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사를 위한 놀이 수업] 10. 어린이들이 놀이에 대해서 매긴 차갑고 따뜻한 평가  

럭비공 같은 아이들의 놀이 평가

어쩌면 놀이만큼 중요한 게 평가일지도 모릅니다. 직접 놀아 본 어린이들의 평가는 어디로 튈 줄 모르는 럭비공처럼 사람을 긴장하게 합니다. 어린이들에게 지금까지 했던 놀이들을 모아놓고 점수를 받았습니다. 0점을 준 아이도 있고, 1점을 준 아이도 있고, 91점을 준 아이도 있었습니다. 100점도 많이 받았지만 예측하기 힘든 평가 방식이 흥미로웠습니다. 점수를 준 이유는 더욱 놀라웠습니다. 

“힘들어서 1점” (놀이: 탁구공 고속도로)
“풍선을 잃어버려서 2점. 만약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100점” (착한 용과 못된 용의 레이싱)
“친구의 훼방이 짜증나서 1점. 잘한다고 칭찬해줬으면 100점” (그림책 젠가)
“무슨 말인지 몰라서 1점” (친구 지도 그리기)

아이들의 놀이 평가표는 글을 쓸 수 있는 어린이들에게는 서면으로 받고 나머지는 인터뷰 방식으로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쓸 수 있는 아이들 역시 제출한 서면 평가표를 바탕으로 인터뷰로 재차 확인을 하면서 점수와 평가 이유를 기록했습니다. 

놀이 평가표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남긴 말을 자세히 되새기고 여러 번 읽을수록 생각할 것이 많아졌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놀이는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100점을 준 놀이도 없었고 모든 아이들이 저조한 점수를 준 놀이 역시 없었습니다. 어린이들의 놀이 평가표를 보면서 완벽한 놀이를 만들어야겠다는 환상을 털어낼 수 있었습니다. 

놀이가 끝나면 놀이가 시작됩니다. 어린이를 심리학자로 만드는 야심찬 심리 놀이 '몬스터 테크닉'을 위해 책상 위에 감정카드 두 통을 흩어 놓은 어린이들. 놀이의 문을 열고 감정속으로 들어갑니다. 안녕.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놀이가 끝나면 놀이가 시작됩니다. 어린이를 심리학자로 만드는 야심찬 심리 놀이 '몬스터 테크닉'을 위해 책상 위에 감정카드 두 통을 흩어 놓은 어린이들. 놀이의 문을 열고 감정속으로 들어갑니다. 안녕. 제공=오승주. ⓒ제주의소리

재미를 목적으로 만든 놀이에는 예상대로 반응이 좋았지만 욕구불만을 자극하는 재판놀이와 뭔가 많은 일을 해야 하는 탁구공 고속도로가 좋은 점수를 받은 것은 의외였습니다. 큰 비용을 지불하고 품을 많이 들이더라도 놀이의 짜임새가 괜찮다면 기꺼이 참여하는 어린이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아빠를 벌하고 선생님을 벌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반응은 어느 정도는 예상을 했습니다. 어떤 어린이가 좋은 점수를 줄 것인지도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주목했던 건 저조한 점수를 준 대목이었습니다. 힘이 들어서, 옷이 지저분해져서, 내용 파악이 안 돼서 낮은 점수를 준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놀이가 자기화돼 있지 않다는 말이기도 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어린이들이 놀이를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저는 그림책 낭독으로 감정을 자극하고 대화로 풀어나가는 등 어린이들의 마음을 놀이로 이끌어가는 활동을 보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놀이가 끝나고 평가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어린이들은 놀이를 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평가합니다. 한 가지 놀이가 끝나고 나서 냉정한 평가를 받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저는 제가 만든 놀이에 취해서 놀이에 참여하는 어린이들을 놓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놀이에 대해서 차갑게 때로는 따뜻하게 평가하듯 놀이를 만들고 진행할 때도 마찬가지로 때로는 차갑게 때로는 따뜻하게 하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이것으로 책 놀이 연재를 마칩니다. 

사진설명 : 놀이가 끝나면 놀이가 시작됩니다. 어린이를 심리학자로 만드는 야심찬 심리 놀이 '몬스터 테크닉'을 위해 책상 위에 감정카드 두 통을 흩어 놓은 어린이들. 놀이의 문을 열고 감정속으로 들어갑니다. 안녕. / 끝

#오승주는?

1978년 제주 성산포에서 나고 자랐다. 제주대에서 국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2003년부터 10여 년간 서울 강남에서 입시컨설팅, 논구술 특강 등의 일을 하다가 대한민국 입시구조와 사교육 시스템에 환멸감을 느꼈다.

이후 언론운동과 시민정치운동, 출판문화운동, 도서관 운동 등에 참여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변화의 힘은 가정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족의 끈이 이어지게 하는 일에 인생을 걸었다. 소홀했던 가정이 무너지기 직전, 아이의 간절한 외침 소리를 들었기 때문.

2013년 《책 놀이 책》을 써 아이와 부모를 놀이로 이어 주었고, 3년간의 공부방 운영 경험과 두 아들과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썼다. 아빠 육아, 인문고전으로 아이 깊이 읽기로 가족 소통을 꾀했다.

현재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공자의 논어》,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사마천의 사기》를 집필 중이며 아주머니와 청소년을 작가로 만드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글쓰기·책쓰기 강사로서 지역 도서관과 활발히 사업을 펼치고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