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애기 낭도 호날 지탱 못헌다
열 애기 낭도 호날 지탱 못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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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의 借古述今] 134. 열 아기 낳고서도 그중 하나를 지탱 못한다

* 낭도 : 낳고(서)도

격세지감이란 이런 것인가. 사람 사는 세상이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 걸까. 요즘에 아이를 낳지 않아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닌데 예전엔 아이를 많이 낳고도 걱정이었다. 그 걱정이란 게 어지간한 게 아니었다. 아기가 잘 자라 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1940~1950년대는 그야말로 절대 빈곤의 시절이었다. 이래저래 가까스로 겨울을 나고 보면 고팡(고광) 좁쌀 항아리가 바닥이 나 있다. 탈탈 굶어야 하는 형편이다. 그래서 바다에서 캐 온 톨(톳)에 좁쌀 몇 줌 섞어 밥을 지어 먹기도 했다. 이른바 ‘톳밥’이었다. 보리를 거둬들일 6월 초까지 연명해야 할 게 아닌가.
 
들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풀을 뜯어먹고 찔레의 새순을 꺾어 먹었는가 하면, 무릇을 캐다 큰 솥에서 고아먹기도 했다. 이때 그나마 고구마 같은 있으면 어려운 시기를 아슬아슬하게 넘겼다. 고구마나 감자를 고마운 구황식물(흉년 때 곡식 대신 먹을 수 있는 식물, 피, 쑥, 고구마, 감자 따위)이었다.

어렵다, 힘들다 푸념들이지만 이보다 더 어렵고 힘든 때도 억척스럽게 이겨냈다. 3포가 5포다, 7포다 할 게 아니다. 우리들 자손이 살아갈 미래의 이 나라를 생각해야 할 때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어렵다, 힘들다 푸념들이지만 이보다 더 어렵고 힘든 때도 억척스럽게 이겨냈다. 3포가 5포다, 7포다 할 게 아니다. 우리들 자손이 살아갈 미래의 이 나라를 생각해야 할 때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하물며 새로 아기가 태어나도 별무 대책이었다. 애태우며 굶주린 산모가 아기에게 젖을 물려도 젖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니 영양실조로 아기가 숨을 놓는 수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아이도 허기진 것은 매한가지. 그나마 아이라 해서 배불리 먹은 보리밥은 배만 두꺼비처럼 불룩 나왔지 워낙 부실해 도대체 실속이 없었다.

아이들이 병에 걸리면 치료할 의원도 마을에 없었다. 말 그대로 무의촌. 돌이키건대, 보건소가 들어선 게 1950년대쯤이 아니었을까. 팔다리에 허물(종기)은 왜 그리 많이 생기는지(환경이 불결해 비위생적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그때 허물에 바르던 소독약 ‘옥도정끼’와 ‘아까징키’(빨간 물약)가 있을 뿐이었다.

심각했다.

먹는 게 턱없이 부실하니 아기들이 그 한때를 넘기지 못하기 일쑤였다. 그러니 사람들 인식이 자연, 아이를 많이 낳아야겠다는 쪽으로 흘렀다. 명이 없는 아기는 어쩔 수 없다고 일찌감치 체념해 버린 것이다.

숨이 꺼진 것으로 알고 야산에 묻으러 가 태역(잔디)으로 파는데, 죽은 줄로 알았던 아기가 으앙 하며 울지 않는가. 움찔 놀라 다시 보지기에 싸고 돌아와 키우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아기를 ‘태역을 파 묻힐 뻔했다’ 해서 ‘태역둥이’라 불렀다. 흙속에 묻힐 뻔했다 운 좋게 살아나서인지, 태역둥이는 장수한다고 했다. 사람 목숨의 길고 짧음 곧 수요장단(壽妖長短)은 신이 주관하는 것으로 사람 소관이 아니다. 그래서 인명재천이다.

아이 키우기가 힘들던 슬픈 시대의 서러운 풍경이었다. 의료시설이 없었으니 도리 없는 일이었지 않은가. 아이 여남은을 낳아 두서넛을 건질까 말까 하던 시절 얘기다.
 
간난 고초를 견뎌내며 이룩한 대한민국이요 제주도다. 젊은 사람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바람에 출산율이 0.98이라 하니 1도 안되지 않는가. 또 얼마 전에 수치가 내려가 0.9란 얘기가 들린다. 어렵다, 힘들다 푸념들이지만 이보다 더 어렵고 힘든 때도 억척스럽게 이겨냈다. 3포가 5포다, 7포다 할 게 아니다. 우리들 자손이 살아갈 미래의 이 나라를 생각해야 할 때다.

‘열 애기 낭도 호날 지탱 못헌다.’

이 어떤 말인가. 오죽 가슴에 맺혔으면 이랬을까. 옛 조상들 신세 타령이 가슴 쓸어내리게 하지 않는가.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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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 2019-09-02 08:43:30
슬픈 일이다.
언제까지 우리끼리 저 아래 양반 처럼 헐뜯고 미움을 가져야 하는건지.
진짜 이나라를 망치는 당파싸움꾼, 패거리 매국노 아닌가.
무지를 드러내는 짓거리 제발 삼가주었으면.
121.***.***.17

선비 2019-09-02 08:36:56
어려운 시절 겪어보지 못한 사름덜은 잘 모를거우다.
이렇게 알려라도 줘사 허주 마씀.~~^^
121.***.***.17

thank9 2019-09-02 07:36:49
선생님 감사합니다.
제주 속담, 어려운 사투리,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어디서나 그 시절에는 마산 야구장 옆 개울천에는 코레라로 죽은 사람들이 널려있던 시절입니다.
한만은 우리민족입니다. 특히 제주는 일제에이어. 4.3의 아픔을 치료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는 도죠.
175.***.***.82

ㅎㅎ 2019-08-31 22:42:08
선생라는 양반이 2017년에 유병우,검사들 돈먹으거 문죄인이부터는 온갖 찬양글을 써단 양반이 지금 20대들이 분노허는 좃국이사태엔 좀좀허는 기회주의자!그러고도 선생이라고 연금받고 조용히 찍박아지는게 좋은거여.
180.***.***.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