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시선] 공원 소나무에 시멘트 ‘화끈’...유니버설 디자인의 본질은 세심함

김현승의 시 <플라타너스>를 접하고 나서도 플라타너스가 버즘나무란 사실을 몰랐었다. 아니 그 반대가 맞을 것 같다. 버즘나무가 그 유명한 플라타너스임을 알지 못했었다. 정확히 말해 버즘나무는 한국식 이름이고, 플라타너스는 학명이다. 버즘나무에도 종류가 있다. 버즘나무, 양버즘나무, 그리고 단풍버즘나무…. 

기억이 맞다면 제주시민의 녹색 쉼터 한라수목원에서도 최소 2종류의 버즘나무를 볼 수 있다.

어릴적 동네 몇 안되는 점빵(전방·廛房) 앞에도 버즘나무가 서 있었다. 그땐 수종을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국내 버즘나무가 대개 미국에서 건너온 양버즘나무라고 하니, 고향 가게 앞 나무도 굳이 구분하자면 양버즘이 아닌가 싶다.   

당시 그 곳은 요즘말로 핫 플레이스였다. 코흘리개들을 유혹하는 점빵이 있었고, 껍질은 거칠어도 타고 놀기 그만인 버즘나무까지 있었으니 인기 놀이터가 됐다. 더구나 버즘나무의 열매는 둥그렇고 표면에 돌기가 나 있어 또래끼리 ‘꿀밤’ 대용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왜 하필 그곳에 버즘나무가 심어졌는지는 지금도 궁금하다. 과거에는 가로수로 많이 심었다고 한다. 정토수(淨土樹)라고 부르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공해에 잘 견디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요즘에는 꽃가루 때문에 골치라는 얘기도 들린다.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있다”

김현승은 플라타너스를 단순한 나무로 여기지 않았다. 꿈을 아는 존재로 인식했다. 

“이제 수고로운 우리의 길이 다하는 오늘
너를 맞아 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플라타너스 
나는 너를 지켜 오직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 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김현승은 특히 플라타너스를 영원히 함께 할 반려자로 대우했다.

얼마전 방송된 <KBS 스페셜-서울나무, 파리나무>는 내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주변의 흔한 소재로도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이 프로그램에도 버즘나무가 등장한다. 제작진에 따르면 프랑스 파리의 양버즘나무와 대한민국 서울의 양버즘나무는 같은 나무지만 정반대의 삶을 살아간다. 심지어 한반도가 자생지인 벚나무조차 파리가 더 건강하고 아름답다고 했다. 이는 두 지역의 전정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잘못된 전정이 나무를 추하게 만들고 때로는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다는 게 프로그램의 메시지였다.  

제작진은 기획 의도와 관련해 “한국에 심은 나무들의 절규를 듣고, 수십년 동안의 논쟁과 연구 끝에 밝혀진 수목 관리학의 과학적 성과를 통해 한국 나무의 아름다움과 건강, 품위를 되찾고자 한다”고 밝혔다. 

‘영원한 반려자’와 ‘나무들의 절규’. 여기에는 공통적으로 인간과 함께 살아가야 할 생명체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깃들어있다.  

혹자는 그냥 아름다운 나무는 없다고 했다. 긴 세월 모진 비바람과 가뭄, 홍수를 이겨내야 비로소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뚝 설 수 있다는 얘기다. 

경우에 따라선 인간의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할 때도 있다. 

제주도가 유니버설 디자인 시범사업을 한다며 어린이공원 내 멀쩡한 소나무에 시멘트를 덕지덕지 발라놓았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자 부랴부랴 원상복구하는 일이 벌어졌다. 

경사를 맞추기 위해 임시로 타설했다고는 하나, 일부에선 독극물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유해한 시멘트를 잔뜩 발라놨으니 아무리 생명력이 강한 소나무라지만 배겨날지 모르겠다. 그러잖아도 제주도는 재선충병 때문에 2013년부터 6년동안 소나무 221만그루를 잘라내는 대 홍역을 치렀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시 화북동 화북 제2어린이공원. 소나무 밑동에 시멘트가 덕지덕지 발라진 전날(1일)과는 달리 뿌리 부분의 시멘트를 걷어낸 2일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유니버설 디자인이 뭔가. 성별, 나이, 장애, 언어 등으로 인해 제약을 받지 않도록 하는 보편적(universal) 디자인을 말한다. 휠체어를 탄 승객이 편하게 오르내릴 수 있는 저상버스가 대표적이다. 

난 유니버설 디자인을 세심함의 결정체라고 본다. 누군가의 편의를 증진한다며 또다른 공존의 대상에게 세심함을 놓쳐버린 것 같아 씁쓸했다. 뒤늦게나마 신속하게 조치를 취했으니 망정이지, 다시는 이같은 무지를 드러내지 않길 바란다. <논설주간/상임이사>

* 소리시선(視線) /  ‘소리시선’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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