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주 칼럼] 좌충우돌 청소년 민주시민교육 도전기

청소년 민주시민교육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까닭

독립언론 <제주의 소리>로부터 추석 연휴에 알맞은 원고 청탁을 받고 나서 밤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쓸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 말을 해도 되는지 혼란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지금 남기는 글은 제가 제주도에서 강의를 하면서 살아가는 걸 어렵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저를 아끼는 지인들이 이 글을 본다면 왜 쓸데없는 글을 써서 제 발등을 찍느냐고 야단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겪은 일은 개인적인 경험으로 남겨두기 어려운 것이며 제주도의 현주소를 증언하고 있기에 힘들게 이야기를 꺼냅니다. ‘제주도에서 청소년 민주시민교육을 하는 일의 어려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수도권에서 14년 정도 타향살이를 하다가 2014년 12월경에 귀향했습니다. 육지에 있을 때는 4년간 언론시민운동을 했고 입시컨설팅과 출판마케팅, 그리고 부모교육을 하면서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가 배운 것을 고향에 보답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주도에서 반드시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두 가지 주제였습니다. 하나는 가족 교육, 나머지 하나는 민주시민교육이었습니다. 가족 교육은 어린이 교육, 부모 교육, 청소년 교육을 별도로 진행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린이, 부모님(대부분은 엄마), 청소년에 대해서 오랜 시간 소통하면서 배워야 했습니다. 지금도 제주도 곳곳을 돌아다니며 많은 엄마들과 어린이, 청소년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민주시민교육’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청소년정치학교라! 데모꾼양성소인가?대학강 학생회허고 졸업허멍 도의원,국해위원 쫓아댕기멍 딱가리 허당 도의원공천받앙 정치의길로^^” 
- <제주의 소리> 기고문 '중학생인 내가 생각하는 정치권력(2018.09.01)' 에 달린 댓글

2018년 8월 첫 번째 청소년 민주시민교육을 할 수 있었던 까닭은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2017.3.10), 문재인 대통령 당선(2017.5.10)이라는 정치적 열기가 식지 않아서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반발도 대단했습니다. 위에서 보신 것처럼 청소년들에게 정치 교육을 한다고 하니 부정적인 댓글들이 많았습니다. 청소년을 정치꾼으로 선동한다는 비난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욕먹는 거야 일상다반사니까요.

문제는 ‘다음 기회’가 위태로워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공론장에서 청소년 민주시민교육을 받아들이는 데 상당한 갈등이 있다는 것은 수업을 진행하면서 느꼈습니다. 수업을 진행한 도서관에서는 강의 진행 상황에 대해서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였고 관장님이 매우 화를 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1년 동안 두 번째 청소년 민주시민교육을 할 기회가 차단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주시 지역에서 도서관 수업 자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주시 관내의 몇몇 사서 선생님과 강의에 관한 제안이 오가다가 갑자기 무효화되는 경우도 있고 아예 연락이 끊어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우연의 일치이며, 제가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저의 무능력이 이유의 대부분일 것입니다. 

하지만 가슴 아픈 건 제 수업을 기다리는 청소년들과 가족들이었습니다. 제 수업에 공감을 해주시고 지속적으로 듣고 싶다는 의지를 보여준 가족들에게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심한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얼마 전 우연히 한 엄마가 저에게 귀띔을 해주었습니다. 그 내용은 제가 모르던 것이었고 상상도 못했습니다. 청소년 민주시민학교 수업을 들었던 청소년의 학부모였던 그 분은 도서관에 다음 강좌 개설을 요청하는 전화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반응이 너무 놀라워서 저에게 제보를 해준 것입니다. 

"너무 한쪽으로 편향돼 있었다는 평이었대요."

전 현직 도의원과 도지사 후보 등을 초청했던 강의가 생각났습니다. ‘왜 기계적 중립을 지키지 않느냐?’는 무언의 항의를 받았거든요. 기계적 중립이라는 건 진보 정당의 정치인을 강사로 초청했다면 마땅히 보수 정당의 정치인 역시 강사로 초청해야 한다는 논리로 보였습니다. 공공기관의 입장에서 보면 구설수에 오를 수도 있는 사안이었고 향후 진급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제야 관장님이 왜 화를 내셨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민주시민교육과 기계적 중립에 관한 화두는 제 고민거리가 되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기계적 중립을 견지하면서 청소년들에게 민주시민교육을 시키는 것은 죄를 짓는 것입니다. 제주도 청소년들에게 죄를 지을 바에는 차라리 제주도 도서관에서 강의를 할 수 없게 되는 벌을 받는 것이 낫습니다. 

지난해 개최한 청소년 정치학교 참가자 모집 공고문.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플라톤의 스승 리쿠르고스(Lycurgus)에게 배운 민주시민교육

제가 제주에서 청소년 민주시민교육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언론시민운동을 하면서 어른들의 경직된 모습을 너무나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기자, 시민단체 활동가, 정치인 중에서 ‘시민’이라고 할 만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어른 세대들이 시민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민교육을 받지 않은 채로 어른이 되었기 때문에 국회에서는 몸싸움을 하거나 툭하면 장외투쟁을 하고 유권자들 역시 정권의 방향에 따라서 일희일비하고 사회 전체의 시스템이 정권바라기처럼 요동칩니다. 사회적 안정성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나라 전체가 혼란스러운 까닭은 올바른 시민교육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의 결론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른을 대상으로 하는 민주시민교육보다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민주시민교육이 2~30년 후의 한국 정치를 더욱 성숙하게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에게 내려진 ‘한 쪽으로 편향돼 있다는 평’은 공무원의 입장에서는 중요한 원칙일 수 있지만 저는 공무원이 아니라 시민입니다. 청소년들에게 이런 식으로 민주시민교육을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은 이미 2018년 제주도교육심포지엄에서 공론화되었죠. 

“어떤 학생이 논쟁을 하면서 비민주적 태도를 보인다면 교사는 어떤 것이 문제이고 무엇이 옳은 태도인지 말할 수 있어야”하며 “이 과정에서 교사가 학생들의 가치 판단에 대해 의사 표명 없이 넘어간다면 이 같은 ‘정치적 중립성’은 아이들에게 또 다른 잘못된 인식을 주입할 수 있다.”

“언제나 교사의 입장이 무의식적으로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이성적으로 볼 때 교사가 정치에 적극 개입하는 것도 좋다고 본다. 학생들이 교사 입장과 비교하며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기 때문.”
- 폴 케르스틴(Pohl Kers tin) 정치학 교수(독일 마인츠대학)의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에 관한 강연. 제주도교육청 주최 2018년 제주교육심포지엄 (<제주매일> 기사 “민주시민교육서 교사 정치 가치판단 중요”[2018.12.02] 가운데 일부) 

제가 만드는 청소년 민주시민교육의 원천은 고전(古典)입니다. 스파르타의 입법가 리쿠르고스(Lycurgus)는 청소년 민주시민교육의 초석을 다진 인물이기도 합니다. 리쿠르고스는 현재 미국 국회의사당과 브뤼셀 대법원에 새겨질 정도로 존경을 받는 인물이자 철학자 플라톤이 스승으로 삼는 입법가이기도 하죠. 리쿠르고스는 일종의 불문 헌법인 레트라(Rhetra)를 설계해 스파르타를 강대국의 반열에 올려놓았으며, 교육을 강조한 교육사상가이기도 합니다.

스파르타에는 독특한 소년단 조직이 있는데 신라시대의 ‘화랑도’와 비슷합니다. 화랑도의 지도자를 ‘화랑’이라고 부르듯 소년단의 대장을 ‘멜이렌’이라고 불렀습니다. 소년단을 졸업한 지 2년이 지난 청년들 중에서 ‘가장 분별력이 뛰어나고 전투에 능한’ 사람은 ‘이렌’이 되어 여러 명의 멜이렌을 지휘합니다. 그리고 도시에서 ‘가장 고귀하고 훌륭한 이’는 ‘파이도노모스’가 되어 소년들의 감독관 역할을 합니다. 화랑도처럼 소년단은 군국주의 성격이 강한 조직이지만 ‘시민교육’에 영감을 주는 장치가 있었습니다. 바로 ‘공동식사 토론’입니다. 우리 식으로 하면 ‘밥상머리 대화’와 같은 토론을 이렌의 지휘 하에 진행합니다. 이렌은 소년들 중 하나를 골라 주의 깊고 신중한 대답을 요구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죠. 

“이 도시의 가장 훌륭한 사람은 누구인가?”
“이 사람의 품행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약 지목된 소년이 대답을 하지 못하면 공개적으로 비난을 당했습니다. 너는 어떻게 네가 사는 도시의 가장 중요한 인물과 중요한 정책에 대해서 관심이 없을 수 있느냐고! 그 소년은 ‘탁한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뛰어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열망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이하 인용문은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1》, <리쿠르고스>편 참조)

이렌의 질문을 제주도의 청소년 민주시민교육으로 가져오면 “원희룡 도지사의 정책과 품행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제2공항 논란에 대한 너의 입장은 무엇이냐?”로 할 수 있습니다. 제주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며 가장 중요한 정책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질문과 토론은 스파르타라는 도시 전체에서 정책적으로 벌어지던 일이었습니다. 제주도에서 이런 대화가 가능할까요? 이런 대화가 가능해야 청소년 민주시민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제주도 또는 대한민국에서 정책적으로 이런 대화가 가능하다면 민주주의의 미래는 밝을 것입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만 18세 참정권 보장을 요구한 지난해 5월 10일 제주지역 청소년들의 기자회견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지방선거를 앞두고 만 18세 참정권 보장을 요구한 지난해 5월 10일 제주지역 청소년들의 기자회견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도에선 해선 안 되는 교육인가요?

작년에 첫 번째 청소년 민주시민교육을 하고 나서 일회성으로 그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부지런히 준비해서 두 번째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프로그램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이라는 정치적 열망 속에서 가능했다면 두 번째 프로그램은 ‘팀’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물론 두 번째 프로그램도 ‘윗선’에서는 불편해 했습니다. 하지만 방패 역할을 해주는 책임자를 만난 덕택에 어렵게 시행할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기적 같은 일입니다. 윗선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온몸으로 막아주시고 청소년 민주시민 교육의 취지를 지지해주신 책임자 분께 말할 수 없는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두 번의 청소년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하면서 가슴을 답답하게 한 질문이 있습니다. 

“제주도에선 이런 교육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요?” 

육지의 상황을 보면 늦어도 한참 늦었습니다. 이미 전국의 각 지역에서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민주시민교육이 오래 되었고, 경기도는 청소년들이 자체적으로 과제를 제시하고 발표회를 여는 등 매우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움직임들은 결국 지역의 정치적 역량이자 자산이 될 것입니다. 늦어질수록 그 지역의 정치적 기회는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올해 6월 6일 제주 청소년 모임 ‘우리도제주도’의 출범 기자회견 모습.ⓒ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올해 6월 6일 제주 청소년 모임 ‘우리도제주도’의 출범 기자회견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예를 들어 중학교의 주인은 중학생이며 고등학교의 주인은 고등학생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원칙이지만 현실에서는 중학교의 주인은 교장선생님과 교사, 학부모입니다. 중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기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것이 행복하지 않고 학교에만 가면 기운이 빠집니다. 어떤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투표를 통해서 임원을 선출했는데 이미 선생님들이 임원을 내정해서 투표가 무의미해진 일이 있었습니다. 이런 일은 제주도 학교에서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하늘에서 좋은 정치인과 좋은 시민이 뚝 떨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체계적으로 길러지는 것입니다. 제주도에 그런 체계가 있나요? 제주도의 시민은 어떻게 길러지나요? 지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시민들이 늙으면 바통을 이어받을 예비 시민은 어디에 있나요? 이 문제는 시급하지 않은 것인가요? 제주도의 청소년 민주시민교육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어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오승주는?

1978년 제주 성산포에서 나고 자랐다. 제주대에서 국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2003년부터 10여 년간 서울 강남에서 입시컨설팅, 논구술 특강 등의 일을 하다가 대한민국 입시구조와 사교육 시스템에 환멸감을 느꼈다.

이후 언론운동과 시민정치운동, 출판문화운동, 도서관 운동 등에 참여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변화의 힘은 가정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족의 끈이 이어지게 하는 일에 인생을 걸었다. 소홀했던 가정이 무너지기 직전, 아이의 간절한 외침 소리를 들었기 때문.

2013년 《책 놀이 책》을 써 아이와 부모를 놀이로 이어 주었고, 3년간의 공부방 운영 경험과 두 아들과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썼다. 아빠 육아, 인문고전으로 아이 깊이 읽기로 가족 소통을 꾀했다.

현재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공자의 논어》,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사마천의 사기》를 집필 중이며 아주머니와 청소년을 작가로 만드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글쓰기·책쓰기 강사로서 지역 도서관과 활발히 사업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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