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시선] "야권통합 역할" "아군 없어 힘들다" 확 달라진 발언 왜?

아무리 정치인의 말이 그때그때 다르다지만 이건 아니지 싶다. 작년 원 지사의 발언들이 정치적 수사(修辭)로만 들리는 않았던 것은 도민과의 약속이었기 때문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아무리 정치인의 말이 그때그때 다르다지만 이건 아니지 싶다. 작년 원 지사의 발언들이 정치적 수사(修辭)로만 들리는 않았던 것은 도민과의 약속이었기 때문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정치인으로서의 존재감을 누구보다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진 원희룡 제주지사가 모처럼 속내를 드러냈다. 

문재인 정권을 견제하고 야권의 혁신과 통합을 위해 해야 할 역할이 있다면 그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자유한국당 입당 가능성도 열어뒀다. 

보수 재편 움직임이 가시화하면서 부쩍 높아진 주가를 반영하듯 대표적인 보수지(紙)인 조선일보에서 장문의 인터뷰를 통해 원 지사를 조명했다. 언론 노출을 마다하지 않는 원 지사로서도 호기였을 것이다. 조선일보는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으로 갈라진 보수 진영에선 서로 우리와 함께 하자며 손짓을 보내고 있다”고 한껏 원 지사를 띄웠다.  

인터뷰에서 원 지사의 톤은 이전과는 확실히 달라졌다. 주저하는 기색이 많이 옅어졌다.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은 “분명히 야(野)”라며 현 정부와, 서울대 법대 동기인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를 신랄하게 비판한 원 지사는 보수통합에 대한 견해를 제시한 뒤 한국당 입당에 관한 질문과 맞닥뜨리자 “지금은 도정에 전념하고 있다”면서도 “정치적인 선택에 대해 늘 열려있다”고 여지를 뒀다. 같은 질문을 또 던지자 “깊은 고민과 많은 토론이 필요한 문제다”고 했다. 바른미래당 입당 가능성에는 웃기만 했다. 

신문은 이를 두고 한국당에 대해서는 가능성을 열어둔 반면 바른미래당에는 선을 그은 것으로 해석했다. 

원 지사가 야권 통합을 위해 기꺼이 맡겠다는 역할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그동안 보였던 단호함은 사라졌다. 멀리갈 것도 없다. 작년에는 비슷한 질문에 손사래부터 쳤다. 그의 대답은 일관되게 “도민만 바라보겠다”는 것이었다. 전국 유일의 무소속 도지사로서 그 때도 몸값은 낮지 않았다. 사실상의 정치적 고향인 한국당의 러브콜도 있었지만, 곁눈질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물리쳤다. 

도지사 재선 직후에는 “제주도민들에게 정말 맛있는 밥상을 차려서, 완수하기 까지는 다른데 눈을 돌릴 여력이 없다”고 했다. [제주의소리]와 가진 특별대담에서였다.  

결이 달라진 지점은 또 있다. 무소속의 한계를 토로한 대목이다. “몸도 힘들지만, 더 힘든 건 마음이다”며 “든든한 아군(我軍)이 없어서 마음이 힘들다”고 했다. 

6·13 지방선거를 두 달 앞두고 바른미래당을 박차고 나갈 때의 결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더구나 그는 특별대담에서 “(오히려 무소속이어서)어느 정당이나 문을 열고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항간의 우려를 일축한 바 있다. “무소속이라는게 장점이 될 수 있도록 제 정치력의 시험대라고 생각하겠다”고까지 했다. 특유의 정치력으로 한계를 돌파하겠다던 의지가 불과 1년여만에 꺾인 셈이다.  

민선7기 도지사 취임사에선 “저에게는 소속 정당도 손잡은 정치세력도 없지만, 제주도민만 바라보고 담대하게 나아가겠다”고 했던 그였다. 

고립무원의 심정을 절절히 털어놓을 정도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모종의 정치적 행보를 위한 정지작업이라는 의심이 들 법도 하다. 그러나 원 지사는 이미 지난 5월에 총선 관여나 정당 입당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당시 그는 “총선 관련은 지난번 시행착오도 있고...”라고 말했다. ‘시행착오’는 2016년 총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들의 이른바 ‘원희룡 마케팅’을 애써 모른척 함으로써 사실상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했던 일을 가리킨다. 해당 후보들이 모두 낙선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는 정치력에 상처를 입었다.   

아무리 정치인의 말이 그때그때 다르다지만 이건 아니지 싶다. 작년 원 지사의 발언들이 정치적 수사(修辭)로만 들리는 않았던 것은 도민과의 약속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원 지사는 지금쯤 제주도민에게 ‘맛있는 밥상’을 다 차려줬다고 판단하는 걸까. 

인터뷰에는 눈여겨 볼 만한 구절이 등장한다. 지역 현안에 대해 그는 “첫 임기 4년 동안 상하수도, 도로, 환경처리, 인프라 등이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라 도민들 간에 갈등이 일어나고 사고가 났다”며 “지금은 해결될 것은 어느정도 해결되고 걸러진 상태”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원 지사가 예로 든 분야 가운데 쓰레기처리(환경) 문제는 곪을대로 곪아 대란으로 번지기 일보 직전 가까스로 봉합됐고, 최대 현안인 제2공항은 전략환경영향평가 부실 의혹이 새롭게 제기됐다. 

원 지사가 정작 하고픈 말은 다음의 것인지 모른다. 중앙무대 도전을 유예하고 도지사를 택한 것에 대한 득실을 묻자 그는 “행정 경험을 얻었지만, 중앙 정치 차원에서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을 수 있다”고 했다. “정치인은 국민들의 관심사와 함께 커야 하는데, 그에서 비켜있던 점에서 일시적으로 손실을 봤을 수 있다”고도 했다.   

그래서일까. 요즘 원 지사는 틈만 나면 정치적인 목적으로 서울 나들이를 하고,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고, TV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매립장이 있는 봉개동 주민들이 쓰레기 반입을 막아선 지난 19일에도 원 지사는 주민과의 만남 대신 유튜브 채널 앞에 섰다.   

그리고 27일에는 중도 보수 통합을 모색하는 ‘플랫폼 자유와 공화’ 토론회에서 축사를 한다고 한다. 4월1일 창립총회에서 문재인 정부를 향해 작심 발언을 쏟아낸 바로 그 모임이다. 4.3추념식을 이틀 앞두고 국회 행안위 법안심사소위에서 4.3유족들의 숙원인 4.3특별법 개정안을 다룬 날이어서 논란을 낳았다. 

차라리 은유라도 동원했으면 좋으려만, 원 지사의 말이 어디까지 진화(?)할지 자못 궁금하다. 

괜한 태클을 거는 것 같지만, ‘도민의 관심’ 보다는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걸 더 두려워 하는 순간 불행해지는 건 제주도민이다.   

애초 ‘도민명령’을 앞세운 것은 원 지사였다. 누가 그러라고 시키지 않았다.

다시금 소환하는 1년여 전 발언. 

“잘못한 것 인정하고 고칠 것은 고치겠습니다. 중앙 곁눈질 하지 않고 도민만 바라보며 앞으로 4년을 가겠습니다”(2018년 5월7일 선거사무소 개소식)

다급했던 순간에 늘어놓은 화려한 수사들은 잉크가 마른지 얼마되지 않았다. 솔직히 지금은 곁눈질을 하기엔 너무 빠르지 않나. <논설주간/상임이사>

* 소리시선(視線) /  ‘소리시선’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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