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시선] 허투루 쓰인 혈세...‘사후약방문’ 그만  

이따금 타는 버스지만, 그 맛이 여간 쏠쏠하지 않다. 시쳇말로 꿀잼이다. 차창 밖 풍경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어서다. 그 순간은 짧지만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다. 자가용을 고집할 적엔 버스 타는 재미를 몰랐었다. 

이러한 매력 때문에 시간을 재촉하지 않아도 되는 휴일에는 부러 여유를 부려본다. 평일에도 숙취가 있는 날이면 버스에 오르기 위해 기상을 서두르곤 한다. 

버스는 거의 제 시간에 온다. 빈도의 차이는 있지만, 구석구석 안가는 데가 없다. 도심 통행 속도는 자가용을 훨씬 앞지른다. 대중교통 우선차로 덕분이다. 갈아타도 추가 요금이 붙지 않는다. 웬만한 정류장에선 버스의 실시간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그도 귀찮으면 스마트폰에서 ‘제주버스정보’를 클릭하면 그만이다. 기사분들의 서비스도 눈에띄게 달라졌다. 

혼자 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주변에서 버스타기 좋아졌다는 소리를 심심찮게 듣는다. 실제로 버스 이용객도 늘어났다고 한다. 제주도에 따르면 지난해 버스 이용객은 1996년 이후 처음으로 6000만명을 돌파했다. 바야흐로 ‘대중교통 우위 시대’가 다시 열린 셈이다.  

이 모든 게 2017년 8월26일, 대중교통체계를 30년만에 전면 개편한 뒤 나타난 변화상이다. 새 교통체계는 시행초기 혼란을 극복하고 빠르게 안착했다.  

그렇다고 아무 문제가 없으랴마는, 그동안 교통체계를 개편하느라 애쓴 공직자들에게 우선 박수를 보내고 싶다.   

대중교통체계 개편은 민선 5~6기 원희룡 도정이 역점적으로 추진한 시책이다. 원 도정 스스로도 치적으로 내세운다. 핵심은 버스 준공영제. 버스의 소유와 운행권은 업체가 갖되 노선과 요금, 운행관리는 지자체가 맡는 방식이다. 운행 수입과 운송원가를 따져 업체의 적자분을 제주도가 메워준다. 

그 액수가 자그마치 연 1000억원에 육박한다. 보전금액(재정지원금)은 해마다 늘고 있다. 최근 제주도 감사위원회는 2023년이면 재정지원금이 최대 1323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기도 했다. 

결국 대중교통이 달라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제주도민의 편의 증진은 막대한 혈세를 쏟아부은데 따른 당연한 결과였다. 

근데 이게 탈이 나고 말았다. 알고보니 혈세가 줄줄 새고 있었다. 여태껏 아무 일이 없었던 게 이상할 정도였다.  

감사위 감사 결과 제주도의 재정지원은 업체들의 배를 불리는 돈잔치로 드러났다.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는 눈 뜨고 못 볼 지경이었다. 90세 되는 대표이사 모친에게 이사회장 직책을 부여해 매월 700만~884만원의 급여를 지급한게 대표적이다. 정비직과 관리직의 인건비로 쓰여야할 돈이었다. 

일부 업체는 임원 인건비를 제멋대로 올렸다. 업체 7곳 중 3곳의 임원 임금은 1년새 23.1~33.3%나 인상됐다. 표준운송원가에 반영된 임금 인상률(2.6%) 보다 10배 이상 높았다. 일부 임원의 경우 인건비가 연 1억6000만~7000만원에 이른다는 한 도의원의 주장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민영버스 증차 및 운전원 채용은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졌다. 재정 지출을 늘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표준운송원가 산출도 엉망이었다.  

감사위는 제주도와 업체들이 맺은 협약이 버스사업자에게 유리하게 체결된 사실도 비중있게 지적했다. 기본적으로 담아야 하는 해지나 효력 관련 조항은 물론 사업자 제재 조항이 없었다. 준공영제 중지 조항까지 둔 대구와는 너무 대조적이다. 

제주도는 이번 감사에서 많은 문제가 드러나자 대책의 하나로 ‘버스준공영제 운영에 관한 조례’를 만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사후약방문도 이런 사후약방문이 없다. 이 조례는 그동안 숱하게 제정 필요성이 제기됐으나 제주도는 손을 놓고 있었다. 

제주도는 또 버스업체에 대한 외부감사를 약속했으나 이 역시 ‘셀프감사’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도입 여론이 인지 오래됐다. 

감사위가 감사 결과를 공개한 건 지난 5일. 이보다 사흘 앞선 2일, 제주도는 업체 대표들과 모처럼 만남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외부감사 도입, 운송사업자에 대한 제재 등의 내용을 담은 ‘버스 준공영제 제도개선 협약’을 체결했다. 

시점이 절묘하다. 감사위 감사로 준공영제가 도마에 오를 것으로 예상되자 서둘러 교감을 나눈게 아니냐는 의심을 떨칠 수 없다. 왜 진작에 이렇게 하지 못했냐는 아쉬움도 든다. ‘물들어야 곰바리 잡는’ 습성이 여전한 것 같아 씁쓸하다. 

협약식에서 업계 관계자는 “도민사회에서 (준공영제에 대해)우려하는 부분을 잘 알고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외부회계감사를 대승적으로 수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혈세가 들어간 곳에 공공의 감시·관리가 미치는 것은 당연하다. 

연간 1000억원 가량의 혈세를 지원받아 허투루 써놓고 마치 시혜를 베풀 듯 외부감사를 받아들이겠다는 말에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앞으로는 버스를 탈 때 심란할지 모르겠다. <논설주간/상임이사>

* 소리시선(視線) /  ‘소리시선’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편집자]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