들이 흉내 낸 장면은 본문에 담겨 있습니다.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 그림 3. 통통볼의 승부가 길어질 경우 천장에 닿을 만큼 높이 튕기게 하는 ‘촉진룰’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 그림 4. 커플 통통볼은 상대방이 받을 수 있는 높이와 세기로 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어린이들은 커플 통통볼을 무척 어려워하는데 공동체 정신을 가르치기 좋은 놀이입니다.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 그림 5. 탁구공 농구는 동전 농구와 비슷한데 그림책으로 탁구공을 쳐서 골대에 담는다는 점만 다릅니다.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 그림 6. 부모가 자녀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담은 칭찬탁구공 모습.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 그림 7. 친구들끼리 상장 수여식 하듯 의젓하게 칭찬 탁구공 수여식을 하는 모습.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 그림 8. 칭찬 탁구공 놀이의 부작용 사례. 어린이들 중에는 칭찬과 놀림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장난으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상대방이 받았을 때 기분이 좋은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는 걸 잘 전달해야 합니다.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탁구공은 사랑과 협동심을 싣고

탁구공이 통통 튑니다. 처음에는 모든 사람들이 연습을 할 수 있게 1인 1탁구공을 했습니다. 그런데 모두 연습을 하는 통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지난날의 실수를 바로잡고 출전 선수에게만 30초~1분의 연습 시간을 주었습니다. 탁구공을 최소화했더니 당장 출전하지 않는 친구들이 진지한 눈빛으로 플레이를 관찰했습니다. 통통볼 놀이는 균형 감각을 키우는 놀이입니다. 한 손으로 탁구공을 잡고 나머지 손으로는 그림책을 잡은 채 최초의 터치를 하는 게 쉽지 않아요. 고민 끝에 탁구공을 그림책 위에 올려놓은 상태에서 두 손으로 균형을 잡으며 위로 튕기는 방법을 떠올렸습니다. 물론 이건 어린이들의 아이디어입니다.

어린이들은 승부에 대한 집념이 대단합니다. 승부욕이 너무 활활 타오르다 보니 반칙이 심심찮게 나옵니다. 통통볼을 할 때 탁구공과 그림책이 뽀뽀하듯 붙은 상태에서 좀처럼 튀어 올라가지 않는 경우는 시간 끌기 행위입니다. 심판은 제재를 해야 합니다. 승부가 너무 길어질 때는 천장 가까이까지 높이 치게 하는 식으로 촉진룰(expedite system)을 적용해야 구경꾼들이 지루해 하지 않습니다. 만약 심판 눈을 피해 반칙을 하는 것을 바로잡지 않으면 경기가 혼탁해집니다. 심판의 역할이 무척 중요합니다.

커플 통통볼은 아빠와 자녀가 할 때 가장 잘 됩니다. 어린이들끼리 하면 무척 낯설어 합니다. 이 놀이는 통통볼과 달리 ‘이타적인 놀이’니까요. 상대방이 잘 받을 수 있도록 적당한 높이와 세기로 공을 친다는 건 어쩌면 어린이가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역시 승부의 세계이므로 파트너끼리 연습을 해서 극복해냅니다.

칭찬탁구공 놀이를 할 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나왔습니다. 한 친구가 탁구공 받을 친구에게 ‘잘난 척’이라고 썼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탁구공을 전달해선 안 됩니다. 말로 주는 상처보다 글로 주는 상처가 더 치명적이니까요. 상대방이 칭찬 탁구공을 받았을 때 기분이 좋은 글귀를 적어야 한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해줍니다. 지적을 받은 어린이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할 것입니다.

칭찬탁구공에 가장 잘 어울리는 대상은 부모와 자녀입니다. 처음에는 부모가 자녀에게 칭찬 탁구공을 전달하게 했는데, 반대로 자녀가 부모에게도 칭찬 탁구공을 전달하게 하는 것도 효과적이었습니다. 부모는 자녀의 칭찬이나 사랑 표현이 많은 반면 자녀는 부모에게 바라는 점 또는 요구사항을 많이 썼습니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편지를 쓸 기회가 적다 보니 칭찬탁구공을 통해서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전하게 해주는 것도 좋습니다.

《파란 의자》의 매력은 다양한 놀이의 힌트를 주는 것만이 아닙니다. 뭔가 부족하거나 지나친 성향의 인물들을 등장시켜 무척 사실적입니다. 샤부도는 에스카르빌의 말끝마다 토씨를 답니다. 낙타에게 험담을 하는 장면은 어떻습니까? 보는 사람에 따라서 몹시 불쾌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사람이고 순수한 감정입니다. 사람의 결함과 감정의 지나침을 솔직히 표현하는 그림책은 어린이에게 자유를 줍니다.

‘잘난 척’이라는 세 글자를 썼던 어린이가 심하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탈춤이 생각났습니다. 서민들의 억눌린 감정과 양반에 대한 원망을 풀었던 마당이었죠. 유럽의 사육제 기간에 펼쳐지는 샤리바리(charivari : 아내들이 억압적인 기존 질서의 틀에서 벗어나 그동안 억눌려 있던 감정을 마음껏 분출하는 축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와 같은 전통을 교실이나 놀이마당으로 옮긴다면 어린이가 감정을 풀 수 있는 날을 하루 정해서 탁구공에 글을 써서 부모님이나 선생님을 풍자할 수 있게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을 풍자하면서 학생들끼리 깔깔 웃고 나면 쫀득쫀득한 감정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름다운 책》, 《파란 의자》에 담긴 문학 정신과 놀이 정신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진 않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오승주는?

1978년 제주 성산포에서 나고 자랐다. 제주대에서 국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2003년부터 10여 년간 서울 강남에서 입시컨설팅, 논구술 특강 등의 일을 하다가 대한민국 입시구조와 사교육 시스템에 환멸감을 느꼈다.

이후 언론운동과 시민정치운동, 출판문화운동, 도서관 운동 등에 참여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변화의 힘은 가정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족의 끈이 이어지게 하는 일에 인생을 걸었다. 소홀했던 가정이 무너지기 직전, 아이의 간절한 외침 소리를 들었기 때문.

2013년 《책 놀이 책》을 써 아이와 부모를 놀이로 이어 주었고, 3년간의 공부방 운영 경험과 두 아들과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썼다. 아빠 육아, 인문고전으로 아이 깊이 읽기로 가족 소통을 꾀했다.

현재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공자의 논어》,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사마천의 사기》를 집필 중이며 아주머니와 청소년을 작가로 만드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글쓰기·책쓰기 강사로서 지역 도서관과 활발히 사업을 펼치고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